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차정 열사 여고생 시절 쓰셨다는 시. 

저기 나오는 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난 언니 수정을 말하는 것이지만, 중의적인 해석도 가능함.



이분 일신 여학교 시절 쓰울, 팡주 등의 학교와 연합하여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왜경에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심

보통은 고문이라고만 표현하고 마는데 당시 왜경의 고문이란 것은 집단강간에다 님들이 즐겨보는 야구동영상에 포함된

성적 가학 x 인체에 손상을 가할 수 있는 강도의 성고문이 기본옵션이었기 때문에 불임이 된 몸으로 겨우 풀려나심.


이후 머륙으로 망명.


의열단에 가입하여 여성의 몸으로 총 들고 무장투쟁에 나섬. 

의열단장이던 김원봉과 결혼.


그리고 곤륜산 전투에서 쪽군에 포위되어 머륙 콩사탕 부대가 전멸 위기에 빠지자 조선인 특공대가 활로를 뚫으며 

탈출에 성공하는데 이 과정에서 총상을 입음.


이래저래 일이 있고나서 중경 임시정부으로 감.

하지만 이 때는 임시정부에 돈도 없고 김원봉이고 박차정이고 굶는 게 예사였다고 함.

총상 후유증에 관절염에 이래저래 병 치레를 하다가 광복을 1년 앞둔 44년에 사망. 

(제대로 먹기만 했어도 죽진 않았을 거라는데...)



도올 할배 말로는 김원봉은 가장 큰 정치적 동지이자 정신적 반려자였던 박차정을 잃고 울부짖었고,

박차정의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광복까지 기다렸다가 직접 업었대나 들었대나 암튼 데리고 조국에 돌아옴.

그리고 자기 고향 밀양 땅에 안장.


밀양은 대대로 지세가 거세서, 강한 인물이 많이 났지만 그 밀양 남자 김원봉을 휘어잡은 동래여인 박차정이라고 표현함.





참고로 동래에 가면 탕수육 이빠이 주기로 유명한 태백관이 있는데, 거기서 탕슉 먹고 나오면 박차정 열사 생가를 볼 수 있음.

나도 태백관 땜에 첨 박차정 열사 존재를 알게 됐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