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영이 삶만큼 애잔하고 짠내나는 게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준영이 엄청 불쌍하게 살아왔고 그러고 있어. 그런데 을이도 그 못지않게 힘든 삶을 살아왔어.
1할은 준영이 때문일거고. 아버지 사고로 힘들어하던 을이에게 육체적인 짐을 하나 더 얹어준 게 됐어. 똑같이 일을 해도 남들보다 빨리 피로해지고 픽픽 쓰러지기 일쑤지. 준영이는 그런 을이의 상황을 알 도리가 없어. 을이 앞에서 준영인 늘 죄인이니까, 을이 앞에 나타날 면목도 없고..

5년이 지났고, 준영이는 말기 암환자가 되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해야만 해. 그 순간에 준영이는 첫째로 을이를 떠올렸고, 을이에게 졌던 빚을 갚고 떠나고자 을이의 소식을 수소문했지. 그 때 정말 우연처럼 을이를 마주하게 돼. 근데 그렇게 찾던 \'준영이의 을\'이는 준영이가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니었어. 삶에 찌들어 자존심은 내다 버린지 오래, 그렇게 당당하고 씩씩했던 을이가 자신을 신준영 씨라고 부르며 다큐를 찍어 달라고 어쩌면 애원을 하고 있었어. 그렇게 악착같이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준영이. 그래서 그런 을이를 부정한 걸거고, 그래서 을이가 잊었으리라 생각한 게 아닐까. 바쁘게 살아가면서 그날의 기억에 조금은 무뎌졌으리라 제멋대로 추측했겠지. 나라도 그랬을거야, 진짜 상처의 깊이는 피해자만이 아는 거니까.
그런 준영이가 생각하기에 을이를 그 진흙탕 밖으로 꺼내주는 방법은 금전적으로 도와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거야. 이미 (준영이가 보기에) 아문 그 상처를 헤집어봐야 좋을 게 없을거고, 자기가 떠나기 전 과거에 졌던 빚을 갚는 방법으로는 지금 상황에선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겠지. 그 과정에서 을이를 사랑하는 거... 그건 어쩌면 준영이가 부리는 마지막 이기심이었을테고.

그러다 준영이가 브레이크를 건 건 이대로 을이를 사랑했다간 을이에게 더 큰 상처를 남겨 영원히 죄인으로 남을 거라는 사실을 자각해서였을거야. 섬에서 혼자 있으면서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어. 하지만 을이는 이미 준영이에게 제 마음을 열어버린거야. 아저씨에게 두 번이나 차이고 지칠대로 지친 마음을 준영이에게 기댄 거겠지. 이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은 게 좀 아쉽지만, 정황상 이때는 을이가 준영이를 온전히 사랑했다고 볼 수 없어. 하지만 을이는 준영이에게 마음을 열어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준영이도 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냥 을이를 사랑하기로 해.

그런데 을이의 골은 준영이 생각보다 무척 더 깊었던거야.. 그때의 상처가 낫고 뭐고를 떠나서 곪아서 문드러져버린 을이의 상처.. 그걸 최현준 사고로 알게 된 준영이는 결국 을이에 대한 마음을 접고 방향을 트는거지. 이게 늦었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따지고 보면 개연성이 층분해. 을이가 그 날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리라는 오해로부터 그게 오해임을 자각하기까지의 과정이 납득 가능하게 정말 잘 그려졌어. 12회 초 나레이션.. 거기서 소름이더라. 퍼즐이 탁 맞춰지던..
결국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준영이는 욕심 하나 없이 모든 걸 깔끔하게 정리하고 정은이 처단부터 최씨 일가까지 보내버리고 을이를 사고 이전으로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일부만이라도 돌려놓는 것으로 마음을 바꿔먹어. 극 초반엔 약간 남주 캐붕 아닌가 싶은 점도 있었는데 이제 와보니 모두 납득이 간다. 사실을 모두 안 이후엔 깔끔하게 마음을 접는 순간부터 준영이 캐릭터가 온전하게 받아들여진 느낌. 그래서 이제야 온전히 준영이가 처연히 느껴지고 애틋하게 느껴져. 오히려 그래서 좋다. 준영이의 심리를 여러번 곱씹어볼수록 새로운 무언가가 느껴지네.

결국엔 시원하게 복수하고 을이에게 갈 준영이지만.. 이 모든 일들이 후반을 위한 것 같아. 사건이 거의 마무리된 후반부에 차곡차곡 쌓아온 이 감정들이 우리 상상보다 더 진하고 깊게 터져서 스며들 것 같아. 그게 함틋이 인생드라마인 이유다 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