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


***


옥타리우스 한구석에는 쓸쓸한 선술집이 한채 쓰러질듯 비틀거리며 서있다.

비라도 올라치면 선술집의 목재벽은 세상 시름은 모두 짊어진 것 마냥 끙끙대며 신음하고, 쓸쓸한 보슬보슬 빗소리에 맞춰 낡은 전자렌지 위에서 된장찌게가 부글부글 끓는다.

그때가 스-웜로드 사장이 비틀거리며 선술집 안으로 들어오는 때이다.

덩치가 집채만한 스-사장은 오늘도 오른뺨이 시린지 네 개나 달려있는 팔 중 하나로 슬슬 쓰다듬고 있다. '니-드 요식업체'라는 중소규모 식품납품업체를 힘겹게 이끌어오는 스-사장은 몇년전 대기업 '울트라마린'의 CEO 칼가에게 부하들이 다 보는 면전 앞에서 죽빵을 맞고 나동그라진 적이 있는 것이다. 자신만 창피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 스-사장님 때리지 말라고 달려드는 부하직원들까지 닥치는대로 때려눕힌 '울트라마린' 기업놈들은 그들의 파란 양복에 기분나쁜 서민의 피가 묻었다며 역정을 내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 후로는 항상 오른뺨이 시린다.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더.

그곳을 괴롭히는 것은 같잖은 고통의 앙금 따위가 아니라, 골수에 깊히 아로새겨진 수치심이기에, 아마도 이 가엾은 중소상인에게 영원히 남을 흉터일 것이다.


"어서 옵셔! 어이구, 스-사장아녀?"


"안녕하쇼, 가-주인."


어깨가 축 쳐저선 들어오는 스-사장을 넉살좋게 맞이한 건 술집 '옥타리우스'를 운영하는 가즈쿨씨다. 가즈쿨씨는 덩치가 크고 인심 좋게 생긴 오크였다. 그의 머리에선 교통사고로 머리가 빠개졌던 탓에 그 자리를 매꾼 빼-빠늄이 번쩍거렸다.


"스-사장, 오늘도 기분이 안조은가벼? 먼일 있남?"


"별거 아녀, 에휴. 가-주인, 거 오늘 맛있는 거 좀 들어왔써?"


"뭐 늘 똑같지 뭐. 요즘 도매점 놈들은 우덜같은 영세상인한테는 제대로 된 물건 안주는 거 모르남."


"그럼 된장으로 줘, 쏘주랑."


"네이, 된장 하나 쏘주 하나!"


스-웜로드씨는 묵묵히 쏘주를 들이킨다. 천오백원짜리 워프이슬 클래식이 그의 오장육부를 덥힌다. 가-주인은 오늘따라 스-사장이 풀이 죽은 것을 눈치챈다. 그는 일찌감치 가게를 접기로 하고 샤-따를 내려버린다. 어차피 손님이라고 해봤자 스-사장 한명뿐이다. 스-사장은 묵묵히 계속 소주잔을 비울 뿐이다. 가즈쿨은 뿌라스틱 의자를 하나 가져와 스웜로드 옆에 앉아 자상하게 묻는다.


"뭔일 있었는지 말해벼, 요즘 세상에 말도 못허구 살면 그게 독이 되뿌랴. 몸에 쌓여서 인블도 못굴리는 댜미지를 주는기라. 말해벼."


스-사장은 재촉에도 불구하고 말을 잇지 못한다. 그가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은 것은 워프이슬 클래식이 두병째 왔을 때의 일이었다.


"오늘 길거리에 나가봤는디...윙타 한마리가 부러운 눈치를 하고 있더라...그놈이, 하라는 수주는 않하고 뭘하고 있나 봤더니, 글쎄 하-이마트에서 나오는 TV 광고를 보고 있더라. 넋을 잃고서 멍-하니 부러운 눈치로 말야."


"워매, 그래써?"


"도대체 뭔 광고인가 해서 나도 슬그머니 다가가서 보는디, 그놈이 날 눈치채곤 화들짝 놀라서 스우핑해서 도망가드래. 하도 이상해서 광고를 보니께, 글쎄...라스캐논 홈쇼핑 광고더라. AP2짜리. 제국 기업꺼."


"허허...그랬구만 기래."


스-사장은 가슴이 너무도 아팠다. 이미 가세가 기운 기업을 억지로 등쳐매고 끌고가던 윙-타가, 다른 대기업의 신상품을 부러운듯 처다보는 그 광경은 칼가의 죽빵보다도 더 강렬하게 그의 심장을 찌른 것이다.


"그, 그거 보니까 너무 서럽더라. 내 자식같은 사원한테, 저딴 거 하나 사주지 못해서, 씨발...내가 너무 한심해서...내가 만들어줄 수 있으면 좋은데...내가 무능해서..."


"어허! 이 사람 무슨 소리야! 자네가 왜 무능해! 자네도 그 말아먹을 대기업 놈들만 아니면 한가닥 하는 사장이잖어!"


윙-타라면 스웜로드네 회사에서 그나마 인재로 뽑히는 친구다. 윙-타가 발로, 아니 날개로 뛰면서 수주를 받고 다니지 않았다면 영세 중소기업인 니-드 요식업체는 대기업의 발 아래 그대로 깔려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타 회사의 상품을 보면서 넋을 잃고 있었다니. 가즈쿨은 스웜로드가 속이 쓰린 이유도 짐작이 갔다. 스웜로드가 소주잔을 소리나게 탁자에 내리쳤다.


"씨...발....남들 다 있는...그 흔해빠진....존나 흔해빠진...AP2가...왜 우리는 못만드는데...왜 우리는 못가지는데...왜...씨발..."


"진정혀, 스-사장. 워프랜스 있잖어..."


"지, 지난번에 윙타가...그거 쓰다 페릴 갈려서 병원들어갔어...씨발...씨빨! 좆같은 세상! 왜 남들은 존나 쉽게 할 수 있는걸 우리는 이렇게 좆같이 돌아가야해? 씨발! 좆같은, 좆같은, 좆같은...야들아, 미안해. 이 사장이 씨발같이 병신같은 종족의 주인이라, 정말 미안해..."


가즈쿨 주인은 말없이 파워-클라를 뻗어 약소종족 동지의 어깨를 두들겼다. 스사장은 조금 진정됐는지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가끔은 주석촌간 말-란타이 그놈이 정말 부러워."


"애끼, 이사람아! 그런 심한 소리하지말어! 개똥에 굴러도 이승이 낫지!"


"가-형, 그래도 씨발, 언젠가는 우리도 볕들날이 오겠지?"


"당연한 소리를 하고 기래! 우리도 언젠가는 제국 기업놈들 면상에 죽빵을 갈길 날이 올 것이여."


가즈쿨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고, 스-사장은 처연한 미소를 짓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렇지? 형님, 술 잘마셨어."


"그려그려, 나중에 또 오는기야. 쥐구멍에도 볕들 날 오지 않겄어? 저 옆동네 스케이븐 있지? 걔들은 쥐새끼인데 지금은 완전 하늘로 날아올랐다드라. 우리도 그렇게 못될 게 어딨어?"


스웜로드는 킥킥대고는 비틀거리며 문을 빠져나갔다. 가즈쿨 주인은 그 뒷모습이 어느때보다 어둡게 느껴져서, 그를 쫒아 붙잡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차마 그럴수는 없었다.


이튿날, 뻐근한 구형 몸을 움직여 아침밥을 준비하러 몸을 일으킨 가즈쿨은 뉴스를 틀다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허...씨발...스-사장...왜..."


'영세 중소기업 사장 '스-모씨' 생활고 비산 자살...보덕계의 인류애 어디에'


'영세 중소기업 '니-드 요식업체' 파산신청...종삭 확실시'


짧은 단신 사이 사이로, 어제 만났던 패배자의 마지막이 흐르고 있었다. 가즈쿨 사장의 눈에도 녹색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죽은이가 들어줄리도 없는데, 낡은 TV의 브라운관에 매달려 화면 하단의 단신을 쓰다듬으며 통곡했다.


"아이고, 이 평신 자식아, 아이고...네놈이 처자식이 몇인데,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아이고...이 평신 자슥아..."


빗소리가 들린다. 아마 오늘도 쏟아질 모양이다.






언젠가, 옥타리우스의 쥐구멍에도 따스한 햇빛이 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