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요리학교 졸업하고 한국에서 도서관 사서 하고 있다고 하면 의아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음식문화 특화 도서관에서 요리/음식분야 전문 사서로 일하고 있으니 지금까지 해 온 공부를 잘 써먹고 있는 셈이지요.


도서관 사서라고 하면 무뚝뚝하게 책 대출과 반납만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오만가지 잡다한 일을 다 합니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했던 일은 주제에 맞게 책을 전시하는 "북큐레이션"과 정부 예산 타서 진행하는 인문학 프로그램 사업을 섞어놓았습니다.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커피 관련 체험활동을 하는데, 그 주제에 맞게 책과 소품을 진열합니다.


음식문화 특화 도서관이다보니 커피 관련 책만 모아도 백여권이 쉽게 넘는지라 책은 문제가 아닌데 커피 도구가 문제입니다.


정부 예산이다보니 자산 취득성 지출을 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빌리자니 대여료가 무시무시해서 포기.


결국 그 동안 개인적으로 모아두었던 커피 추출 도구를 거의 다 꺼내서 디스플레이 하는데 써먹었지요.


이제 나중에 체험 활동을 할 때 다시 한 번 활약할 예정입니다.



소품 대여료 아낀 돈으로 커피 원두를 구입합니다.


국가별 원두 특성을 적은 커피 세계지도 앞에 다양한 원두를 샘플로 놓아두니 그럴 듯 하네요.


코로나가 여전히 심각했다면 꿈도 못 꿀 일인데 이제 슬슬 거리두기가 완화되니 이렇게 향기 맡는 것 정도는 가능합니다.



로스팅 분류표.


로스터리 카페 몇 군데에 연락해봤는데 8단계로 나눠서 볶아달라고 하니까 다들 기겁을 하며 거절합니다.


돈도 별로 안 되는데 손이 너무 많이 가니까요. 어쩔 수 없이 제가 일일히 수망으로 볶았습니다.


좀 오래된 생두라 나중에 갈아먹을 것도 아니니 대충 색깔만 맞도록 슬슬 볶았더니만 얼룩덜룩 점박이가 너무 많네요.



프렌치프레스, 모카포트, 밀크저그.


비알레띠 모카포트는 중간에 녹슬어서 하나 날려먹고 새로 구입한 물건입니다.


예전에는 뭣도 모르고 4컵짜리 샀다가 커피를 엄청나게 쏟아부어야 하길래 이번에는 교훈을 얻어 2컵짜리로 구입했습니다.


장난감 같아서 귀엽지요.


아래쪽의 커피툴즈 책 표지와도 잘 어울립니다.



드립은 칼리타 셋트로.


꼬꼬마 초보시절 가장 먼저 구입했던 물건들인데 어찌저찌 20년 가까이 살아남았네요.


유학 시절에도 종종 써먹고, 캠핑 갔다가 주전자가 없어서 드립 포트에 물 끓이는 만행도 저질렀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 써먹는 중입니다.



'베트남의 커피'라는 책이 있길래 옆에 커피핀과 G7 커피로 잘 알려진 쭝 응우옌 커피를 배치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조합이죠 ㅎㅎ


다만 연유 깡통을 사는 것을 깜빡하는 바람에 아직은 뭔가 조화롭지가 못한 기분입니다.



베큠팟. 우리나라에는 사피펀 혹은 사이폰 커피로 더 잘 알려져있지요.


사이펀 현상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데 일본 사람들은 왜 사이펀 커피라고 부른 걸까요?


의문입니다...



오래간만에 열일한 자센하우스 핸드밀과 수망.


이브릭은 동포트라 반짝반짝한게 진열해놓으니 예쁘네요.


마음같아서는 체험학습 때 모래를 달궈서 만들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부탄가스나 써야겠습니다.



더치커피, 또는 워터드립 커피.


네덜란드 커피상인들이 항해 중에 마신건 침출식이었으니 엄밀히 따지면 더치커피는 맞는 표현이 아니라고도 하지만...


뭐, 음식 용어가 언제나 이론적, 기술적으로 타당한 그거를 두고 이름 붙는게 아니니까요.


오래 전에 워터드립 커피를 먹고 싶은데 파는 카페도 없을 무렵, 종로의 과학도구 상점에 가서 만든 물건입니다.


그래서 요즘 워터드립 세트는 원목으로 맞춰서 만드는데 이건 그냥 실험도구 셋팅.


분별깔때기와 삼각플라스크는 쉽게 구했는데 중간의 커피 포터 부분은 도저히 파는 곳이 없어서 직접 설계도 그려가며 주문제작했던 추억이 있네요.


그 옆에는 A3 두 장을 이어붙인 메인 포스터가 있습니다. 탈레랑의 유명한 묘사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를 적어놨지요.


탈레랑 쯤 되는 인물이니까 사람들이 공감하지, 어지간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면 손발 오그라든다며 뒷통수를 맞았을 겁니다.



세계 3대 커피라는 말은 별로 안좋아하지만, 참여율이 저조하니 자극적인 문구로 어떻게든 사람들을 끌어모으려고 똥꼬쇼를 합니다.


원래는 여기에 진열된 커피 도구들로 비교 시음하는 정도를 계획했는데, 평일 주중에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사람들이 모이질 않네요.


결국 세계 3대 커피라는 문구를 대문짝만하게 써붙이고 나중에 블루마운틴으로 드립백 만드는 활동도 추가했습니다.


25명 정원이 꽉 차면 드립백에 10그램씩만 넣어도 6~7만원은 훅 날아가는 무서운 체험활동... 후덜덜.


소품 대여료 아낀 예산을 여기에 다 들이박네요.


그래도 그 동안 모아두었던 것을 써먹으며 즐겁게 일을 진행하고 있으니 완전히 덕업일치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성공한 덕후 아닌가 싶네요.


남는 에쏘머신이랑 퍼콜레이터까지 들고 왔으면 더 좋았겠다 싶지만서도.


ps. 혹시 주중에 시간 남고 할 일 없어서 음식과 인문학 강좌 듣고 싶은 분은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s://www.splib.or.kr/spalib/program/eventDetail.do?eventIdx=5217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