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는 로스팅을 쉬고 며칠간 구웠던 콩들을 맛보는 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간 대강 10배치 정도 구웠는데, 조작법 익힌다는 핑계로 못 먹을 정도로 구워진 것들을 제외하면 한 세 배치가 그래도 마실만한 정도인 듯.
로스팅 한 것을 맛을 볼 때는 일차적으로 커핑을 하는데, 여러 개 동시에 내려서 비교하면서 맛보기 좋거든요.
특히 마지막 배치에서는 베리류의 산미가 잘 나오는, 꽤나 만족스럽게 볶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음. (배기 늘려가면서 볶은 배치)
근데 어제 오늘 이걸 필터로 내려서 먹어보니 그런 부드러운 맛은 어디로 가고 없고 영 형편없는 맛이 나더라고요.
astringency고 쓴맛이고 나쁜 맛은 그냥 다 났음.
보통 커핑이나 프렌치프레스와 같은 침출식 커피는 (아마 클레버도?) 추출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투과식 추출보다는 분쇄도를 가늘게 가져가야 한다고 하죠.
이것은 추측컨대 원두 내외부 사이의 성분 교환에는 농도차가 지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사실 그냥 든 생각은 아니고 라오가 쓴 글: https://www.scottrao.com/blog/2017/8/27/fines-fine-for-espresso-not-so-fine-for-filter 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좀 더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자료가 있을 수도 있는데 딱히 찾아보지는 않았어요.
다만 라오가 쓴 다른 글에서는 V60과 커핑간에는 비슷한 분쇄도를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https://www.scottrao.com/blog/2017/9/26/immersion-percolation-and-grinding-a-quiz-and-contest)
실제로 커핑할 때랑 V60 내릴 때랑 같은 굵기(코만단테 20클릭) 로 내렸거든요.
하여튼, 그래서 미친 척 하고 연달아서 22, 24, 26클릭까지 풀어서 마셔보니까 그제서야 좀 먹을만한 맛이 나네요.
근데 26까지 오니까 눈으로 대강 보기에도 이건 좀 굵다 싶은 느낌이 들 정도.
그럼 여기서 드는 궁금증은;
1. 기존 20클릭 V60의 쓴맛이나 수렴성은 과다추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대체 어디까지 조임을 풀어야 하는지?
사실 26클릭까지 푼 것도 이런 나쁜 맛들이 다 잡히지는 않았거든요.
아니면 굵기 말고 다른 변수를 조정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2. 그렇다면 오히려 커핑할 때 과소추출이 난 건지?
커핑이라는 것이 본래 QC용 추출법인데, 결점은 못 잡아내고 맛만 좋으면 무슨 의미가 있는건가 싶기도...
물론 SCA라던가에서는 커핑에 사용되는 분쇄도도 규정하고 있지만, 분쇄도라는 게 직접 보고 만져보고 내려보고 하지 않고서는 알기가 어렵잖아요.
아니면 정밀 채반같은 장비로 걸러내고 먹어야 하니까.
3. 혹시 그렇다면 다른 부분에서 잘못된 게?
위에도 써 놨지만, 만약에 커핑과 V60이 비슷한 정도의 분쇄도를 사용한다는 전제가 맞다면 제 V60 추출 방법에 문제가 있는 건지도.
물론 V60만 그랬던 것은 아니고, BBC로 내려도 크게 차이는 없었던 것 같아요.
당연한 거지만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은 역시 콩의 품질과 로스팅의 품질. 콩도 비싼 콩은 아니고(연습용인 만큼), 로스팅이야 뭐...
근데 그렇다면 단순히 팍 쪼여서 추출했을 때 맛이 없는 것은 설명이 되지만, 왜 V60과 커핑간에 굵기 차이가 그렇게 큰지는 답이 안 될 것 같네요.
생각해보면 콜렉티브(잘 볶는다) 하시엔다 라 에스메랄다 파나마 게이샤(좋은 콩이다) 먹을 때부터 팍 쪼였는데, 이건 정말 맛있었거든요.
확실히 요즘 라오고 퍼거고 호프만이고 밀고 있는 고온 고수율 가는 분쇄도 추출법들은 최소한 이정도 급은 되는 좋은 콩은 되어야 하는 건가 싶기도.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