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들은 가해자이지 절대로 피해자가 아니다.


화교의 한국 유입 경로


1. 19세기에 조선을 지배하려고 들어옴


"조선 말 청나라 사람들이 대거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임오군란 때였다. 임오군란이 일어나 조선의 정세가 급변하자 청은 조선의 공식 요청이 없었는데도 산둥성에 주둔 중이던 오장경(吳長慶)의 수군을 파병하였다.[1]

오장경이 지휘하는 4,500여 명의 군사와 함께 40여 명의 상인이 따라 들어왔으며, 이들은 청군이 주둔하던 용산 근처에서 장사를 시작하였다.[2] 이전부터 사신 왕래나 공무역인 개시(開市)를 통해 중국인이 조선에 머무는 일이 잦았으나, 장기 체류를 한 것은 이 일이 시초이다.[1]"



이 당시 청나라 군대와 같이 들어온 상인들이 화교의 시초임. 인천에 청나라가 조계지를 강제로 설치했고,

화교놈들이 거주하기 시작함.

아직도 인천에 차이나 타운이 있는 이유가 이 것 때문.





2. 1930년대 국공내전 당시에 조선으로 온 불법체류자


"국공 내전(중국어 정체자: 國共內戰, 간체자: 国共内战, 병음: Guógòng Nèizhàn 궈궁 네이잔[*], 영어: Chines,e Civil War)은 1927년 이후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사이에 중국의 패권을 두고 일어난 두 차례의 내전을 말한다."


이 당시 전쟁을 피해서 조선으로 피난을 온 화교도 있고, 강제 징집을 피해서 조선으로 도망을 온 화교도 있음.

한마디로 불법체류자들임




3. 결론


한마디로 화교들은 한국을 지배하려고 온 놈들이거나 불법체류자들임

그런 주제에 중화사상만큼은 아주 투철해서 아직도 자신들을 상국의 백성, 한국을 속국이라고 여긴다



화교들은 한국에 대한 우월의식을 묻는 말에 말을 아꼈다. 그러나 ‘上國’의 뿌리에 대한 자부심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반면 한국에서 소수민족으로 당하는 차별과 배제에 대해선 ‘중화의식’의 자존심을 버리고 한국 화교를 ‘세계적인 난민’에 빗대며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 한국 화교 인구 중 88.7%가 한국에서 태어나… 중국 본토 출신은 9.3%
⊙ 현재 한국 거주 영주권 취득 화교 수는 1만명… 대만에 호적이 없어 대만에 거주 못해
⊙ “한국인의 4대 의무 중 군복무를 제외한 교육·납세·노동의 의무를 모두 이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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