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하고 작년 6월에 자취방 들어가면서 샀던 IRIS MURDOCH이라는 더블린 작가가 쓴 <THE SEA, THE SEA>라는 펭귄 클래식 판본 기준 500 페이지짜리 영국 소설.

군대에서 민음사 번역본 1권을 아주 재밌게 읽었다.

주인공 사촌이 불교에 빠져서 티벳 편에 선 영국군이라는 점이 맘에 들었다.

텍스트는 원문으로 읽어야 한다는 강박과 번역본은 작가가 쓴 글이 아니라 번역가가 쓴 글이라는 의심이 있었다.

일기 형식 소설이라 자기 전에 하루치씩 읽고 자면 언젠간 다 읽겠지 싶었다.

독자를 괴롭게 하라는 작가의 사주를 받은 주인공은 하루에 일기를 반 바닥만 쓰기도 하고 열 장씩이나 쓰기도 했다.

반 바닥만 읽고 덮을 때도 있었고 다섯 장 읽고 덮을 때도 있었고 한두 달 아예 안 읽은 적도 있었다.

오늘 공부하기 싫은 김에 맘 잡고 남은 26바닥 다 읽었다.

중간에 무진기행이 연상돼서 그만 읽을까 고민하게 하는 주인공의 고구마 오백 개 상당의 구타유발행위 모음이 있다.

생각해보니까 중간이 아니라 극후반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진행이 그렇긴 하다.

아주 의식하고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나는 처음부터 주인공 사촌인 불교주의자 군인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참고 계속 읽었나보다.

일아 라는 비구니께서 쓰신 빠알리경전 직역본인 <숫따니빠따>, <담마빠다>,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이라는 책들이랑 번갈아 읽었는데, 나한테 이 소설은 영국인 이야기가 아니라 바다가 배경인 불경이었던 거 같다.

초기 불경에서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이라는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의지할 수 있는 고요한 섬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다른 곳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 의지처가 되라는 것.

보통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든가 '홀로 섬이 되어라'같은 말씀들을, 남한테는 아예 마음 주지 말고 아주 혼자 살아라 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지나치다고 평가하는 독자들이 있는데, 물론 그런 의미도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혼자'보다는 '의지'에 초점을 두고 읽고 싶었다.

섬 두 곳이 가까이 있다고 어떻게 멀리 떨어뜨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노릇이다. 섬 사이에선 파도가 좀 세겠지만 애초에 파도를 피하는 게 목적이니까.

그리고 그런 곳 생태계가 건강하다.

부처님께서는 바다에 관한 비유도 많이 사용하시는데 유행하시는 곳은 인도 내륙 승원이라 아쉬웠다.

서핑하는 부처님이 보고 싶었던 것.

그걸 이 책이 보여준 거 같다.

결론.
읽은 이유: 읽고 싶어서.
교훈: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말 아세요?
네.
근데 왜 그렇게 사세요?

ps.
책갈피 역할을 훌륭히 해내준 오드이븐 스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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