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wwe&no=786949
▲일프 여자 외모빨 되는 선수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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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세출의 그라레슬러 '아이카와 유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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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의 대항전 호쿠토 아키라 vs 칸도리 시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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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신일본 탈단때 일화 들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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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가 신일본 팬, 특히 타나하시와 반목하게 된 결정적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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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골의 반항아 후지타 'jr' 하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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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키가 불러온 신일본의 암흑기 - '파괴왕'과'폭주왕'의 이야기
ㅎㅇ~ 모두들 안녕? 일본 프로레슬링 일화들을 이따금씩 올리던 유동닉'DD'임.
예전에 겔에서 역대 위대한 일본 레슬러 순위 10위를 거론하던데 현재 입문자들로선 잘 모르는 레전드 이름이 많길래
그 순위권에 있던 레전드 '불꽃의 비룡'후지나미 타츠미를 얘기해 볼까 함. 수 많은 명경기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이절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경기였던
'격투왕' 마에다 아키라와의 혈전을 꼽았음.
우선 간단한 선수소개부터 할껩.
후지나미 타츠미는 일본프로레슬링이 분열될 때,당시 신일본을 창단한 이노키를 따라온 어린 레슬러로
현재는 명실상부 신일본을 떠나 일본전체에서 레전드로 꼽히는 명선수야.
드래곤 수플렉스,드래곤 스크류,드래곤 슬리퍼 또 드래곤 링인(...)으로 명칭된 일명 드래곤 살법의 창시자이자 굴지의 태크니션으로
어떤 선수와도 부딪혀도 명경기를 뽑아내며 이노키,쵸슈리키,베이더,릭플레어 등. 오랜 대립관계를 만들었던 선수들 또한 레전드 반열에 올랐지.
결국 그 공로가 인정되어 WWE명예의 전당에 일본인 중 이노키 다음으로 입성되기도 했어.
'격투왕' 마에다 아키라는 현재 일본 내 종합격투기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중 하나로
그의 마초적이고 반골적인 인생 전반에 칭찬과 비난이 섞인 인물이지만 그의 업적이 없었다면 현재 일본 격투기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지도 몰라.
칼곳치의 가르침을 받으며 캐치레슬링을 몸에 익히고 '관절기의 귀신'후지와라 요시아키와 사야마 사토루(타이거 마스크1세),야마자키 카즈오,오사무 키도와 함께
1차 UWF를 세웠으나 흥행부진으로 인해 UWF군단을 유지한 채 신일본에 복귀하게 되었지. 그러면서 이종격투기에도 거리낌이 없어서 실제로
시합을 뛰고 승리하는 어찌보면 가장 안토니오 이노키의 사상와 신념에 걸맞는 후계자격인 인물이였어.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일본 종합격투기 탄생에 시발점이 된 UWF
이쯤에서 UWF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위에 언급된 후지와라 요시아키,사야마 사토루(타이거 마스크1세),야마자키 카즈오 그리고
1차때는 신예였던 스즈키 미노루,후나키 마사카츠,다카다 노부히코가 주축이 된 단체로서 킥과 관절기를 위주로 로프반동을 금지하는
실전적인 단체 노선을 가졌어. 비판적인 어조로 말하자면 격투기 흉내내는 프로레슬링 단체였지..
허나, 이 단체 후에 메트에서 실전에서 쓰일 법한 관절기와 킥을 갖춘 레슬러들이 전국의 단체로 퍼지게 되었고
훨씬 후에 일이지만 다카다 노부히코는 'UWF 인터네셔널'이란 단체를 세워 독립하고 그것은 결국 '프라이드'로 이어지게 되었지.
후나키는 스즈키와 함께 진짜 이종격투기 전을 하는 단체 '판크라스'를 만들게 되었어.
여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1985년 UWF가 흥행부진으로 해산하고
신일본으로 군단형식으로 복귀해서 신일본VSUWF같은 대항전 느낌을 유지하게 되었어.
(*위에도 그렇고 표면적인 이유는 흥행부진으로 알려졌지만 인기도 제법 얻었는데 갑자기 해산된 느낌이 큼)
(*ㄴ뒤늦게 생각났는데 사야마 사토루(타이거 마스크1세) 거시기를 깐 게 컸지;;;;)
▲당시 실전에서 쓰일법한 강력한 킥공격과 관절기를 구사하는 UWF계 선수들은 이단아에 가까웠다.
복귀 후, 태그나 단체전은 많이 치뤘지만 직접적으로 신일본 선수들과 U계 선수들과 싱글전은 드물었어. 당시 1차 U계 세력은 비록
좌중을 휘어 잡을 엔터성은 부족하지만 단체내 도장 스파링에서 명실상부 실전 실력자들이 모인 터라 터부시되었지.
특히나, 마에다 아키라는 당시 혈기왕성한 나이에 걸맞게 누구보다 야망이 커 거친 경기를 주로 하여 가장 껄끄러운 상대였어.
그래서 모든 선수들이 쉬쉬하며 싱글전 다운 싱글전을 하지 못하고 불만이 쌓이고 있던 그때 후지나미 타츠미가 내가 싱글로 싸워 주겠다고 나선 것이였어.
물론, 당시에도 후지나미는 매우 뛰어난 일류선수였지만 실전적인 U계 스타일을 지향하는 마에다와 태크니션인 후지나미.
이렇게 워낙 두 사람에 프로레슬링 이념이 달라서 제대로 된 경기가 나올까도 싶었지.
그런데 왠 걸
▲신일본 복귀 후,처음으로 가진 마에다 아키라의 싱글전 상대는 후지나미 타츠미
후지나미는 마에다의 스타일. 즉, 온갖 관절기와 강력한 킥을 모두 접수해내며 또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어.
게다가 후반 코너에서 쓴 마에다의 스피닝 휠 킥이 후지나미의 머리를 맞추며 대량 출혈이 난 상태에서도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고 경기를 끝까지 이끌어 가
▲이나즈마 레리어트와 스피닝 휠 킥으로 끝난 명승부
결국 끝은 위에 기술의 접전으로 더블KO.장렬한 무승부로 끝을 맺게 되었지 허나,불완전한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마에다는
매우 기뻐하며 "이렇게까지 나를 여한없이 상대해주는 레슬러가 있었다"며 후지나미를 칭찬하며 고마워 해.
후지나미 또한 이질적인 스타일을 상대로도 명경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선보이며 왜 그가 초일류 레슬러 였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지.
▲마에다: 무인도에 가니 동료가 있었다.
허나.이런 후지나미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다음 해 87년, '마에다,쵸슈 안면축격사건'이 일어나게 되면서 마에다는 신일본을 이탈하게 되고
후지와라 요시아키를 비롯한 U계 선수들과 함께 2차 UWF를 창단하게 돼. 그러나 이 승부가 기념비적인 것은 시합 내용도 내용이지만
서로 다른 노선과 이념,스타일을 상대해도 그것을 프로레슬링 경기로 승화시킬 줄 아는 것이 진짜 뛰어난 레슬러의 척도라는 것을 알려준 귀중한 명승부야.
마에다 또한 훌륭한 기량을 가졌지만 그것을 맘껏 접수하며 또 본연의 색깔을 잃지 않았던 후지나미가 왜 레전드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는 선수인가를
반대할 사람이 없게 되었지.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아버지
말년에 후지나미는 자신의 단체 드라디션을 이끌면서 자신의 뒤를 이어 프로레슬러가 된 후지나미 레오나를 대동하여 아들의 성장과 부킹을
담당하고 있어. 물론 레오나의 기량이 아버지의 그것과 닮았다고 하기엔 무리지만 그래도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긴 해.
마지막으로 후지나미 타츠미가 부른 그의 전설적인 테마곡 '마쵸 드래곤' 뮤비를 끝으로 글을 마칠껩 .
이번에도 다들 긴 글 읽어줘서 ㄳㄳ
▲ㅋ
일프 정보글은 개추야
밑에 ㅈ 문가질이나 해대는 고닉 새끼하고는 다르게 존나 양질의 글이네. 앞으로도 계속 부탁합니다.
마에다 아키라는 안면 축격 밖엔 몰랐는데 감사합니다
개추크레용
햐;;
작성한 글을 검토 중에 1,2차 UWF탄생때 사야마 사토루의 합류를 잘못 헷갈린 부분이 있어서 글을 수정했음.
칼 곳치는 기존의 프로레슬링과는 다른 움직임과 기술을 선보여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는 '프로레슬링의 신' 으로 우러러 보았지요. 신일본의 첫 흥행에서 이노키와 경기를 펼쳤고, 이노키와 더불어 스트롱 스타일이 만든 인물이기도 합니다.
섹시한 여자레슬러 집중탐구편도 써줘
후지나미와 마에다의 대결도 명경기이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후지나미와 당시 전일본의 에이스였던 고 점보 츠루타 의 대결이 이루어지지 못한 걸 아쉽게 여기는 목소리도 있어요.
마에다는 재일한국인 3세 이기도 한데, 한국에 방문했을 때 부당한 시선과 대우를 받고 실망해서 귀화를 했다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