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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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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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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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두 사람의 의기투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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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펴고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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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비극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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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이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덩어리를 바라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불이다.


 하나, 둘, 점점 늘어가는 횃불들.


 뜨거워.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덩이를 느끼며, 공포에 질린다.


 뜨거워!


 횃불이라 생각했던 불덩이는 순식간에 온 세계를 뒤덮을 듯 커져, 이윽고 여인의 몸을 덮친다.


 살려줘요!




4.


 옛날부터, 아주 오랜 시간 전부터 이토모리 지역에 존재해 왔던 미야미즈의 무녀는, 땀에 흠뻑 젖은 채로 깨어났다.


 오래 된 꿈이다. 언젠가, 아마도 기억이란 걸 하게 된 순간부터 간간히 꾸어오던 악몽. 도망칠 수 없는 공간에서, 다가오는 불길에 타오르는 꿈.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공포.


 차분하게 심호흡을 한 뒤 몸을 일으킨다. 오늘은, ‘자신’의 몸이구나.



 약 반년 전부터의 일이다. 보름에 서 너번 정도, 짚신가게의 마유고로와 자신은 몸이 뒤바뀐다. 처음에는 무척 큰일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아주머니의 타박을 받아가며 서투른 솜씨로 짚신을 꼬아야만 했다. 다행히도 어려서부터 쿠미히모를 엮어온 지라 생각보다 금세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속도를 내는 것만큼은 어려워 마유고로는 매일 밤 늦게까지 짚신을 꼬아야 한다고 피곤해 했다.


 “후훗.”


 마유고로를 생각하면 어느새 악몽의 기억은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순박하고 투박한 시골 청년이지만, 어딘가- 아마도 이토모리 바깥의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그 눈빛은 무척이나 쓸쓸해 보여, 그만 끌어안고 싶어진다. 자신이 미야미즈 신사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이기에 그런 걸까.


 몸을 단정히 가다듬고 방을 나선다. 어제는 마유고로가 어떤 사건을 벌여놓았을지, 살짝 궁금해 하며.







5.


 오늘은 큰일이었다. 곧 다가올 풍양제를 준비해야 하건만 이제와서 모든 걸 잊어버렸냐고 할머님께 꾸중을 들었다. 내가 아니라, 마유고로였던 것 뿐인데. 그런 아무도 믿지 않을 말을 할 수도 없어서 신악무를 그저 처음부터, 그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춤동작을 펼쳐 보아야 했다. 이건 정말이지 고된 일이다. 마유고로를 살짝 원망하며 다시금 미소를 머금는다. 마유고로를 생각하면, 어떤 꾸지람을 들어도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여인은 다시금 공포를 느낀다. 오랜 시간 꾸어온 꿈이지만, 요즘에는 특히나 더 자주, 더 실감나게 다가오는 악몽. 오늘 밤도 꾸게 되는 걸까. 그건 정말이지 괴로운 일이다. 아,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그럴 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우욱!”


 그때 갑자기 찾아온 역겨움에 여인은 헛구역질을 하였다.


 “꺅, 언니? 왜 그래?”


 여동생이 그런 여인을 보고 걱정을 표했다.


 “아, 아니, 잠깐, 장아찌 냄새가….”

 “큰일이네, 상한 걸까? ……어라, 괜찮은걸?”

 “그러니?”


 여인은 다시금 냄새를 맡아보지만,


 “우우, 우욱!”


 다시금 나오는 헛구역질. 설마, 설마.


 “속이 안좋은 건가, 저녁은 먹을 수 있겠어?”

 “아, 응…. 먼저 쉴게. 미안. 저녁은 괜찮다고 말해줘.”


 황급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무녀는 당혹감과 마주앉았다. 이건 아주, 아주 곤란한 일이다. 대대로 미야미즈 가문은 데릴사위를 들이기는 했지만 이토모리 유력자의 차남정도는 되어야 격이 맞는 것이다.


 하지만, 기쁘다.


 단 한 번의 관계였지만, 나는 그이의 아이를… 그이의 생명을 품었다. 이건 아주, 아주 기쁜 일이다. 그래, 분명 큰일이지만 괜찮아. 1인상전 체계인 미야미즈 신사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몸이었지만, 아직 할머님께서 정정하시다. 일단 이번 풍양제를 무사히 마치고 사실대로 밝힌 다면 여동생이 궁사를 물려받을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비록 자신은 가문의 수치로 기억되겠지만,


 괜찮아, 괜찮아. 애써 자신을 다독여 보아도 막연한 불안감에 눈물이 고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6.


 여동생과 함께 여인이 신악무를 펼친다. 이 춤은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춘다. 각자가 다채로운 끈이 달린 방울을 딸랑딸랑 울리면서 빙글빙글 돌고, 끈을 옆으로 길게 뻗는다.


 방울의 장식은 용


 방울에 달린 끈은 쿠미히모 – 사람들의 인연


 먼 옛날, 용이 이토모리에 내려왔고


 이토모리의 사람들은 쿠미히모를 엮어 용을 물리쳤다.


 이 사실을 전승하는 것이 바로 미야미즈의 사명


 따르르르르르…


 춤이 막바지에 이르고 두 방울이 갈라지는 그 때,




 불이다.


 불이다.


 뜨거워.


 뜨거워!


 횃불이라 생각했던 불덩이는 순식간에 온 세계를 뒤덮을 듯 커져, 이윽고 여인의 몸을 덮친다.




 ‘언니, 언니!’


 다급하게 외치는 여동생의 속삭임에 정신을 차린다. 동시에, 깨닫는다.


 평생에 걸쳐 꾸어왔던 악몽


 평생에 걸쳐 짊어왔던 공포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유 따윈 알 수 없지만


 그래야만 한다고, 여인은 말 그대로 ‘직감’ 하였다.







7.


 할머님은 진노하셨다. 풍양제의 핵심인 신악무를 추던 도중 정신을 잃고 흐트러졌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여인이 아무 말 없이,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는게 더욱 화를 치밀게 하는 것일까. 하지만 별 수 없었다.


 사죄해야 할 일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신악무를 추는 도중에-!”


 네, 할머님. 그것이 미야미즈 신사의 사명이죠. 오래 전, 아주 오래 전 이 땅에 닥쳐왔던 비극, 그것을 결코 잊지 않고, 잊지 않도록 전하는 것. 그러나 곧 다시 닥쳐올 비극에 대한 걸, 우리는 잊고 있었어요.


 “들어가거라!”


 여인은 고개를 숙인 뒤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어쩔 수가 없는걸요.


 미야미즈 신사는, 한때 이토모리의 왕조였다. 그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 그 위상이 그를 웃돌 정도였다. 하지만 기나긴 시간을 거치며 아직도 분명 강성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한참이나 못 미치는게 현실이다.


 그런 지금에 와서 이토모리의 농민들에게 고향을 버리라고 말한다면, 천여년 고향을 떠나 이주하라 명한다면, 과연 그들은 받아들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회의적인 결론만이 나올 뿐이었다. 어떠한 기적같은 일이, 그래. 기적. 인간의 논리로는 파악할 수 없는, 불가해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어쩔 수가 없다.







8.


 마유고로는 잠에서 깨어났다. 오늘은 ‘그녀’구나.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걱정. 어제 그녀는 신악무를 추던 도중 쓰러졌다. 잠시 뒤에 일어나, 무사히 풍양제를 마쳤지만 분명히 호되게 질책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


 몸 상태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약간 나른하고, 식욕이 없지만, 항상 그렇다. 매번 식사 때마다 평소엔 맛보지 못하는 진미들을, 그녀의 몸으로는 얼마 먹지 못해서 아쉽다. 뭐, 그녀나 그녀의 가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미야미즈 신사의 분위기는, 예상대로 좋지 못했다. 얼마나 가슴앓이 했을까.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질것만 같았지만 마유고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자신으로 인해 그녀에게 더욱 피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얌전히 있을 수밖에.


 마유고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9.


 신의 계시를 받았다. 아주 오래 전, 아주 어릴 적에. 그때는 몰랐다. 계속, 몰랐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갔다면, 행복했을 텐데.


 아랫배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린다. 여동생은 늦은 나이에 궁사를 맡을 준비를 하느라 투정이다. 그 때마다 매번 미안, 하며 사과하고, 방에 들어가면 마유고로와, 그를 똑 닮은 아이가. 언제나 배고프다고 투덜대는 마유고로마냥, 아이도 식성이 좋아 곤란하다. 하지만 튼튼하게 자라겠지. 아아, 분명, 행복한 인생을 살았을 텐데.


 무녀는 신의 의지를 행하는 자.


 장작을 계속해서 집어넣으며, 여인은, 마유고로의 몸으로 눈물을 흘린다.


 뜨거운 열기에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지만, 아직 좀 더. 더 큰- 불이 나도록


 장작을 넣는다.


 이젠…


 이제 충분할까요? 신이시여.


 이정도면 됐나요?




 “부, 불이야!”


 미야미즈 신사 쪽에서 외침이 들려온다. 하지만 늦가을 마른 산에 붙은 불은 금방 기세를 타고 뻗는다. 아아, 용이다. 용이 지상에 내려와 불을 뿜은 것만 같다. 틀림없이 거대한 재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무스비. 언젠가 닥칠 미래의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


 다행히 마유고로의 부모님은 행상을 나가셨는지 집을 비웠다. 덕분에 불을 지르기도 한결 편했다. 모든 것은 신의 안배인 것일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과연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법이라는 걸까. 아아, 어찌 이토록 가혹하신가요. 어찌 이토록 잔혹하신가요. 하지만 그래도.


 마유고로만은 확실히 살아남을 수 있어.


 불이 번진 것을 확인한 여인은 집을 나서 이토모리 호수를 향해 달려갔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처음 두 사람이 만난 날, 마유고로는 무작정 사과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으면서.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해도 계속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요. 함께 살아가지 못해서. 미안해요. 운명을 받아들여서.


 내가 조금이라도 더 강했더라면, 운명을 거스를 용기가 있었다면,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분명, 행복하게 살아갔을 텐데.


 미안, 해요.


 아, 신이시여. 이런 운명을 내리심에 당신을 저주합니다. 미야미즈의 여식으로 태어나게 만든 당신을 원망합니다. 마유고로와 만나게 한 당신을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원망하겠습니다. 미야미즈로 태어나게 만든 당신을 죽어서도 저주하겠습니다.


 붉을 불길을 등 뒤로, 여인은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10.


 “크억!”


 둔탁한 고통을 느끼며 마유고로는 각성했다.


 “이…이 빌어먹을 놈!”


  다시 한 번 배를 걷어차인다. 내장이 흔들리는 것만 같다. 알 수 없는 상황에 마유고로는 혼란한 정신을 쥐어 뜯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분명, 오늘은 그녀의 몸으로 깨어났다. 자신의 몸 상태를 걱정해 주는 그녀의 여동생이 있었다. 좋은 핑계가 될 거라 생각해, 아직 힘들다고 말하고 방 안에서 조용히 쉬고 있었다. 그렇게 점심, 저녁때가 지나고, 아마 남들은 모두 잠들었을 무렵. 유난히도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있었다. 간신히 눈을 붙였을 무렵, 갑자기 주변이 밝아지더니,


 “쳐 죽일!”


 자신을 후려 치려는 팔을 붙잡고, 묻는다.


 “미야미즈……는, 어떻,게.”

 “이 개자식. 자기가 불을 질러놓고, 어떻게 됐냐고? 모두 불타버렸다! 싸그리! 전부 잿더미가 되었다고!”


 불을? 내가? 아니, 그녀가? 왜?


 “다친, 다친 사람은 없소?”


 간곡하게 묻는다. 그녀는 무사한가. 그녀는 살아있나.


 대답 없이 닥쳐오는 발길질에, 불안함이 온 몸을 메운다.


 “제발…아가씨는, 무사합니까?”


 피투성이 만신창이 마유고로의 간절함은, 그들에겐 닿지 않는 것일까. 사내들은 그저 마유고로를 외딴 건물로 밀어 넣었다.


 “미야…미…아가씨…는,”


 자신을 내버려두고 떠나려는 사내들에게 묻는다. 제발, 제발. 제발!


 분노와 비통섞인 침묵을 들으며, 마유고로는 정신을 잃었다.




 ‘결국 작은 아가씨만, 겨우 무사히…’

 ‘상심이 크겠어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도대체 왜 살려두고 있는 겁니까, 당장이라도 쳐 죽어야!’

 ‘심문은 해야하지 않겠나…’


 아,


 짐작은 했었다. 그녀의 몸으로, 다가오는 불길을 바라보았으니까.


 그러나 짐작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째서? 왜 그녀는 스스로 불을 저질러,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는가. 이건, 마치… 자살이 아닌가?


 자살


 그래, 자살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녀에게 고민이 있었나? 도저히 어떻게 해도 해결할 수 없는 근심이 있던가? 자신에게도,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던 것인가?


 마유고로에게는 말하지 못할 사정. 혼자서 끌어안을 수 밖에 없는 사정. 여자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풀어놓지 못할 사정. 그건 혹시나,




 달빛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지독히도 아름다웠고, 마유고로의 앞에 앉아있는 여인은 그보다도 한층 더 빛이 나고 있었다. 그래서, 품었다. 그 날이 처음이었고,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더없이 가냘파 망가지진 않을까, 손을 대도 괜찮을까 걱정했다. 그날, 아이를 가졌더라면.


 아아, 그래서,


 한낱 농민보다도 못난 짚신장수의 자식을 품게 되어서 그랬던 건가요. 제가 충동을 이기지 못해서, 천한 놈의 저열한 욕망 때문에 당신은 그런 선택을 하였습니까. 이건 당신의 저주인가요. 저의 손으로 당신을 불태워 죽이게 만든 이유는 그런 거였습니까. 죄송합니다. 미야미즈인 당신을 사랑해서, 죄송합니다. 보잘 것 없는 못난 자식이라 죄송합니다. 당신을 괴롭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그저,


 사랑했을 뿐이었는데.


 당신이 미야미즈가 아니었더라도, 그저 만난 순간부터 사랑했을 텐데.


 마유고로는 몸 속 깊숙이 숨겨왔던 붉은 끈을 더듬었다. 당신이 저주한다해도, 그렇더라도 저는 미안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마유고로는 목을 매어 죽었다.


 미야미즈 신사의 궁사와, 몇 명의 사용인들과 함께, 그 큰 딸은 죽었다. 연기에 질식해서 죽었는지, 붕괴되는 건물에 깔려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 사람이 죽은 이유에는 별 의미가 없다. 사람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는 더 이상 그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 이 세상에는 더 이상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숭앙받던 미야미즈 신사는 그래도 명맥을 이어 갔다. 모든 고문서와 전통의 의미를 잊었지만, 그 형태만이라도 보존해 전승했다. 다만 이전의 막대한 권위는 사라지고, 정치적, 행정적 입지는 모두 잃고 말았다.


 이토모리 마을의 사람들은 이 날의 비극을 가리켜, ‘마유고로의 큰 불’ 이라 부른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슬픈 비극을 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