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담그려는 준영 엄마

심란할 땐 일 벌려 놓는 게 최고죠

 그런데 액젓 뚜껑이 잘 열리지 않습니다



거머리 껌딱지 같이 엄마 옆에 붙어 있다가 야무지게 뚜껑을 열더니 액젓 쓰나미를 일으키는 준영이



기가 막힌 엄마

하마터면 살갑게 등짝 스매싱을 날릴 뻔 합니다



엄마가 정줄 차리기 전에 액젓 받고 물 두 바가지 촵촵~~

엄마는 완전 뚜껑이 열립니다



엄마 속을 제대로 긁어 놓아 흐뭇한 준영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청소며, 빨래며, 차마 인간이 먹을 수 없게 만든 을이의 그로테스크한 요리마저 미슐랭 쓰리 스타 음식으로 환골탈태시킨 요리 데코 솜씨며...

시집(?)갈 준비 다 된 살림 9단 준영이가 이렇게 음식에 못할 짓 하는 건 엄마의 심란한 마음에 대꾸해 주고 싶어서 입니다

사람이 흥분하면 속내를 다 드러낸다는 걸 잘 아는 준영이

사시 1차 패쓰한 스펙을 이럴 때 써 먹습니다

이제 유도 심문을 통해 피의자 진술을 받아낼 차례



'을이 이쁘지? 꼭 예전 엄마 같지?

근데 을이는 엄마처럼 안 만들 거야

엄마처럼 후지고 촌스럽게 신분차이, 학력차이, 혼자 계산하고 넘겨짚고 주눅들게 안 만들 거야'




엄마는 배추 탓을 합니다.

'배추 맛이 왜 이래? 이것들이 또 속인 거 아냐'


준영이는 행간을 읽어 냅니다.

엄마는 준영이의 마음이 못 미덥습니다 . 법대 때려 치고 연예인 나부랭이를 해서 엄마 행복을 내동댕이 친 전과가 있으니까요

준영이는 한 여인이 또 다른 여인에게서 자신의 상처를 보고 있음을 압니다


'을이는 엄마처럼 혼자 도망치게 안 만들거야.'


'삼촌, 우리집 배추 맛이 왜 이래...한번만 더 속이고 거짓말 하면 거래 확 끊어 버린다 그랬지! 이것들이 먹는 거 가지고 장난을 쳐..'



준영이는 또 행간을 읽습니다.

현실에 타협하고 사랑을 버리는 파렴치한 아들이 될 까 두려운 엄마의 마음을 읽습니다

엄마는 준영이의 진심과 다짐을 듣고 싶은 겁니다



'엄마가 뭐라 그래도 안놓을 거야. 내가 죽어도 안놓을 거야, 을이.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살거야'



엄마는 몇 년만에 처음으로 아들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 봅니다

그 눈 속에서 뭍어나오는 진심을 들여다 봅니다

아들 녀석의 사랑을 아들을 위해서, 아들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또 자신을 위해서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준영이는 너무나 아픕니다

힘들게 마음을 보여준 엄마에게 아들은 곧 정말 못할 짓을 할 테니까요




우연히 얻어 걸리는 방송 말고는 시간, 날짜 맞춰 드라마 볼 일이 없는 드라마 고자인데 함틋은 이런 고자도 부지런 떨게 만드는 참 예쁜 드라마

무식한 소리지만 이경희 작가 작품을 하나도 본 적 없는데 함틋을 보면서 이 작가의 작품을 챙겨봐야 겠다는 의지가 샘 솟는다

그런데 함틋이 요즘 포털에서 유독 집중포화를 받고 있어 함리둥절스럽고,,

구태의연한 플롯, 부족한 개연성 등등

함틋이 굴비도 아니고 뭘 그리 줄줄이 엮어 모두까기 하는지...어찌나 정성스럽게 까는지 하마터면 감동할 뻔 했다

모두까기 장인들은 함틋이 보여주는 '느림의 미학'에 대해 한 번이라도 들여다 볼 생각이나 해 본 걸까

'세익스피어 이후로 새로운 스토리는 없다' 는 게 정설이고 멜로 드라마는 사람이 살면서 겪는 희노애락 이야기라 태생 자체가 구태의연하고

그래서 창작은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독창성에 있는 거고

작가의 자기복제는 매너리즘이냐, 작가의 시그니처냐 판단하는 건 오로지 완결된 작품을 논할 때 할 수 있는 얘기인데 이제 중반 달리는 작품에 조루환자들 화이팅 넘치구요;;

'불친절해서 불편하다' 고 하는데 준영이 말처럼 '인간의 자유 의지는 뒀다가 국 끓여 먹냐' 고 해 주고 싶다

이쯤에서 창의력 말살시키는 주입식 교육에 엄청난 사교육비 낭비하는 한국의 교육 정책도 한 번 밟아줘야 하는 건가...

왜 모든 걸 주입해 주길 바라는 걸까

왜 살아온 인생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메타포들을 하나로 통일해 주길 바라는 걸까

보려고 해야 보이고 알려고 해야 알 수 있는, 그래서 그 노력이 카타르시스를 주는 과정을 왜 빼앗으려 하는 걸까

글 나부랭이 좀 쓴다는 사람들은 다 알거다

'할많하않' 스킬이 얼마나 고차원적인 스킬인지

함틋은 그런 맥락에서 참 좋은 드라마다

함축과 여백을 시청자에게 양보하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고민했는지 보여서 고맙기 까지 하다

그리고 시청자에게 캐릭터들의 감정선을 따라잡고 각자 해석의 몫을 챙길 수 있게 천천히 이야기를 펼치는 느림의 미학이 내겐 무척 친절하게 느껴진다

산전 수전 공중전 아직 겪어보지 못했는데 함틋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압축된 감정들이 있고,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보여 '어머, 이건 꼭 봐야돼' 하게 되고

배우의 힘인지, 이야기의 힘인지 눈빛만으로 보여주는 구구절절 사연들도 다 납득이 되서 내가 관심법을 득도한 건가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이미 결말을 알아서 뭐! 그래서 뭐!

그게 신파를 강요한다고?

강요하면 겁나냐?

누가 강요하면 다들 자유 의지 없이 강요당하냐?

성급한 일반화 오지구요

요즘처럼 클립 영상으로 순간 감정을 소진시키는 사람들에게 울어라 울어라 한다고 뻘쭘하게 쳐 울지 않는다는 걸 왜 몰라

함틋은 물론 신파지만 평소 꺼내 쓸 일 없는 감정들을 톡 톡 건드려 줘서 내게도 이런 감성이 있었구나 깨닫게 만든다

그게 고맙고 기특하고 그래서 계속 곱씹게 만드는 드라마

좋은 드라마에 시청률 하나로 일희일비하며 이때다 싶어 키보드 워리어들 정신 승리하고, 거기에 밥숟갈 들이밀며 장단 맞추는 기자들의 병신미가 안쓰러워 한 마디(?) 격려를 안 해줄 수가 없네

결론은, '존중입니다 취향해 주세요~' 이겠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배우들도, 작품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어쨌든 함틋은 미쳐 돌아가는 지금 세상에서 어렵게 건진 명품임에 틀립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