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파고에서 호랑이까지 : 자연의 역습

 

 

 

불안해진 미래, 안전이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
설마하니 미신으로 이 모든 것이 나아질 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드라마, 왜 더 안전하고 정확해 보이는 제파고 대신에 호랑이를 말하고 있을까?

왜 이 시대에 새삼스럽게 호랑이가 필요한 걸까?

 

보호받지 못한 10대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어른들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사회에 일찌감치 내몰렸다.
일곱 살에 바다에 내던져지고, 서커스단의 묘기처럼 지식을 전시해야 했던 소년 제수호는
누구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누구보다 앞질러 이론들을 꿰어 차며 소년은 어른 대신 이성과 논리를 보호자로 삼았다.
내가 다 아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다고.
열여섯의 나이에 부모를 잃고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던 소녀 심보늬는
자신이 충분한 보호자가 되지 못할 것에 전전긍긍했다.
결국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뒤로,
자신의 보호자로서의 자격을 파기시키고 그 자리에 유사 어른, 신령을 대체시켰다.
보호받지 못한 소년과 소녀는 제각기 이성과 미신을 동원했지만 본질은 같았다.
네가 너무 똑똑해서, 네가 너무 재수가 없어서라고 비겁하게 책임지우고 뒷짐 진 어른들.
두 아이들은 그렇게 성장기를 훼손당했다.
이 드라마에서 에이미와 건욱 역시 수재인 오빠를 대체하거나 부재하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대체 어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잉어즙, 부적, 기적의 물.
마음은 서성이지만 정작 후세대들에게 필요한 것은 건네지 못한 채,
어른들도 결국 길을 잃고 있었던 게 아닐까?

 

 

보늬야, 네 탓이 아니야.

 

최근에 흥행기록을 경신한 한국영화는 기이하게도
“답을 찾지 못한 피해자들이 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라는 무겁고 추상적인 주제를 다뤘다.
신문의 사회면이 속수무책으로 피해자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들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도, 안심할 수 있는 미래도 없다.
누군가의 부주의, 혹은 불운으로 치부하며 실은 우리 역시 가슴 속에
보늬처럼 소금 한 병쯤은 끼고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무속신앙이란 애초에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만들어냈다.
합격을 기원하는 기도 시간에 실제로 공부를 하면 합격을 할 수 있고,
잡귀를 제거해 달라는 굿판에 들이는 비용을 병원비로 쓰면 치료가 가능한 사회에서
그런 미신들을 붙들고 있기란 쉽지 않다. 저절로 폐기처분되어 버리는 것이다.
예측이 불가하고 설명이 되지 않는 사회가 또다시 미신과 반목으로의 퇴행을 권한다.
인류가 착실하게 쌓아 온 발견과 이해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면,
피해자의 불운 때문에 빚어지는 재난이라고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모든 심보늬, 당신 탓이 아니다.

 

 

IF, 내가 당신이라면

 

처음에 제수호는 심보늬에게 미신이 허구라는 것을 이해시킬 수만 있다면,
그 손에서 미신을 놓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심보늬는 애초에 스스로 선택한 길이 공학도였고,
지금도 프로그래머로 매일매일 오류를 바로잡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남녀의 하룻밤이 얼마나 추악한 범죄와 위험 앞에 놓여 있는지 알고도,
하룻밤을 보내지 않아도 살아 있는 동생의 존재가 증명하는 점괘의 논리적 오류를 알고도
심보늬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제수호는 진짜 문제를 알게 되었다. 심보늬의 문제는 미신이 아니었다.
아무 남자와의 하룻밤, 동생이 죽으면 자신이 존재할 필요도 없다는 결연함.
그 기저에 침잠한 지독한 자기혐오다.
심보늬에게 필요한 것은 양 손에서 억지로 미신을 떼어놓는 조치가 아니라,
그 겁에 질린 두 손을 감싸줄 따뜻한 온기였다.
제수호는 모를 수가 없다.
물에 빠져 목숨이 경각에 달한 순간, 사람들의 플래시 세례에 공포를 느끼던 그 순간,
제수호도 너무도 필요로 했던, 바로 딱 그 한 자락의 마음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호랑이다

 

그러나 바로 최근까지도 자신의 불안을 알약으로 조절하던 제수호였다.
알약으로 식사를 대체해도 상관없다며, 모든 시간을 효율성으로 계산하려 했던 슈퍼컴퓨터 같은 존재.
철통 보안의 작업 환경 속에 접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제한되었고
가상현실이나 컴퓨터 속 캐릭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대면 접촉은 희귀해졌다.
안대, 시계, 비밀번호, 홍채인식. 많은 가림막을 통해서 사람들과의 거리는 벌어져 갔다.
그렇기에 그 제수호에게

막무가내로 연애를 하자거나, 하룻밤 같이 살이 맞대자는 원초적인 접근이 닥쳤을 때

그 생경함은 더 충격적이었고, 

그동안 지나치게 안온하게 봉인시켜놓았던
청년 남자에게 당연한 원초적인 욕망과 감각과 신경세포를 일거에 들끓게 만들었다.
어쩌면 일곱 살 통과의례의 실패로 제수호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수컷으로서, 야성으로서의 자신을 폐기시켰는지도 모른다.
플래시 세례 속에 덜컥 손을 잡아주고, 비를 함께 맞고, 업어주고, 젖은 얼굴을 닦아주고
손끝이 닿는 설렘을 느끼며 남자 그리고 사람 제수호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고립된 성채에서, 불면의 밤 끝에, 메마른 식욕으로 살아가던 제수호는
맞닿은 살갗 아래에서 뜨겁게 피가 돌면서 동시에 잊었던 감각들이 동시에 함께 돌아온다.
행위, 대면성, 접촉이라는 오랜 인류의 관계맺음이 되살아난다.
식욕이, 이성에의 성욕이, 인간에 대한 보호욕구가 되살아난다.
이제 제수호는 설명을 늘어놓는 대신에
우산으로 비를 가려주고, 함께 잠들고, 함께 밥을 먹는다. 시선을 맞추고 포옹한다.
주문 대신에 당신이 태어나줘서 다행이라는 위로를 건네고,
부적 대신에 매일 매일의 데이터로 안심을 더한다.
그렇게 그는 위험에 빠진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호랑이가 된다.

 


호랑이 제수호의 성장기, 혹은 성장기의 복원을 지켜보며 생각해 보게 된다.
맘모스나 천연두가 창궐하던 시대가 지금보다 안전했을 리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내 옆집에 사는 그가 행여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있거나 혐오에 경도되어 무정한 가해자가 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어쩌면 그도 나처럼 두려워 떨고 있는 줄도 모르고.
우리, 이제 서로의 손을 잡는 데에 호랑이만큼의 용기가 필요해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