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mage.php?id=2fb2df2d&no=29bcc427b38577a16fb3dab004c86b6fb8c469a51a466a5586033df078078ef693999742ac352208f9da1c3f8974940d212c5f262f01


  누가 아버지를 옹호해 줄 텐가? 죽은 아버지가 물었다. 누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가족 단위는 좀비와 정신병자와 뒤틀린 인간 들을 생산해요, 토머스가 말했다. 필요 이상으로. 


<죽은 아버지(The Dead Father)>, 도널드 바셀미 지음, 김선형 옮김, 펭귄클래식 코리아, 2011. p115.


아버지가 죽지 않는다. 분명 죽었는데 아직도 살아서 걸어다닌다.

그리고 살아 생전처럼 끔찍하게 잔소리를 해댄다. 

결국 나는 죽은 아버지를 다시 매장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아버지와 함께. 


도널드 바셀미의 <죽은 아버지>를 네 줄로 요약하면 위와 같다. 

주인공 토머스는 죽지 않는 아버지를 매장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아버지는 신적 권위를 가진 거구의 존재로, 죽은 후에도 자신의 권위를 마구잡이로 휘두르고자 한다. 

여행하는 동안 아버지는 화가 난다고 동물을 학살하거나 여자에게 치근대는 등 사고를 친다.

토머스는 이런 아버지를 통제하기 위해 그의 권위를 빼앗고자 한다.

아버지를 땅에 묻는 일을 통해서. 


이 작품은 아버지로 상징되는 모든 것에 대한 조롱과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작품 속 죽은 아버지는 신神, 권위, 구시대의 질서 등을 상징한다. 

토머스가 죽은 아버지를 매장하는 것은 이 모든 것에 대한 도전과 전복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기존 소설 작법와 판이하게 다르다.

맥락 없이 이루어지는 대화는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를 연상시킨다.

묘사를 쓸데없이 길게 늘려 쓰기도 하고, 섹스나 상표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단어를 합성해 사전에 없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도 하고, 책 속의 책이 등장하기도 한다. 

작가가 죽이려는 게 아버지가 아니라 기존의 소설 양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 또한 드러낸다.

아버지는 원해서 되는 존재가 아니다.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 원치 않더라도 아버지가 되어야만 한다. 

바셀미는 모든 아들들도 언젠가는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걸 우울한 어조로 말한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를 매장하는 결말에서는 가슴 한 켠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아들 역시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매장될 것이기 때문에. 


마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대머리 여가수>의 혼란을 섞어놓은 듯한 소설이다. 

작가는 마치 기존 소설에 도전하기라도 하는 듯 아주 괴상한 방식으로 줄거리를 이끈다.

독자는 맥락 없는 대화와 갑작스러운 이야기의 전환, 엉뚱하게 등장하는 인물들 때문에 처음부터 혼란에 빠진다. 

이걸 작품이라고 쓴 건지, 장난치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읽는 동안 사리가 나올 것 같다고 느낀 건 이 책이 처음이다.

그러나 실험 정신만큼은 대단한 책이니, 포스트모더니즘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도전해볼 만하다.

도저히 못 읽겠다 싶은 독자는 중간에 수록되어 있는 <아들들을 위한 사용 설명서>만 읽어보길 바란다.

이 부분도 어지간히 맛이 갔지만(?) 그래도 비교적 정연하게 쓰여 있다. 

특히 아버지가 되어야만 하는 아들의 딜레마를 잘 지적하고 있어서 읽어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