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진해서 함경도를 점령한 일본의 장수, 가토 기요마사.


그는 무식한 무장이라는 대중의 편견과는 달리 행정과 보급에 일가견이 있는


공무원의 기질을 지닌 장수였다.


  


당시 함경도는 서북차별. 그리고 임해군과 순화군의 행패 때문에 


조선 중앙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으며


가토는 이런 일부 함경도민들의 민심을 얻기 위하여 파격적인 


계획을 구상하게 된다.

 

그것은 함경도를 자신의 본토인 일본과 같은 행정체계로 처리하되,


세금은 자신의 본토인 일본보다 적게 거두는 것.



함경도 농민들이 자신의 수하에 들어올 것을 잔뜩 기대한 가토 기요마사였지만


정작 농민들은 분개했고 함경도인들은 의병장 정문부의 지휘아래 


가토 기요마사를 개박살 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북관대첩이다.




가토 기요마사는 자신만의 은혜를 조선인들에게 베풀었는데 왜 


함경도인들은 오히려 분개해서 의병이 된 것이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의 혜자급 세율 >>>>>>>> 조선의 수탈급 세율 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은 전체 수확량의 50% 이상을 거둬가는게 일상이었고 심하면 70~80%까지


거둬갔을 정도로 일본 농민들의 삶은 비참했다. 40%만 걷어가도 인자한 다이묘라고 


칭송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참고로 선조가 왜적 중에 절반이 우리 백성이냐고 물은건 


왜적들이 해안가 노략질할때 거기에 같이 편승에서 노략질하던 산적들을 지칭한 것.


이런 기록도 임진왜란 극초반 6월~7월까지만 언급되지. 그 이후로 전부 항일의병으로 돌아섬..




헬조선에서도 버틴 헬조선 노예들을 의병 일으키게 만든 좆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