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물리가 연구비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데 송유근 사건과도 무관하지 않으므로 다시 한번 리뷰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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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ohmynews.com/bhkimc/260982
아인슈타인은 학창시절부터 이미 결과가 나온 실험을 학교 실험실에서 반복해서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이론의 모순도 찾고, 실험과정의 모순도 찾고 하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광전효과니 상대성이론이니 하는 이론들을 발표했다.
논문을 내기까지 우리에게 잘 알려졌듯이 그는 특허청에서도 근무하기도 하며 쭉 연구와 관련된 일만을 해오진 않았다. 생계에도 허덕거렸고 시험도 떨어지고하며 나름 다사다난한 인생 초년기를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905년에 우리 나라 나이로 27살에 특수 상대성 이론에 대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다.
우리는 아인슈타인 젊은 나이에 논문을 발표한 것을 두고 그가 어마어마한 '천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에 관련된 여러 책들을 읽으면 그는 의문이 생기는 실험을 끊임없이 반복했고 또 연구실에 있지 않는 다른 순간들에도 한 두 가지 과학적 난제를 풀기 위해서 집중적으로 고민을 했다.
자, 여기서 질문 하나. 지금 이 시대에는 아인슈타인같이 '젊은 나이에', '적은 자본으로 연구하며' 큰 성과를 내는 과학자가 나올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질문의 답은 'No'가 될 것 같다.
지금은 돈이 없으면 절대 과학을 하지 못하는 시대다. 돈이 없다면 과학을 시작조차할 수 없고, 돈 없는 개인이 과학에 대한 열정만으로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 회사나 국가로부터 자본을 끌어와서 시작해야하고, 연구실 등의 단체에 들어가서 공동연구를 해야만 과학을 할 수가 있다. 과학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돈'이 필요하다.
한 저명한 과학자의 죽음
지난 2월 24일, 한국에서 노벨 물리학상에 가장 가까운 물리학자라고 불리고 한국의 노벨과학상이라 불리는 '한국과학상'을 수상했던 물리학자 이성익 교수가 사망했다. 자살이다. 나는 그의 죽음을 계기로 한국의 과학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의 과학계는 과학을 사랑해도 과학을 하고 싶지 않게 만드며, 아인슈타인같은 과학자가 애초에 나올 수도 없게 만든다.
고인이 돌아가신지 보름정도 지났는데 그의 일을 다시 들추어내는 것만 같아서 조심스럽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고인의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와 기사들을 보면서 나는 아직까지도 가슴이 먹먹하고 입 안이 씁쓸하다. 나는 그의 죽음을 보면서 한국의 과학계가 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글을 쓴다.

처음 이성익 교수의 자살소식을 듣고 나는 충격을 받았고, 그가 자살을 했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다른 교수들의 몇 배로 논문을 발표했으며 학계에서도 인정받는 위치에 있었던 그가 논문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죽음을 택했다니.
1주일 후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며 나는 그의 죽음에 관한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의문이 없어지고 난 그 자리에는 씁쓸함이 더욱 크게 자리잡았다. 그의 죽음에 관한 기사의 내용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포스텍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이성익 교수는 2008년 3월 서강대로 이적했다. 이성익 교수를 놓치지 않기 위한 포스텍과 서강대 사이에 알력다툼은 치열했지만 이성익 교수는 결국 서강대행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터진다. 이성익 교수가 연구비를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투서가 학교에 뿌려져서 그는 이직 후에도 6개월동안 포항 경찰서에 내려와서 조사를 받으며 힘들게 서강대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이성익 교수가 온 덕분에 서강대 물리학과는 BK21에도 수월하게 선정되고 학교의 명망도 드높일 수 있었다.

서강대로 이성익 교수가 오고 얼마 후 그의 연구분야인 초전도체 분야에서 새로운 초전도체 재료가 발전되고 고온 초전도체 개발을 위한 연구가 활성화되지만 이성익 교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연구를 위해 필요한 장비는 전부 포스텍에 있었고 아직 서강대에는 연구 장비가 갖추어져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혹적인 연구를 눈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는 매우 초조해했다.
애초 서강대는 학교 안에 홈플러스를 들여놓는 대가로 건물을 짓고 그 건물에 이성익 교수에 연구실을 차려 연구장비를 마련해주겠노라고 약속했지만 대학의 상업화에 대한 반대로 이는 무산된다. 따라서 이성익 교수의 연구도 2~3년간 늦어지게 되었다. 포스텍에서 연구장비를 빌려 이적 과정에서 생긴 인간관계의 상처, 연구가 늦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리던 이성익 교수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한다.


사업자가 되어야 과학할 수 있는 사회
나는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과학이 좋아도 과학공부를 정말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특히 한국에서는 더욱 과학을 하기 싫다는 생각을 했다. 앞서 말했듯이 과학은 돈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 결국 그의 죽음도 돈에 관련된 것이다. 그의 연구분야의 특성상 시설과 장비를 갖추는데 돈이 많이 드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수학을 포함한 대부분의 과학은 돈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 공부를 하고 싶다면? 유명한 교수의 밑, 큰 연구실에 들어가야한다. 산학협력 등으로 연구비가 '빠방'하게 지원되는 곳으로 가야만 맘 편히 공부할 수 있다. 교수가 되려면 유학정도는 가는 것이 좋으니 공부 과정에서도 돈이 많이 들고, 힘들게 공부를 하고 교수가 되면 휘하의 연구원 수를 늘리고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야만 하니 돈에 관한 압박은 과학공부를 한다면 평생 받아야 하는 것이다.
과학이 자본과 심-하게 결탁되는 현상은 우리나라뿐만은 아니지만, 논문가지고 교수 압박하고 국가가 주도하는 투자라도 기간을 짧게 해서 단기 실적을 많이 보는 것은 우리나라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기초과학 연구도 어떻게든지 돈 되는 것처럼 보이게 엮어야하고, 돈 되는 연구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한다.
어디 돈 뿐이랴. 우리나라 과학계의 수직적이고 불투명한 구조는 정말 공부만 하고 싶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군대를 연상케하는 수직구조. 아랫사람들은 교수의 눈치를 봐야하고 또 교수들은 논문개수, 실적의 눈치를 봐야하는 압박적인 구조.
이런 사회적 구조 속에서 과학에 대한 열정으로 마음이 가득찼던 순수한 이공학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는 것은 대외관계와 자본의 힘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과업자(사업자 + 과학자)'만이 남게 된다.
다시 한번 이성익 교수의 이야기를 꺼낸다. 만약 그가 포스텍 혹은 다른 대학에 연구장비를 빌려달라고 했다면, 연구는 거기서 하지만 논문은 내 이름으로 내고 서강대에 계속 있겠다고 했다면 다른 학교에서 '네, 과학의 발전을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사용하십시오.'라고 했을까? '우리대학에서 실적 낼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 라는 태도로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저리가라고 했을 것이 뻔하다.
이공학도는 과학하고 싶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이공학도는 과학을 하고 싶지 않다. 학부과정에서 착실하게 배운 기초과학지식을 가지고 '포화상태라고 말은 하지만 그래도 안정적이고 돈 많이 버는 전문직인 의사'같은 거나 하고 싶다. 과학자가 되면 평생 돈에 쫓겨야하고 의사가 되면 평생 돈을 쫓아 살 수 있는데 누가 과학을 하겠는가.
슬프다. 과학하고 싶어도 과학하지 못하는 사회. 앞에서는 이공계의 위기에 대해 역설하고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칭송하지만 뒤에서는 말단 연구원부터 수장인 교수까지 돈에 시달리고 시스템에 시달리는 사회. 황우석처럼 줄기세포 연구 하나로 몇 조원을 벌겠노라고 큰 소리 뻥뻥 쳐야만 연구비가 배당되서 연구 할 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는 결국 황우석처럼 사기꾼같은 과학자만 남고 아인슈타인처럼 학문을 사랑한 과학자는 살 수가 없다.
글을 마치며 故 이성익 교수의 물리학에 대한 열정을 떠올리고 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글쎄요, 몸값(혹은 연구여건) 올리려고 두 군데서 간 보다가 한쪽을 선택했는데,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가면서 자살하게 된 사건이 왜 과학자의 처우에 대한 한탄으로 돌아가는지 모르겠네요.
저도 이성익 교수님 존경하고 대체로 동의하는데 이견도 있네요. 우선 아인슈타인이 실험을 열심히 했다는 얘기는 처음 듣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론가고 실험보단 깊은 사고를 중시했던 사람입니다. 이성익 교수님이 왜 돌아가셨는지는 사실... 당사자 아니면 모릅니다.. 그 분 업적이 노벨상에 가까웠는지도 의문이고요.
http://www.mogaha.go.kr/frt/bbs/type012/common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004&nttId=23334
여기보면 여러가지 주장이 있네요
자살이유는 그분의 유언에 나와있는게 가장 정확하겠죠. 그분은 "물리를 너무 사랑했지만 잘 하지 못해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 유언을 그대로 인정해주는게 가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그 분은 더 큰 업적을 내고 싶어 하셨지만 연세도 있으시고 학교 이적과정에서 여러가지가 지체돼서 크게 낙담하신게 아닌가 싶네요. 포항공대는 연구시설이 국내최고인데 서강대로 옮기면서 그 보다 더 나은 연구환경을 기대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게 잘 안되고 나이는 들고 경찰서에 불려가고 하면서 여러가지로 좌절하신게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저능아슈타인하고 비교하는거 소름 - dc App
이 사건은 전문성하고 별 상관없습니다. 연구비를 못 받은 분도 아니고
뭐 이런 어이 없는....
장비 다 갖춘 포스텍 버리고 좆도 없는 서강대로 간 이유는?
ㄴ 그러게... 연구를 하겠다는 사람이 포스텍을 떠나 서강대로 간다는 게 당최... 위의 댓글에서 "그보다 더 나은 연구환경을 기대"해??? 이해불가네.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서카포 외에 어디서 연구란 걸 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