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겔에서 핫한 "한국여자명예백인론"을 15년전에 꿰뚫어보고 쓴 글 소개한다. 

   


   

 사대-식민주의와 원한감정.  

2010. 6. 9. 20:42



 


"의식이 담론(혹은 이미지)을 형성하기 보다는 담론(혹은 이미지)이 의식을 형성한다." 




길거리를 걷건, 차를 타건, 혹은 영화관이건, 백화점이건 간에, 사람들이 모이는 그 어느 곳을 가도, 

대부분의 여자들은 한가롭고 여유있고 우쭐거리는 태도를 보이는 반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뭔가를 의식하고 있으며,

 신경 쇠약 증세를 보이거나, 혹은 의기소침하거나 주변을 살피거나 그것도 아니면, 뭔가 생각을 다른 곳에 두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 이런 이유로 다수의 여자들의 시선은 정면을 응시하며 곧바른 자세로 편안하고 여유있게 걷지만, 

다수의 남자들의 시선은 오직 정면만을 응시하거나, 옆을 보고 있거나 땅을 보고 있으며, 

이에 자세 또한 경직되어 있거나 혹은 비딱하거나 구부정해 있다. 이런 모습들만 봐서는 대한민국의 주인은 여자들이며,

 남자들은 노예들이라 말할 수 있다. 


 


 현재 세계의 그 어느나라를 둘어봐도, 우리나라 처럼 여자들이 우쭐거리며 남자를 우습게 여기는 곳은 없다.

 여자들의 눈에 비친 남자들은 마트에서 일하는 종들인 종업원이거나 여자들의 아파트를 지켜주는 개들인 관리인들

 혹은 길거리에서 자신들을 흘깃 쳐다보며 괜히 혼자 움찔대는 못난 놈들, 그것도 아니면, 멍청하며 늘 자신들을 

열받게 만드는 돈벌어오는 노에들인 남편들, 자신이 좋다고 온갓 시중들을 다 들어주고 성질을 다 받아주는 편하지만

 한심한 친구들, 어느날 갑자기 자신에게 연락해서 울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생뚱맞은 녀석들,

 먹고 살려고 텔레비젼에서 온갓 쪽팔리고 더러운 역할을  마다 하지 않고 하는 바보같은 코메디언들과 배우들, 

그리고 옆집 발발이보다도 안 무서운 경찰들과 최소한의 포스도 없는 지리멸렬한 은행 직원들, 

그러면서도 늘 어디선가 자신을 공격할지 모르는, 보이지 않는, 

하지만 주변의 그 누구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의심하는 변태들과 성범죄자들이다. 


 


이런 이유로, 자신들의 주변의 남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병신들이다. 뭐 하나 매력적인 것이 없고, 

오히려 가련해 보일정도로 못났다. 

그래서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되네인다 "이 못난 것들아,,,'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경멸감이 솟아난다.

 "대한민국에는 온통 병신같은 새끼들만 있네, 염병!" 


 


그래서 대한민국 여자들은 남자들을 신뢰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다.

 그저 우습고 한심해 보일 뿐이다. 그 누구도 자신을 흥분시키고, 가슴설레게 하지 않으며,

 자신들을 그 저주받은 무료함에서 해방시켜주지 못한다. 그래서 남자들을 생각하면, 되레 짜증과 성질만 난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그녀들의 스트레스를 더 증폭시키며, 더 열받게 하며, 이에 따라 더 경멸스러워 보이고, 찌질해 보인다.

 이런 놈들하고는 죽어도 결혼하기 싫고, 결혼한다 해도 결코 그 놈들을 위해 살고 싶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싶을 뿐이다.

 웃기는 것은 이렇게 해도 자기 좋다고 달려드는 놈들이 계속 나타난다는 것, "하하하,, 그럼,,,최소한 내가 니들보단 낫잖아,,," 



 


대한민국의 여자들이 늦잠자고, 한가하게 브런치 먹고, 압구정동 맛집에서 친구들 만나서 겔러리아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영화보고 커피마시고 놀 동안, 대한민국 남자들은 막장에서 죽어가고 있거나, 장소불문, 작업불문, 지위불문, 

온갓 굴욕과 치욕을 당하며, 죽기살기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평등'이라는 명분으로, 

오히려 여자들보다도 불리한 조건에서,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욱 심한 강도로, 여자보다도 돈이 많고, 

성공을 해야만 사람대접받고, 결혼도 할 수 있고,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의식이 상식적으로 팽배하다보니 달리 대첵이 없는 것이다. 


 


남자들은 남자들만의 성욕도, 사나이의 꿈과 야망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남자들이 살기가 더욱 힘들어지며, 그에 따라 소위 '루져'가 될 확률은 높아지고 그 수는 많아진다. 

남자 루져들은 그 스스로도 그렇지만, 사회적으로도 최소한의 배려나 동정도 받지 못한다. 이 사회에서 남자가 루져가 되는 순간,

 그는 그냥 잠재적으로 이 사회에 민폐나 끼치게 될 존재자가 되며, 이에 그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사라져 줘야 할 처지가 된다. 

이 사회의 그 어디에도, 그들을 돌바주고, 걱정해주고, 치료해주고, 다시 일으켜 주는 곳도, 사람도 없다. 그냥 그걸로 끝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젼을 봐도, 신문을 봐도, 심지어 대학의 심포지움에 참석을 해봐도,

 심지어는 까페에서 들리는 수다를 봐도, 오직 듣게 되고, 읽게 되고, 확인하게 되는 것은 '여성의 고통, 여성의 불평등',

 곧 '여성의 원한' 뿐이다. 여성의 수명도 남성보다 길고, 자살률도 낮고, 심지어는 대학진학률도 높고, 

어딜봐도 각종 여성복지 관련 프로그램들이 넘쳐나고, 결혼을 할 때도,

 남자가 최소 3배 이상의 부담을 짐에도 불구하고, 이혼시에는 정확히 반반으로 나누고,

 자식들에 대한 권리도 압도적으로 많고, 유산상속시에도 실질적으로 헐씬 많은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남편의 급여는 고스란히 여자들의 통장으로 들어오며, 그리고 길거리에는 온통 웃고 수다떠드는 여자들로 넘져차는 마당에, 

여전히 여자들은 여성관련 텔레비젼 프로그램과 학술논문들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 울고불며, 소리치고 난리도 아니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도대체 그 여성의 한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말하는데, 이 시대가 기본적으로 남성폄하, 여성우월을 노래하고능 있지만, 대한민국은 그 중에서도 아주 유별나다.

 남성폄하, 남성비난, 그리도 동시에 여성의 저주받은 한. 남자들은 계속해서 놀림감이 되고,

 욕을 쳐먹고 있으며, 여자들은 한참을 깔깔대고 웃가다도 이내 다시 펑펑 소리치며 운다. 맨날 병신취급받는 것도 열받고,

 그녀들의 그 경박하기가 비할 데가 없는 깔깔거림을 듣는 것도 진절머리가 나고, 

그녀들의 소리치고 난리치며 우는 꼬라지는 정말 돌아버릴 것 같다. "계속 그 지랄 할 거면, 이 씨발년들아 다 뒈져버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미친년들의 죽통을 날려버리려 움찔하다가, 갑자기 뭔가가, 결정적인 것이, 순간 내 뇌리를 스친다. 

"앗! 이게 뭐지? 뭔가가 있다. 뭔가가 있어!' 그리고 나는 들어올렸던 주먹을 어느 사이엔가 내리고 깊은 생각에 빠져든다. 

아주 짧지만, 지구 밑에 까지 내려갈 정도로 깊은 생각에 말이다. 


 


불현듯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 "사대- 식민주의", "의식이 담론(혹은 이미지)을 형성하기 보다는 담론(혹은 이미지)이 의식을 형성한다." 대관절 여자들이 개난리치는 것과 이것들이 뭔 상관일까? 


 


찬성을 하건 반대를 하건,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분명한 사실이 있다.: 남자는 주인이며, 지배하며, 책임진다. 

그리고 여자는 소유물이며, 순종하며, 위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남자에게는 창조적이며, 능동적이며,

 관대하야 한다는, 고된 삶의 길이 주어지는 것이며, 

여자에게는 정숙하며, 수동적이며, 사랑스러워야 하는 평온한 길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의 상식이 실제로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과 불일치'로 가득한 허구라는 사실을 상상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유사이래, 노예가 책임을 져야 했던 적은 없으며, 주인이면서 무책임했던 적은 없다.

 노예가 전쟁에 나가며, 주인이 한가했던 적도 없다. 그래서 진실은 주인이 되려면 희생해야만 하며,

 편안해지고 싶으면 노예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타락한 대중담론들과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이데올로기를 씨부렁 대는 짓거리를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이 시대의, 특히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자유'의 의미를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자유롭고 싶어한다. 그와 동시에 모든 종류의 책임과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며, 


늘 자기 지신과 자기 자신이 소유하고 있으며 성취한 것 이상을 남자들에게 요구한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여자들은 자기 맘대로 행동하고 싶어하며, 모든 규칙들의 예외가 되고 싶어하며, 

그러면서도 늘 저절로 뭔가가 자기 앞에 생기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무분별, 무소속, 불한(不汗)당적 마인드가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아는가? 유사이래, 

이런 규정에 해당되는 존재자는 딱 두 종류 밖에 없었다. : 기생충, 창녀.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우리나라 여성들은 지구상의 

그 어느 나라 여성들보다도 이 시대의 담론에 이토록 악성적으로 중독되어 있음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그 어느 나라 여성들 보다도 '원한감정'의 주체들일 수 있는가?"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사대-식민주의'에서 찾는다. 이 민족, 이 나라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 민족적, 국가적 정체성이 수천년을 지속하고 있는 


극히 예외적인 민족이자 국가임과 동시에 그 역사의 상당시간 동안을 


'줄곧' '사대적 태도와 식민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보내왔다는 기괴한 사실이 지적되어야만 한다.


 우리 민족은 적어도 5천년의 민족적/국가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음과 동시에 적어도 

1400년 이상의 기간동안 사대의 예로써, 식민으로서 자처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 도대체 이렇게 해괴한 정체성을 가진 민족이 우리 말고 이 지구상에서 존재하고 있을까? 

심지어 유태민족의 경우도 우리와는 현격히 다르다. 그들은 처음부터 노예로 시작했으며, 


따라서 그들의 역사의 대부분은 가공/조작/날조된 허구에 불과하며, 이런 귀신이 곡할 정도의 천성적 영악함과

 교활함으로 그들은 현재 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그들만큼 그렇게 시원적으로 노예도 아니었으며, 

동시에 그들만큼 그렇게 교활하지도, 영악하지도 못하다. 


 

도대체 '사대-식민주의'가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간단히 '단절'과 '원한'으로 정리될 수 있다. 사대의

 예로서 생존한다는 것, 그래서 식민적 정체성을 가지고 생존한다는 것은 살아있으면서도 더 이상 '주인'이 되기를,

 '강자'가 되기를, '정복자'가 되기를 포기하는 것, 다시 말해, '영혼의 소유자'로, '운명의 주체'로, '역사의 창조자'로

 살기를 거부하는 것, 곧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유기채'로서 생존하기를 선택함을 의미한다. 오직 생존을 위해,

 인간적인 모든 것, 가치있는 모든 것, 존경받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부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대의 예를 표현하는 순간, 식민이 되는 그 순간, '정신적이고 역사적인 가치'는

 파괴되고, 그와동시에 더 이상 존중되고 칭송받을 것을 상실하며, 그와 더불어 그 누구도 그에게 순종하며, 

존경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그때 살아남아있는 것은 노예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언젠가

 부터 우리나라 남자들의 정체가 '남자'가 아니라, '노예'일 뿐임을 알게 된 것이며, 

그녀들의 그 본능적 갈망인 '주인에 순종하며 사랑받는 것'에 굶주리기 시작한 것이며, 

어느 순간 이 나라 남자들에 대한 경멸감과 자신이 버려졌다는 상실감이 결합되어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그녀들의 분노를 더욱, 그리고 결정적으로 폭발시키게 된 계기는 다시 '사대-식민성'에서 연유하는데, 

왜냐하면, '사대-식민성'은 그 역사적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영혼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못하며, 

대신, 대내적으로는 전혀 예상하지도, 준비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때마다 전적으로 외부적 상황들에 의해

 그 어떤 대내적 연관성이나 연속성이 없이, 우발적으로, 분절적으로, 불연속적으로, 정체성과 가치 규정들이

 일방적으로 이식되는 특징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대-식민성'은, 그 연대기적 시간성의 지층이

 제 아무리 두꺼울지라도, 실제로는 철저하게 우발적이며, 단절적인, 문화역사적 단층들의 무질서한 더미를 형성할 뿐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어떠한 일관성도, 지속성도, 계보성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 결과 '영혼'이나 '주인의식'이 싹틀 수가 없으며,

 대신 그 무질서적인 단절의 혼란스럽고 모순적이기까지한 두께에서 연유하는, 정신적 역겨움과 구토인,

 '원한감정'만이 퇴적될 뿐이다. 


 


'원한'은 '단절'의 결과다. 그래서 단절이 많을수록, 그것이 반복될수록, 

그때마다 정체없는 원한이 증폭되어간다. 바로 이것이 우리나라 여성들의 원한의 실제적 기원이다. 

그녀들은 남자들이 식민이 되는 순간부터, 주인이 되기를 포기하는 순간 부터, 제대로 돌봐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들은 주인없이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던 것이다. 그녀들은 그저 오랜 세월동안 이리로, 혹은 저리로 방황을 했을 뿐이다.  


 


거기에 더해서, 지난 시대, 그녀들은 꼴같지 않은 남자들에게 지배되었었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여인들이 동시에의 혹으 과거시대의 다른 문화권의 여자들보다 더 억압당하고 차별당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원래 그게 여자들의 삶인 것이다. 

남자들에게 지배당하고, 그와 동시에 그들에게 보호받고 사는 것 말이다, 

전쟁에 나갈 필요는 없지만, 대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말이다

. 조선시대의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종속적이었던 만큼 유사이래

 거의 대부분의 시간동안 세상의 여자들은 그렇게 살아왔었다. 


 


그래서 문제는 그녀들이 종속적이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녀들을 지배하고 있는 남자들이 주인이 아니었다는 것, 그들 역시 종속적이었다는 것, 그래서 실제로는 그녀들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것들이 주인인 척을 해왔다는 것에 문제의 원인이 뿌리박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와 불합리함을 결정적으로, 그리고 비실제적인 수준으로까지 증폭시켜 폭발시킨 것은 바로 '전통'이라는 식민적이고, 이식된 담론을 다시 한번 완전히 파괴하며 등장한 '서구적 근대화'라는 새로운 종류의, 그래서 전통과는 그 어떤 식으로도 관련성을 갖지 않는,즉 철저한 단절로 인한 극단적으로 선명한 단층을 형성한 '식민담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단절'될 때, 그것이 능동적이건, 수동적이건 간에, 그래서 그 어떤 식으로든 단절의 대상에 대해서, 그 단절의 강도와 정도에 비례해서 '불쾌함', '적대감', 그리고 '원한'을 갖게 된다. 철저한 부정의식이 형성된다는 말이다. 그런 한에서만이 새롭게 형성된 지층 속에서, 지평에서 새로운 삶을, 그것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단절'의 역사는 '원한'의 역사를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여성들은 그

 기생충적, 창녀적 정신상태와 그녀들의 반사실적인 남성과 전통에 대한 적대감과 원한감정은



 그녀들이 현실적으로 무언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한을 품는 것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이 민족, 이 나라의 사대식민성에서 연유한 '단절과 불연속의 수치스런 역사적 과정'의 부작용이자 부산물임을 말이다. 다시 말해, 그녀들의 원한은 어떤 실제적 역사의식에서 생겨난,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이질적인 그러나 강력한 이식적인 새로운 담론들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필연적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직접 남자들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주인없음이라는, 그래서 버림받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소외감과 그때마다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새로운 담론들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원한감정'을 갖게 된 것이다. 


 


아직도 그렇게도 싸가지 없는 우리나라 여자들은 특히 외국인들 앞에서는 

가장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을 본능적으로 보이곤 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그녀들은 방황이 끝나고, 


자신들이 지배당하고 있으며, 사랑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편안해하며 착해진다.


 우리는 이런 현상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 여성들이 갈망하는 삶임을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충직하며 복종적인 동물인 개조차도 자신의 주인이 주인이 아니거나 주인될 자격이 없는 찌질한 


존재임을 느끼게 되는 순간, 자신의 주인을 문다. 그 개가 성질이 포악해서가 아니다. 그것이 개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사대-식민주의가 청산되지 않는 한,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결코 평화와 존경, 사랑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 대신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불신과 정신적 혼란, 


그리고 원한에 사무친 여자들의 절규와 남자들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무례와 조롱의 악몽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