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왜 샀는가?


라오 인스타그램 눈팅하다가 발견했습니다. 한창 조나단이 이야기하는 바이패스 관련해서 여러 글을 읽던 차에 구조상 바이패스가 전혀 없다니까 궁금해서 바로 사버렸어요. 공홈 (https://tricolate.com/) 에서 샀는데 지금은 여러 사진들이 추가되었지만 샀을 당시에는 coming soon이라는 사진 하나만 올려 놓고 주문 페이지로 바로 넘어가길래 팔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건가 싶었습니다. 제대로 잘 올지, 언제 올지 확신도 없었구요. 근데 DHL 배송이라서 1주도 안 걸려 문 앞에 도착해서 신기했습니다. DHL 배송비 포함인 거 생각하면 6만원 가량 하는 가격도 이해됩니다. 


1. 좋은가?


일단 플라스틱 재질이라 예열이 필요없고 바이패스가 일어나지 않아 커피의 농도가 높습니다. 1:20 기준으로도 매우 쉽게 1.4~1.5 TDS가 나옵니다. 제가 평소에 V60을 1:16~17 사이로 내리면 1.25~1.4정도 되는데, 물의 양이 더 많은 것을 생각하면 수율이 훨씬 높다는 거죠. 그리고 잘 내리면 V60와는 꽤나 다른 맛이 나서 한 원두로 좀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또 드리퍼 위에 얹힌 샤워스크린이 물을 뿌려주기 때문에 커피 내리는 동안 앞에 서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물 부어놓고 딴 거 하다 보면 내려와 있으니까요. 아침에 바쁠 때 특히 유용합니다. 


2. 단점은 없는가?


꽤 있습니다. 우선 고수율로 내리려면 추출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1.4정도 나오려면 5분 정도, 1.5 나오는 레시피는 7분 넘게 걸립니다. 그 시간동안 다른 걸 할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지만 급할 때는 쓸 수가 없습니다. 미분이 더 많은 그라인더로는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로 구스넥 케틀과 조합이 어정쩡합니다. 샤워스크린이 있긴 하지만 수위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지 않으면 물이 골고루 나오지 않고 아래 그림처럼 한 부분을 중심으로 떨어집니다. 샤워스크린 있다고 대충 붓다 보면 아래 사진처럼 중앙에 구멍납니다. 


세 번째로 필터가 바스켓보다 약간 커서 끝에서 말려 올라가거나 찝히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면적이 넓어 커피베드가 얕게 깔리는 만큼 약간만 접혀도 베드를 완전히 평평하게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필터 적시는 과정에서 드리퍼에 물이 묻어서 그 부분에 커피가루가 들러붙기도 하는데, 위에서만 보면 베드가 평평한지 판별이 어렵기 때문에, 추출 전에 드리퍼를 돌려가면서 잘 확인해 줘야 합니다. 경험상 분쇄도가 가늘수록, 커피양이 적을수록 베드가 살짝만 기울어도 바로 채널링이 일어났습니다. 고수율 레시피 목적으로 구매하실 거라면 한번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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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떻게 쓰는가?


라오가 인스타에 올린 레시피를 가장 많이 썼고 이게 가장 맛있었습니다만 다른 레시피들도 몇 번 썼습니다. 라오 레시피는 이렇습니다. 


1. 필터를 적시고 원두 18그램(분쇄도 400-500마이크론, 바라짜 포르테 4a-5)을 드리퍼 바닥에 평평하게 깐다.

2. 54그램의 물(100도)을 붓고 드리퍼를 돌려준 뒤 1분 기다린다.

3. 나머지 306그램의 물을 때려붓고 살짝 돌려준다.

4. 다 내려올 때까지 기다린다. 


제가 쓰는 키누로는 2.0.0 했을 때 5분, 1.8.5가 8분 정도 걸렸습니다. 다만 물 부을 때 구스넥이라면 처음 몇 초는 돌리면서 하는 게 좋습니다. 안 그러면 물이 집중되어서 베드가 이렇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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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율이 부담스러운 날은 1:22 비율 정도로 18:396도 나쁘지 않았고, 20:440도 괜찮았습니다. 아이스 내린다고 25g에 물 300ml, 얼음 200도 해보고 그랬는데 확실히 커피 양이 늘수록 베드 모양이 이상해질 확률은 주는 것 같습니다. 다만 뜸들일 때 최대한 잘 섞고(스푼은 필터 찢어질까봐 안써봄) 물 조심히 부으면 일관성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4. 그래서 어쩌라고?


사야 하는가? 좀 애매합니다. 해외 유저들 보면 에어로프레스에 멜로드립으로 비슷한 효과 냈다는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 다만 조나단 말로는 에어로프레스는 필터가 예보다 얇고 홀쭉해서 바이패스는 안 일어나지만 막힐 확률이 높다고는 하더라구요. 저는 에어로프레스가 장기임대 가 있는지라 멜로드립은 안 써봤지만 둘 다 있으시면 실험 해 보시면 좋을듯? 


저는 모양, 필터 가격(400장=1드리퍼), 추출 준비 작업이 마음에 안 들어서 데일리로는 하리오 스위치를 조금 더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최근 먹었던 커피 중 베스트 컵이 대부분 예에서 나와서 각잡고 내리는 용도로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세줄요약:

1. 비싸고 잘 내리기 까다로움.

2. 예쁘지도 않음.

3. 잘 내리면 맛있음.


국내 후기가 별로 없어서 길게 써 봤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