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인지.

참 더럽고도 이해받기 어려운 취향입니다.



살아 숨 쉬는 살결도 아니고
체온이 오가는 육체도 아니며
피부에 윤기가 흐르는 것도
눈빛이 흔들리는 것도 아닌

그저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종이 위의 세계이니까요.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오타쿠라 하고 씹덕이라 하고.
세상이 씹덕 문화에 아무리 관대해져도.
어딘가 현실에서 밀려난 자의 취미쯤으로 여기곤 합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닙니다.

어릴 적의 저는.
떡인지를 보든 야동을 보든.
그 안에서 단순한 욕정만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욕정도 있었고.
순수함도 있었습니다.

그때의 나는 분명.
떡인지보다는 만화를 보며.
언젠가 저런 사랑을 하게 되리라 믿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누군가의 손을 붙잡게 되고.
그 손끝의 떨림과 체온과 부끄러움을
나 역시 알게 되리라
막연히 믿던 소년이었습니다.



이젠 없습니다

야근에 치이고
일정에 치이고
출근길 사람들 어깨에 치이며
하루하루가 그저 밀려오고 지나가기를 반복하는 동안
언젠가 사랑을 꿈꾸던 마음은
조용히 닳아 없어졌습니다.



야동을 보건
만화를 보건
떡인지를 보건
그 안에서 욕망과 함께
희미한 동경까지 읽어내던 소년은
이제 더는 없습니다



남은 것은.
오늘도 치이며 살아가는 몸 하나뿐입니다

바삐 치이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오고
지친 몸을 겨우 방 안으로 끌고 들어온 나는.
습관처럼 떡인지를 펼쳐

다시 흑백의 세계로 출근합니다.



거기에는 사랑이 있지만.
내게는 없고.

거기에는 망설임과 설렘이 있지만.
내 하루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떡인지에는 색깔이 있지만.
내 스토리는 흑백입니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 흑백의 세계를 들여다보다가
딸을 한 번 칩니다.



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은.
내 몸밖에 없으니까요.

어릴 적엔 그 안에
욕정도 있었고
순수함도 있었으나
지금의 그것은
사랑을 꿈꾸는 일이 아니라.


지친 하루를 쉬이 끝마치기 위한.
작은 습관일 뿐입니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떡인지를 봅니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욕망해서도 아니고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해서도 아니며.



그저.
조금 덜 외롭기 위해
조금 덜 허전하기 위해
조금 덜 사람답게 상처받기 위해.



오늘도 나는.
흑백의 세계에 기대어

하루를 덮습니다



어쩌면 치이는 세상 속에서
딸딸이를 치는 것은
나의 마지막 능동일지도 모른다는
싸구려 현실도피와 함께



오늘하루에 마침표를 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