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다친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새월호 사건 당시 잠수사로 일하다가 나중에 증언자로 발표하던 사람의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큰 슬픔에 마음이 짓무른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한편으로 초연히 편안해 보이기도 하던 표정이 왠지 인상적이었다.
그 사람은 나중에 자살을 했다.
그리고 고독사한 사람의 집을 치우다 발견한 남겨진 유서에 대해 이야기하던 사람을 티비에서 봤다. 고독하게 죽은 사람에 대한 공감에서 오는 슬픔과 그것에 저항하지 않는, 너의 슬픔과 나의 마음에 거리를 두지 않는 사람의 표정.
IMF직후 깨끗한 차림으로 길에서 자던 아저씨는 깨우던 나에게 자기 자식에게 말하는 것처럼 아이고 참 착하구나 하고 말했다. 그 얼굴이 웬지 쓸쓸한 듯 초연한 듯 웃고 있었다.
슬픔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내보내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
그렇게 해서 슬픔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슬픔이 아직 존재하고 있노라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주인공 할머니는 자신을 둘러싼 고통이 가득한 현실과 분리된 아름다운 시를 쓰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 되지 않는다.
그녀가 문화센터 강사의 조언대로 대상을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손주가(그리고 그 외 여러 명이) 강간한 여자아이의 고독과 자신의 고독이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었음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시를 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여자아이가 빠져 죽었던 강에서 죽는다. 똑바로 바라본 고독은 너무 아프고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슬픔에 저항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슬픔이건 남의 슬픔이건 그것이 사실보다는 좀 낫다고 왜곡하고 나와 상관 없다고 거리를 둬야 우리의 영혼은 다치지 않고 평온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의 슬픔이 그 모든 시도를 뚫고 나에게 스며올 때 그때는 그저 그것을 받아들이고 공감하고 아프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외면할 수 없다고 내 마음이 외치는 것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왠지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그런 확신이 든다.
그런 취지에서 좀 가혹한 리얼리즘 영화를 좋아했는데 <시>보고 한 달 동안 우울해 하다가 이제 그런 영화 빼고 보는 건 안 비밀...넘모넘모 힘들어요 ㅠㅠ
슬픈 사람들을 위해 치얼스(식초)
이제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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