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주간반, 야간반까지 돌리며 300명도 넘었다지만 내가 갔을 때는 전교생 40여명.


 관사는 학교 바로 옆 2층짜리 건물이었는데, 1층은 창고 용도로 썼고, 2층에 투룸 형태의 방이 2개 있었다.

 방 개개는 꽤 넓어서 투룸이라지만, 서울의 쓰리룸에 필적할 정도.

 처음엔 넓다고 좋아했지만, 살아보니 방이 넓어서 보일러를 어지간히 틀지 않으면 너무 추워서 잠은 작은 방에서 자게 되었다.


 보증금 없고, 관리비는 삼천원 정도 냈던 걸로 기억한다. 전기세는 내가 냈고, 보일러는 기름 보일러라서 학교에서 겨울 아닐 때는 10리터씩, 겨울에는 20리터씩 매달 5일에 넣어줬다.

 다 떨어지면 내 돈으로 채워야했는데, 보일러 용량이 40리터라서 덜 추운 때는 씻는 용도 외에는 쓸 일 없으니 가득 채워놓고, 그 이상은 말통으로 받아놨다가 겨울에 사용하니 내 돈은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1년에 40만원 정도 썼을까. 다만 강원도의 겨울은 정말 무지막지하고, 건물이라곤 허허벌판에 학교와 관사 둘 뿐이라 매우 추웠다. 2/3년 내내 모은 기름이 2개월 겨울에 다 써버리고, 결국 기름차를 한 번은 불러야했으니까.


 충격적인 건 관사에 인터넷이 VDSL이었다. 2014년에 VDSL이라니. 초등학교때 집에 ADSL 설치해서 사용했었는데, 그 다음 세대인 VDSL을 2014년에 쓰고 있자니 충격이 대단했다.

 온라인게임이나 인터넷 서핑은 꿈도 못 꾸고, 스타크래프트조차도 뚝뚝 끊어졌다.

 결국 인터넷은 학교에서 주로 해결했다.


 나 말고 선생님들은 전부 출퇴근을 했다.

 가까운 사람은 편도 30분을 운전해왔고, 보통 1시간 내외로 걸리는 것 같았다.

 다만, 여기서 30분 운전이라는 것은 서울의 30분과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도로에 차가 거의 없기에 사람들은 기본 80~90킬로는 밟아댔으며, 더 빨리 달리는 사람도 많았다.

 

 예전엔 신규 선생님들이 오면 투룸에 2명, 3명씩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왔지만, 이젠 살겠다는 사람도 없어서 나같이 이런 오지까지 와서 근무하려는 기간제가 아니면 관사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고 교감 선생님이 말해주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곳에 정주하여 사는 것은 너무도 힘들어보였다.

 학교 이외에는 민가가 오십채 정도. 그나마도 절반은 빈 집이었다.

 가게라고는 슈퍼가 하나 있었는데, 상품의 가짓수라고 해봐야 몇 가지 되지 않았고, 제일 많이 팔리는 건 소주였다. 막걸리조차도 빨리 상한다고 많이 들여놓지 않아서 물건 들어오는 날 가지 않으면 남는 물건도 없었다. 여기 말고 좀 큰 마트에 가려면 차로 25분 정도는 달려야 했고, 우편으로 물건을 사려면 이천원 정도 추가 요금도 내야 했다.


  원래 있던 고향에서 반쯤 도피하듯이 온 외지였지만, 좋은 시간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가을밤 산책을 하다가 엄청나게 큰 배추밭을 봤는데, 달빛을 받은 배추밭은 마치 흰색 바다처럼 장엄하기까지 했다.

 배추밭 가지고 뭔 감동이냐하겠지만, 이건 정말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뭐라 설명할 수가 없다.

 산등성이 몇 개에 이어지는 광활한 곳에 배추가 그야말로 빼곡히 심겨져 있고, 나중에야 안 것이지만, 출하하는 배추는 모양을 예쁘게 잡기 위해 배추잎을 위로부터 묶어두는데, 덕분에 하얀 배추대가 그대로 노출되어 정말 장관이었다.

 내가 사진에 조예가 깊었다면 멋진 사진을 남겼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