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이가 달라졌다.


언제서부턴가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기라도 한 듯,

'내 존재도 아낄 가치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라도 한 듯이..


이 변화는 준영이가 찾아주고픈

을이의 '봄'

그 시작이었겠지.




" VJ 가 촬영만 잘 하면 되지.

  꼭 옷까지 깨끗하게 입어야 돼요?

  내가 서윤후씨랑 잘 것도 아닌데 "


" 뭐라구요?"





달라진 을이 모습을 반기는 준영이.


준영이 속마음 :  (잘 한다 우리 을이. 그렇게만 살아 줘 그렇게만)





" 그러니까 서윤후씨가 변태소리 듣는 거예요.

  일이 바쁘다보면 안 씻을수도 있고,

  옷도 좀 더럽게 입을 수도 있지

  내가 똥을 묻히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



을이의 공격적인 일침은

누가 봐도,

서윤후보다 비교적 이성적이였고

틀린 말 한군데가 없는 옳은 말 이었다.


그러나,




을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 였고

강자 앞에 서있는 을이 모습은 

그 누가 봐도 '을'의 위치였다.



" 너 꺼져.. 이게 어디서 주제도 모르고..

  니가 그래서 신준영한테서 짤렸구나?

  (준영을 향해) 넌 임마. 이런 거지같은 게

  형 VJ로 들어온걸 알았으면 사전에 정보를 줬었어야지~ "





이럴 때 강자에 위치한 준영이

바로잡아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어 아픈 준영이.


" 몰랐어. 노PD가 형 VJ인거..

  알았으면 얘기했지 당연히."



을이가 거지취급을 받는데에

그 누구보다, 자극받았을 인물이

그 누구보다, 태연하다.




을이는 그렇게 또 한번

땅바닥 저 밑으로 내쳐진다.

내 삶에 든든한 나무가 되어줄 것 같았던 준영인데.


다시 내 존재도 귀함을 알 수 있었던 것도

오직 준영이 때문이었고,

다시 내 존재가 땅으로 꺼지는 것도

아마 지금의 준영이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상처받는 작은 을이.





굴욕을 감내해야 하는 것보다,

준영이의 무심함이 더 가슴을 후벼파고 있다.


어두운 곳에서 왜 그러고 있냐고

거기서 나오라고..

나와서 나랑 같이 웃자고

손을 내밀어주던 준영이가

하루아침에 작정한 듯이

을이를 외면한다.






준영이는 코빼기도 뵈지 않던 경찰서 앞에서도,

대답없는 준영이네 집 현관 초인종 앞에서도,

을이가 놓지 않기로 한 '신뢰의 끈'


그 끈 만으로

이 아픈 자리에 버티고 서있기엔..


을이는 여리고 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