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동 ‘안젤리나 슬로우 브레드’ 곤차루크 안젤리나·김종규 부부“파란눈의 아내와 천천히 빵 굽는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빵집 순례를 다니는 ‘빵순이’ 지인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동네 빵집인데 취재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인이 속시원히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은 게 아니라 몇 가지 단서만을 던졌다. 금발, 장인, 슬로우, 쌀. 드디어 인터뷰가 있던 날, 백현동 휴먼시아 4단지 초입에 자리한 상가로 찾아갔다. 코를 킁킁 거리며 고소한 빵 냄새를 따라 냄새의 진원지로 향했다. 파란 눈의 빵집 아줌마는 커피를 내리고 있었고, 기능장들만 입을 수 있다는 가슴과 목에 태극기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은 빵집 아저씨는 오븐에서 막 구운 크라프트 브롯(호밀과 귀리로 만든 독일의 식사대용 빵)을 꺼내고 있었다.
24년째 빵 굽는 대한민국 제과기능장,
김종규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난 ‘안젤리나 슬로우 브레드’의 김종규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밥을 짓고 간단한 반찬을 뚝딱 뚝딱 쉽게 만들곤 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시킨 것도 아닌데 부엌에서 바지런히 몸을 놀려가며 뭔가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었고, 가족들이 맛있다고 먹어주는 모습을 보면 성취감이 밀려오곤 했단다.
“지인의 소개로 빵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고 유명 빵집에서 실무 경력을 쌓으며 대학에 진학해서 빵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2005년 ‘대한민국 제과기능장’이 되었고 성남 구시가지에서 제 이름을 걸고 빵집을 내고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지요. 작년 8월에 백현동에 ‘안젤리나 슬로우 브레드’를 오픈하게 되면서 지금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오로지 빵 굽는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출신 케이크 디자이너,
곤차루크 안젤리나
이곳에는 또 한 명의 대표가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곤차루크 안젤리나씨는 모스크바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중 한국에 오게 되었다. 한국에 와서 설탕공예를 배우고 케이크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은 지 벌써 16년이 되었다. 몇 년 전에는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서 ‘안젤리나 슬로우 브레드’에서 케이크를 만들고 커피를 내리고 있다.
“종규씨를 서현동에 있는 유명한 빵집에서 동료로 만났어요. 처음에는 종규씨가 제과·제빵 선배니까 배우려고 했던 것뿐인데…”라며 수줍게 말끝을 흐린다. 결국 직장 동료에서 안방 동료로 발전했고,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보물인 아들 요셉(8)이와 딸 예나(5)가 있다. 신기하게도 요셉이는 엄마 안젤리나씨를, 예나는 아빠 김종규씨를 외모부터 식성까지 빼다 박았단다.

샐러드에 빵이냐, 나물에 밥이냐
너무나 유창한 한국말에 당연히 한국 음식도 잘 먹을 줄 알았던 안젤리나씨는 언제가 힘드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보통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는 빵집의 특성상 거의 세 끼를 밖에서 해결해야 하잖아요. 처음에는 동료들과 같이 한국 음식을 먹었는데 소화가 너무 안 되는 거예요. 한국 음식이 우크라이나 음식과 비교해 염분이 많아 먹고 나면 붓더라고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아내를 보며 김종규씨는 유산균 발효종과 천연 효모로 빵을 발효시켜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인은 밥 한 술에 나물 올려 식사를 할 때 안젤리나씨에게는 발효빵에 샐러드를 얹어 주었다. 그녀는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빵집 아줌마란 유명세를 타고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을 했다.
“아직 손님들이 하는 말을 바로 못 알아들을 때도 있어요. 이해해 주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짜증을 내시는 분도 계셨죠. 제 외모를 힐끔 힐끔 보시는 분도 가끔 계시고요.”
시종일관 파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천천히 구워주는 빵
김종규씨의 발효빵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과일에서 추출한 효모인 천연 효모종으로 만든 빵은 패스트푸드가 아닌 김치 같은 발효식품이고 슬로우 푸드입니다. 그래서 밀가루를 먹으면 속이 안 좋다고 하시는 분들도 저희 빵은 다르다고 좋아하세요.”
무엇보다 고향에서 먹던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외국인 손님들이 ‘안젤리나 슬로우 브레드’의 천천히 굽는 빵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게다가 외국인 손님들이 오면 불쑥 찾아오는 향수병에 힘들어하는 아내의 낯이 밝아지니 일석이조.
“손님으로 왔다가 진짜 친한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래도 저도 이곳에서 이방인이다 보니 항상 외롭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보통은 한국에 살러 오기보다는 1~2년 단기간 머무는 경우가 많아서 친구들이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면 한동안 잊고 있던 고향이 또 그리워져요”

쌀로 만든 예쁜 케이크 드시러 오세요
고향이 그립고, 외국인이라 서러울 때마다 안젤리나씨는 빵집을 드나드는 아이들을 보면서 힘을 낸단다. 어린 아이들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우유와 유기농 원당만 넣은 생크림을 바른, 쌀로 만든 케이크도 그런 마음으로 진열대에 올리게 되었다고. 케이크 디자이너가 만들어서일까, 마음결이 고운 이가 만들어서일까, 참 때깔 고운 케이크다. 시종일관 아내가 하는 이야기를 경청하던 김종규씨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외로운 분들, 마음이 힘든 분들이 편히 오셔서 한 조각 빵으로 위로 받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가을타는 것 같다고 징징거리던 나에게 ‘빵순이’ 지인이 왜 네 개의 단어만 던져주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분당에 있는 안젤리나 슬로우 브래드 맛있음??? 가 보 신분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