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60안녕하세요!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연말결산을 20년 말까지 끝내려고 했는데 미루다 보니 신년에 와서 씁니다.

지난번에는 2020년 커피를 직접 내리기 시작해 경험한 로스터리들에 대한 글을 썼었습니다.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tea&no=307058&exception_mode=recommend&page=3)


이번에는 작년에 구매해서 사용한 장비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입문하는 만큼 시행착오도 몇 번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중복 없이 한 해를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만족하고 나니 자잘한 것들이 증식하는 것은 막기 어려웠네요. 추출기구, 그라인더, 주전자, 측정도구와 기타로 나누어 정리해 보겠습니다. 각 항목별 순서는 구매 순서입니다.


1. 추출기구

1-1. 에어로프레스

처음 커피에 입문할 때 무엇을 살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것이 에어로프레스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에어로프레스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레시피를 들고 와도 기본은 한다는 것입니다. 태생이 침출식 추출기구인 만큼 과다추출을 하기가 매우 어렵고, 힙한 도구인 만큼 레시피도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레시피가 너무 많고, 레시피 간 결과물의 차이가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편하게 커피 한 잔 하기는 좋지만, 커린이 입장에서 너무 많은 레시피의 수와 비슷비슷한 커피맛은 커피에 대해 공부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여과식 추출기구를 하나 들이기로 하고 갤주님 유튜브 보다가 하리오 V60 플라스틱을 하나 샀습니다. 이후 V60보다 나은 커피를 꾸준히 내려주었으나 하리오 스위치 구매로 친구에게 장기 임대 중입니다. 여행 갈 일 있으면 되받아 오겠으나 이 시국에 그럴 일이 없네요.   

 

1-2. V60

처음 샀을 때만 해도 V60은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양한 레시피, 분쇄도에 따른 물빠짐과 맛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난관에 봉착했는데, 내린 커피가 맛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제 부족한 추출실력으로는 맛이 텅 빈 것 같으면서도 떫은 커피가 나오기 일쑤였고, 떫으면 더 굵게 갈라는 상식을 적용할 때마다 커피는 점점 더 맹탕으로 변했습니다. 그라인더 탓, 레시피 탓을 하다가 종국에는 에어로프레스로 돌아와 한동안 V60은 용량 때문이 아니면 쳐다도 보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내 커피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에어로프레스로 내린 커피가 더 맛있는지 객관적으로 알고 싶어 4-3의 ATAGO 굴절계를 샀습니다.

 

1-3. 하리오 스위치

굴절계를 사고 추출에 대해서 공부하던 중, 갤주가 patreon에서 자꾸 스위치랑 sibarist 필터 약을 팔길래 사봤습니다. 지금은 가장 유용하게,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침출식으로 계속 먹다가, 현재는 거의 여과식으로 먹고 있습니다. 침출식으로 활용하면 300ml가 한계고, 드리퍼를 바꿀 수는 있지만 그러면 너무 비싸져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과식으로 먹기에는 02 사이즈가 적당하기도 하구요. 저는 뜸 들이는 동안 밸브를 닫고 이후 열고 드립하는 식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뜸 들이는 동안 물이 빠지지 않으므로 뜸 들이고 드리퍼 돌려줄 때 매우 좋습니다. 적정 시점에 내려가는 거 끊고 싶을 때도 스위치 올리면 딱 끊겨서 정리하기도 편합니다. 다만 유리라서 무겁고 예열을 신경써야 한다는 게 흠으로, 플라스틱 스위치가 나오면 바로 살 것 같습니다. 혹시 하리오 짭 중에 플라스틱이면서 플라워 드리퍼랑 호환되는 거 알고 계시는 분은 알려 주세요. 


1-4. 블루 보틀 홀리데이 드리퍼

이건 그냥 이번 홀리데이 에디션으로 나온 드리퍼가 예뻐서 샀습니다. 플랫 바텀 드리퍼도 써보고 싶긴 했지만, 재질 면에서 더 나은 것이 많았음에도 이것을 고른 것은 순전히 외모 때문입니다. 


2. 그라인더

2-1. 타임모어 c1

첫 그라인더입니다. 여기서나 다른 커피 커뮤니티에서나 핸드 그라인더 입문기로 추천이 많길래 샀습니다. 중간에는 멋모르고 이 그라인더 욕을 엄청 했습니다만 브루잉용으로는 충분히 가격 대비 훌륭하다 생각합니다. 키누 구입 이후로 아버지께 기증하였습니다. 


2-2. 윌파 그라인더

첫 전동 그라인더입니다. 아래 주전자와 함께 구매했습니다. 중간에 청소 도중 버정렬이 틀어져 AEROPRESS 이후에서 쇳소리가 나는 문제가 있어 A/S를 보냈으나, 교환품 역시 청소 이후 동 증상이 발생해 그러려니 하고 아직 씁니다. 조만간 한 번 a/s보내기는 할 텐데, 짬처리 원두나 어머니 모카포트용 원두 가는 데에만(굵게 가십니다) 사용하고 있어 교환을 미루고 있습니다. 

 

2-3. 키누 m47

아타고 구매 이후 생각지도 못한 돈이 들어오기도 했고 그라인더 탓을 하지 않으려고 한 방에 샀습니다. 장점은 일단 뽀대가 나고 타임모어와는 다르게 청소할 때마다, 아니면 분쇄도 바꿀 때마다 여기가 어디었더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청소를 몇 번을 해도 동일한 위치에 분쇄도 링이 자리잡고 있어 매우 좋습니다. 분쇄 퀄리티에 대해서는 해외 포럼에서는 브루잉용으로는 코만단테보다 못하다는 말이 많은데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그라인더 탓 못 할 정도라는 것은 확실하고, 생각보다 타임모어 c1이 좋은 그라인더라는 것도 이 그라인더를 통해 느꼈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무게입니다. 아침에 눈 비비며 일어나서 약배 콩을 이걸로 갈고 있으면 욕나옵니다. 제 손이 작은 편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심플리시티를 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또 하나 문제는 콩이 링버랑 하부 베어링 사이에 낀다는 것입니다. 청소할 때마다 하나씩 껴 있습니다. 홈바 보니까 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몇 mm만 하부 베어링이 올라가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분쇄도 관련인데, 다른 사람들이랑 분쇄도를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해외 홈바 가 보면 생산년도에 따라서 분쇄도 조절 링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다르고, 완전히 잠기는 위치도 다른 등 좀 중구난방입니다. 그래서 저도 처음 적정 분쇄도 찾는데 많이 애먹었고, 아타고랑 호프만 WLCT 그라인드 샘플의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제 기준 2.0.0-2.0.5가 커핑 분쇄도입니다. 그래서 호프만 레시피는 1.9.5-2.1.0, 최근 쓰는 Jonathan Gagne의 레시피는 2.0.0-2.2.0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튼 사용자마다 조금씩 달라서 분쇄도 비교가 힘든 점이 코만단테 대비 단점으로 느껴집니다. 사용자가 더 버 정렬을 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니까요. 가장 비싼 돈 주고 산 거라 길게 적어 봤습니다.


   

3. 주전자

3-1. 윌파 주전자

다른 드립포트를 안 써봐서 별로 설명할 게 없습니다. 위 그라인더랑 세트로 구매했고, 지금도 매우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콸콸 나와서 컵라면 물 붓는 데에도 지장 없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일부 레시피에서는 주둥이의 한계가 느껴지고 온도와 보온 설정이 좀 거지같아서 그냥 100도 고정으로 씁니다. 다크로스팅 커피 먹게 되면 90~92도? 여튼 요즘 EKG 구매 욕구가 불타오르는 원인입니다. 


4. 측정도구

4-1. 하리오 저울

드립저울 검색하다가 유명한 거니까 중간은 가겠지 하고 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만족합니다. 가격이 좀 사악하고 한국 모델은 저울 관련 법 때문에 1kg 제한이 걸려 있습니다만 오차 없는 타이머 달려 있고 생각보다 튼튼합니다. 제가 뽑기운이 매우 좋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족히 5번 넘게 물 들어갔는데 잘 말리면 항상 다음날 부활하셨습니다. 아직도 애착이 있는 저울이고 수율 측정할 때나 타이머 필요할 때 간간히 활용합니다. 수율 측정할 때는 저울 2개 쓰는 게 편하거든요. 


4-2. Skale

지난번에 갤에서 대란 났을 때 탑승했습니다. 반응속도 빠르고, 앱이랑 연결하면 타이머 쓸 수 있고 앱에서 펌웨어 업데이트 통해 글로벌 펌웨어로 바꿔주면 1kg 제한 풀립니다. 커피 말고도 주방에서 적재적소에 사용 중입니다. 다만 타이머가 없고 앱이 거지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주방용 타이머 옆에 놓고 그걸로 시간 봅니다. 타이머가 사용중이면 하리오 저울 쓰구요. 


4-3. ATAGO PAL

아타고를 통해 측정해 본 결과, V60으로 내린 커피의 TDS는 놀랄 정도로 낮았고, 14-15% 수율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떫은 맛이 난다니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에어로프레스는 18% 이상 수율에서도 훌륭한 맛이 났는데 말이죠. 떫고 쓴 맛은 분쇄도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던 저에게 이 사실은 매우 큰 충격이었고, 유튜브나 차믕갤을 보고 넘기기보다 추출에 대해 더 공부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그라인더 탓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사실 떼어먹힌 줄 알았던 돈 들어온 게 컸습니다) 키누 m47을 주문하고 갤주 patreon에도 가입해서 포럼에 있는 사람들과 여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기기의 정확도가 필터 커피의 정밀한 수율 측정에 별로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잘 쓰지 않게 되었지만 제 커피 인생과 관련 지출에 큰 변화를 준 녀석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수율을 TDS*추출 커피 무게/원두 무게로 구하게 되는데 예 TDS 측정 오차가 0.1이라서 수율이 1프로 가량 왔다갔다 합니다. 그래서 추출 일관성 측정 목적으로는 부적절하고, 대략적인 수율을 알고 싶은 경우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TDS 측정이 1.41이 나왔더라도 1.36~1.46 중 어느 값일 수도 있기 때문에... 다만 제 경우에는 초기 V60 TDS가 1.06 이렇게 나와서 문제 파악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변에 가지고 있는 분 있으면 빌려서라도 한 번 측정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4-4. 디센트 우유 온도계

윌파 드립포트 사기 전에 일반 전기포트 물온도 재는 용도로 샀습니다. 지금은 스테이크나 빵 내부온도 측정용으로도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프로브가 짧다는 점 외에는 요리용으로 쓰기도 좋습니다. 애초에 고기용으로 나온 거를 디센트에서 OEM 받아 클립 붙여 파는 거라서...


5. 기타

5-1. 디센트 스팀 피쳐

유리 서버는 깰까봐 온도계랑 같이 샀습니다. 근데 지금은 가족들이 저보다 더 많이 씁니다. 밥솥에 물 부을 때, 라면 물 잡을 때 내부에 용량 마킹 있어서 특히 유용합니다. 

5-2. 블루 보틀 서버

스팀 피쳐를 가족들이 계량용으로 자꾸 사용하면서 커피 추출할 때 못 쓰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핑계로 홀리데이 드리퍼와 함께 구매했습니다. 유리가 좀 얇긴 한데 그래도 예뻐서 좋습니다. 근데 블보 드리퍼보다는 하리오 스위치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개인적으로 이 지식을 가지고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예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리오 스위치+적당한 그라인더+적당한 저울로 입문할 것 같습니다. 하리오 스위치는 거의 최고로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거부터 살 것 같고, 그라인더랑 드립포트는 윌파 세트 놓고 여유 되면 핸드그라인더 하나 고급으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저울은 카페클럽도 나쁘지 않다고 보고 타임모어나 펠리시타도 좋겠습니다. 사실 저울 느린 거야 좀 빡치긴 해도 맛에 큰 영향은 없어서...


그리고 아타고나 기미상궁같은 싼 굴절계는 커피에 대해서 좀 쓸데없이 깊게 파고드는거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한테 유용합니다. 다만 돈 많으시면 VST 사세요. 


이상으로 작년에 구매했던 여러 장비들에 대한 종합적인 이야기를 써 봤습니다. 커피에 입문하고 싶어서 갤 눈팅하시는 분이나 제가 써 본 장비들에 대해서 궁금했던 점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