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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롯한 주위 세대가 기억하고 입문한 WWE의 시기는 02년 ~ 04년 SBS 스포츠 채널 시절이었지.





이 시대가 어떤 시대였느냐면, 동네 오락실이나 학교 앞 문방구를 가면 오락기 기계로 스맥다운 5를 즐길 수 있었음. 스맥다운 시리즈는 나오면 수만장을 팔아제끼는 위닝 일레븐 급 인기 시리즈였고.





여타 잡지나 신문 기사 쪽지에 가끔 프로레슬링의 인기와 레슬링을 따라해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식의 기사가 나왔음.





인터넷으로 들어가면... 당시에 활성화되던 다음 카페에서 프로레슬링 관련으로 규모있는 카페만 수두룩 했고




소리바다로 레슬링 테마 다운받아서 듣고 했었지.






야후 같은 검색엔진에서 검색하면 (당시에 많던 당시엔 블로그 이런게 없었으니까)소규모 개인 웹사이트에서 프로레슬링을 다루는 개인 사이트도 엄청나게 많았음. 




여기에 웹가리 카페가리라고 레슬링 관련 가상리그 커뮤니티들도 우호죽순으로 넘쳐났었고.





이 뿐인가? 학교에 가면 어떤 아이들인지 쉬는 시간에 쵸크 슬램, 윌스 오브 제리코, 가끔 객기 부리는 놈들이 학급 계단에서 청소 당번 하다가 계단 위로 올라가서 파이브 스타 프로그 스플래쉬를 쓰기도 했었지.








그러니까, 이 시기는 WWE와 프로레슬링이라는 한 없이 어린이들에게 가까웠거든.






지금은 어때? 졸업해서 학교라는 걸 안다니게 된지는 꽤 되었지만, 요즘 애들이 학교에서 레슬링 이야기를 할까?




IB 스포츠나 FX 같은 경우에 오프라인에서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은 그런 채널 있는지도 모를 사람들이 태반일듯.







그런데 인터넷 상에 보면, 그냥 봐왔기 때문에 보는게 아니라 이런 시대에서도 프로레슬링을 새롭게 보는 팬들이 생긴다는게,




그 뭐냐, 좀 낯간지런 말이지만 난 좀 경이감이 든다.






한 4년 쯤에 인터넷에서 제프 하디 이야기를 보다가, 좀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는데 거기서 제프 하디 이야기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07년 ~ 09년의 제프 하디만을 놓고 이야기를 하는걸 봤어.




단지 그때 제프가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하는 팬들이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실질적으로 지켜본게 그 시기의 제프라서 였었음. 자신들이 프로레슬링을 봤을때부터 본게 그 당시의 제프여서 그게 본인들이 기억하는 '제프 하디' 에 대한 이미지였고.






난 이게 굉장히 신기했는데, 왜냐하면 내 세대에서 제프 하디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언더테이커에게 도전했다가 테이커의 리스펙트를 얻어낸" 장면이었음. 02년부터 제프가 떠나고 나서 쭉. 제프 하디를 이야기하고 그리워하는 팬들이 가장 먼저 이야기 하는게 그 일이었고. 아마도 당시부터 레슬링을 본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럴걸.




그런데 당시의 그 팬들은 자신들이 보지 않은 그 사건 대신, 제프 하디에 대해서 자신들이 본 나름대로의 '최고의 장면' 에 대해서 소감을 나누던 거야. 




난 이게 굉장히 신기했고, 레슬링 팬으로써의 세대 차이를 느꼈다. 굉장히 긍정적으로. 아, 우리가 봤던 그 시기 이후에도, 팬들은 계속 계승되면서 새롭게 시청하고, 또다른 레슬링 팬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구나....







지금 인터넷의 레슬링 팬덤은 과거하곤 시청하는 양상이 많이 달라졌지. 



그냥 TV 상에 나오는 선악역을 믿고 거기에 환호와 야유를 보내기보다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선수에 대해 반응하고, 라이백이 칼리스토를(실제론 발렸지만) 좆바르면 라이백 진짜 괴물이네 ㄷㄷㄷ 라고 느끼기보단 칼리스토 잡아먹은거 좆같네 ;;; 라고 느낌.



하드코어 할리가 레스너를 잡겠다고 나서는걸 요즘에 본다면 레스너 큰일 나겠네 라고 느끼기보단 "둘을 붙이는건 좀 밸런스가 안 맞는거 아냐?" 라고 생각할테고, 다각도로 흘러나오는 내부 소식을 전해들으며 "15 로럼 막판에 로만 우승주려고 루세프, 케인, 빅쇼 남길듯 ㅋㅋㅋ" 하고 예언가 수준의 안목을 발휘하기도 하지.







그런데 지금 같은 시기에서도, 단순히 크고 강하고 멋져서 환호 보내고 악당이라서 야유를 보내고 선역이 이기자 통쾌함을 느끼는 어린 팬들이 있고, 그 팬들이 서툰 솜씨로라도 인터넷에서 자기 감상을 쓰고 하는걸 보면





진짜로 기묘한 기분이 든다.





이건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어느정도 그렇지만, 특히 국내에서 프로레슬링이라는 취미를 시청한다는걸 거창하게 말하면 주위의 편견, 조롱과 마주서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겠지. "아직도 넌 그런걸 보는거냐?" "무슨 그런걸 보냐?" 라는 시선으로부터.




그렇지만 아직도 프로레슬링을 좋아한다고 하는 어린 친구들이 계속 있다는 사실을 보면, 무언가가 이어지는 느낌을 느낀다.





내가 어렸을때 초등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유명인을 쓰시오 하는게 수업시간에 나왔을때 난 거기에 언더테이커라고 썼음. 멋지고 터프한데다 사실은 존경스러운 면도 있는 사람이라 내가 가장 좋아한다고. 자세한건 기억이 안나는데 얘들하고 선생님한테 "뭔 그런 사람을 쓰냐?" 이런 소릴 들었던 걸로 기억해.




그렇지만 내가 언더테이커라고 종이에 쓴 몇년 뒤에 어떤 다른 어린 누군가는 네이버 카페의 게시물 같은 곳에 자기 소개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타에 소위 급식체로 제프 하디를 썼을테고, 



또 거기서 몇년 뒤 다른 어린이가 TV에 나와 로만 레인즈를 보고 "정말 정의로운 사람이에요." 하고 말했었지.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난 왠지 그런게 경이롭게 느껴진다.







나이 어린, 소위 "급식충" 이라는 팬들에 대해서 너무 심하게 배타적으로 태도를 취하거나 공격적으로 조롱하거나 하는 일이 가끔 있는데, 개인적으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좁은 판에서, 뭐가 그리 서로 잘나고 못나고 잘 알고 알지 못한다고 뭐하러 배타적이 될 필요가 있을까.





지금도 아무것도 모르긴 매한가지지만 그 이상으로 아무것도 모르던 내 급식충 시절의 프로레슬링 시청에서 벤와의 챔피언 등극을 지켜봤던 그 시간은, 나한텐 부끄러운 과거 같은게 아니라 그냥 내 인생에서 가장 경이롭고 자랑스러운 순간 중 한 순간이었음. 그 친구들도 마찬가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