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 니콜라여깃치 톨드어스토리


어느 겨울날의 일이었다. 상호가 믕붕이와 땀을 흘리며 로스팅을 하고 있는데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바라보니 한 리무진이 카페 앞에 섰다. 그리고 젊은 사람이 운전석에서 내려 뒷문을 열어주자 리무진 안에서 고급스러운 유니클로 상하의를 입고 키에니 모자를 쓴 신사가 나왔다. 그리고 카페의 입구 층계를 올라왔다. 호프만은 문을 활짝 열었다. 신사는 몸을 굽히고 안으로 들어와 허리를 쭉 폈는데 머리는 거의 천장에 닿을 지경이고 창문은 신사의 어깨로 꽉 들어찬 것 같았다.
상호는 일어서서 인사했으나 신사의 큰 몸집을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런 사람은 처음 본다. 상호도 살집이 없는 편이고 믕붕이도 깡마른 편이고 호프만조차도 마치 마른 나무 잎사귀처럼 살이 없는데 이 신사는 다른 나라에서 왔는지 얼굴은 불그스름하니 윤이 나고 목은 황소처럼 굵고 어깨가 태평양처럼 넓어 마치 몸뚱이 전체가 무쇠로 된 것 같았다.

신사는 후욱 숨을 크게 내쉬더니 유니클로 외투를 벗으며 걸상에 앉아 말했다.
"이 카페 주인은 누구지?"
상호가 나서며 말했다.
"제가 주인입니다."
그러자 신사는 자신의 비서에게 커다란 소리로 명령했다.
"윈들보. 그걸 이리 가져와."
비서가 달려가더니 무슨 꾸러미를 가지고 왔다.
신사는 꾸러미를 받아 테이블 위에 놓더니 "풀어둬"하고 그 젊은이에게 명령했다. 비서가 꾸러미를 풀었다.
신사는 거기서 나온 생두 한 주먹을 쥐며 상호에게 말했다.
"주인, 이 생두가 무슨 생두인지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이봐, 이 생두가 무슨 생두인지 안단 말인가?"
상호는 생두를 만져보고 나서 대답했다.
"썩 좋은 생두입니다."
"그야 물론 틀림없이 좋은 생두이지. 바보 같으니라고, 자네는 이제까지 이런 생두를 보1지 못했을 꺼야. 베스트 오브 파나마 1위 생두야. 이건 키로당 300만원이나 주었다구."
상호는 겁을 집어먹고 말했다.
"저 같은 사람이 어찌 구경이나 했겠습니까?"
"그야 당연하지 어디 이 생두로 내 입맛에 꼭 맞는 커피를 볶을 수 있겠나?"
"볶을 수 있구 말굽쇼."
신사는 느닷없이 소리질렀다.
"지을 수 있구 말굽쇼라구? 너는 누구의 생두를 볶는지를 명심해야돼. 나는 반 년 내내 마셔도 질리지 않고 "커피에서 이런 맛이?","배 터질때까지 마실 수 있겠어."라는 말이 나오기를 원해. 그렇게 만들 수 있으면 내일 착수하여 생두를 로스팅해. 하지만 안될 것 같으면 손도 대지 말아. 미리 말해 두겠는데 만약 커피가 반 년도 채 되지 않아 질려지거나 맛이 변하거나 하면 네 놈을 감옥에 넣어 버릴테다. 만약 반 년이 넘도록 맛이 변하지 않고 질려지지도 않으면 삯으로 300만원을 주겠다."
상호는 겁이 버럭 나서 대답할 말을 잃고 믕붕이 쪽을 돌아다보았다.
그리고는 발꿈치로 믕붕이를 꾹 찌르면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봐 어떻게 하지?"
믕붕이는 '그 일을 맡으십시요'하는 듯이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상호는 믕붕이의 고개짓을 보고 일 년 동안 맛이 가지도 않고 질리지 않을 원두를 주문 받았다.

신사는 수분계를 꺼내며 말했다.
"수분 함량을 재라."
상호는 두 무릎을 꿇고서 신사의 수분계를 더럽힐라 앞치마에 손을 잘 닦은 다음 수분 함량을 재기 시작했다.

신사는 의젓하게 앉아 카페안을 둘러보고 있다가 믕붕이를 보더니,
"저 사람은 누구인가?"하고 물었다.
"이 가게 헤드로스터인데 그가 원두를 볶을 겁니다."
"똑똑히 알아둬라. 최고의 원두를 볶아야한다."
신사는 이렇게 믕붕이에게 말했다. 상호도 믕붕이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믕붕이는 신사의 얼굴은 보지 않고 그 뒤 구석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누구인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던 믕붕이는 갑자기 싱긋 웃더니 얼굴이 활짝 밝아졌다.
"넌 뭘 싱글(블렌드 아님)거리고 있는거야? 바보처럼. 정신차려서 기한 내에 만들어낼 생각이나 하지 않고."
그러자 믕붕이는 말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신사는 유니클로 외투를 입자 문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허리 굽히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이마를 세게 문에 부딪혔다.
신사는 욕설을 퍼붓고 이마를 문지르며 리무진을 타고 가버렸다.
신사가 나가자 상호가 말했다.
"정말 어마어마한 몸집이야. 그 사람은 생두를 먹여도 위장이 멀쩡할걸. 문이 흔들거리도록 이마를 부딪혔는데도 별로 아프지도 않은 모양이던데."
그러자 호프만도 말했다.
"그렇게 부유한 생활을 하는데 체격인들 왜 좋지 않겠어요. 저런 튼튼한 사람에게는 어둠의 아브라함도 감히 접근하지 못할걸요."

상호는 믕붕이에게 말했다.
"일을 맡긴 했지만 이거 까딱 잘못하는 날엔 개망신이야. 생두도 비싼데다, 그 신사는 성깔이 대단하시고, 실수를 말아야 할텐데. 자, 자네는 눈도 밝고 솜씨도 나보다 나으니 여기 이 측정 데이터를 주겠네. 나는 포장지를 준비 할 테니까."
믕붕이는 이르는 대로 신사의 생두를 탁자 위에 펼쳐 놓은 다음 핸드픽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호프만은 믕붕이의 옆으로 다가가 믕붕이가 로스팅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호프만도 이제 로스팅에는 익숙한 터인데 가만히 보니 믕붕이는 그 비싼 생두를 태우고 있었다.
호프만은 주의를 줄까 하다가 생각했다. 로스팅에 대해서는 믕붕이가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참견하지 말아야지.
믕붕이는 로스팅을 마치고 바로 원두를 EG-1(굉장히 아름다운 그라인더입니다. 사주세요)에 넣고 분쇄도도 확인하지 않고 갈아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보고 호프만은 또 크게 놀랐으나 역시 참견하지 않았다.

점심때가 되어 상호가 나와 보니, 신사의 베스트 오브 파나마 생두로 콩자반을 연성한데다가 갓 볶은 원두를 갈아버린것을 보고 상호는 "앗!"하고 크게 소리질렀다. 이게 대체 웬일일까.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믕붕이는 일 년이나 우리와 같이 지내면서도 한 번도 실수한 일이 없었는데 이런 잘못을 저지르다니. 그 신사는 산미가 있는 원두를 주문했는데 믕붕이는 석탄을 만들어 버렸으니 영 생두를 버리지 않았나. 그분에겐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생두를 구하려야 구할 수도 없을 텐데....'
상호는 믕붕이에게 말했다.
"아니 자네, 이 무슨 짓인가? 자넨 나를 못살게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분은 "커피에서 이런 맛이?"라는 말이 나오는 원두를 주문했는데 자넨 도대체 뭘 만들었나?"
상호가 믕붕이에게 말을 거는데 바깥문이 덜컹거리더니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상호가 나가보니 그 신사의 비서가 아닌가.
"안녕 하십니까?"
"어서 와요. 무슨 볼일이라도?"
"원두 일로 사모님의 심부름을 왔지요."
"원두 일로?"
"원두인지 뭔지. 하여간 비싼원두는 이제 필요 없게 되었어요. 사장님의 위장이 나갔거든요"
"아니 뭐라고요?"
"여기서 저택으로 돌아가시는 도중 리무진 안에서 언더난 커피를 마시고 쓰러지셨어요. 리무진이 저택에 닿아, 내리는 걸 도와드리려고 보니까 사장님이 짐짝처럼 딩굴고 있지 않겠습니까. 완전히 나가버린거에요. 간신히 리무진에서 끌어내린 형편이죠. 그래서 사모님께서 나를 보내어 '저기, 카페에 가서 이렇게 전해주세요. 아까 그이가 주문하신 비싼 원두는 이제 필요 없게 되었으니 그 생두로 수육을 삶을때 쓸 다크로스팅 원두나 달라고요. 그리고 다 볶아지기를 기다려서 그 원두를 가지고 와야겠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왔지요."
믕붕이는 로스팅과 그라인딩이 다 된 원두를 꺼내어 세련된 포장지에 실링을 해서 비서에게 내밀었다. 비서는 원두를 받자 인사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여러분."
그리고는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