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처음 날 때
인연인 사람들은
손과 손에 붉은 실이
이어진 채 온다 했죠
당신이 어디 있든
내가 찾을 수 있게
손과 손에 붉은 실이
이어진 채 왔다 했죠
눈물진 나의 뺨을
쓰담아 주면서도
다른 손은
칼을 거두지 않네
또 다시 사라져
산산이 부서지는
눈부신 우리의 날들이
다시는 오지 못할
어둠으로 가네
아아 아아아 아아아
고운 그대 얼굴에
피를 닦아주오
나의 모든 것들이
손대면 사라질 듯
끝도 없이 겁이 나서
무엇도 할 수 없었다 했죠
아픈 내 목소리에
입맞춰 주면서도
시선 끝엔
내가 있지를 않네
또 다시 사라져
아득히 멀어지는
찬란한 우리의 날들이
다시는 오지 못할
어둠으로 가네
산산이 부서지는
눈부신 우리의 날들이
다시는 오지 못할
어둠으로
당신은 세상에게 죽고
나는 너를 잃었어
돌아올 수가 없네
다시 돌아올 수가 없네
아아 아아아 아아아
고운 그대 얼굴에
피를 닦아주오

 

 

 

 

 

 

 

 

 

 

 

 

 

 

 

 

 

 

 

 

사람의 것이 아닌듯한 애기장수의 현신은

기어이 누이를 구해내고

제팔과 누이의 손목을 동여맨다.

다시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처럼,

'애닳고도 충만하게하는 사랑'의 상징이다.

 

'오라비 믿지?'

'응.'

궁수까지 어찌할 수는 없는지

아니면 애기장수님은 노상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결국 새파란 물속으로

손을 잡고 떨어져내린다.

 

옥사 안에서

그들의 아비는 통한으로 죽어간다.

아득한 거리건만

안타깝게 뻗어보는 그 손이

아이들을 보는것 같다.

그리고 5회의 행복한 한때는

돌아갈수 없는 시절이 되어버린다.

'저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어라. 아부지.'

아버지 역시 자신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 후회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그 가엾은 놈이 눈앞에 밟히는 것인가,

진즉 농사나 지을 것을 생각한 것일까,

 

세사람 아니

동생들을 찾아 안타깝게 헤메는 길현이까지

네식구의 모습 위로

이 노래가 흐르고 흐느낀다.

 

눈부시고 찬란했던 우리의 날들이

그렇게 스러지고 있다.

다시는 돌아올수 없을 어둠 저편으로,

 

길동이

아모개의 삶을

잇는 동시에 넘어서야 하는 이유 역시

그 엔딩에 있다.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는 앗기지 않기 위해,

다시는 타락하거나 타협하지 않기 위해

결국 패배하고 절망하지 않기 위해

'우리'와 상관없는 '너희'를 버려두지 않기 위해

더는 '불안한 행복'에 쫓기다 먹혀버리지 않기 위해,

뭘 하며 먹고 살던 희망 하나는 가질수 있는 

그런 세상을 위해,

 

'전 아무 것오 아니어라.'

그 누구도 아무 것도 아니어서는 아니된다.

그리고 아들은 이제 허망하지 않은 무엇으론가

기어이 되어갈 것이다.

 

'나는 씨종 아모개의 아들 길동이오.'

그 아들이

훗날 당당히

최고의 웃전을 향해 하던 말

 

이제 우린 그 진짜 길동의 여정을 보게될 것이다.

 

6회 엔딩은 그래서

또 하나의 끝이자 시작인 셈이다.

 

 

 

너무 길어져 잘려버린 감상의 마지막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