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튀르키예에서 인사드립니다. 메르하바!
오늘 소개할 물건은 차이단륵(Çaydanlık)입니다. 이전에 튀르키예식 차 우리는 법을 소개하면서 차이단륵에 대해 깔짝 다룬적이 있지만, 오늘은 심화편입니다. 한국에서도 차이단륵을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서 신기하면서도 재미가 있습니다.
터키어로 차이단륵의 의미는 사실 아주 단순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차(çay)를 담는(-dan-) 것(-lık), 즉 단순히 "찻주전자" 라는 뜻입니다. 위 사진에 줄줄이 늘어놓은 저 모두가 차이단륵입니다. 왼쪽부터 시작해서 요즘들어 인기있는 주철주전자, 그 옆은 룸메이트한테서 긴빠이쳐온 스테인레스 재질의 차이단륵, 그 옆은 손님 오거나 사람이 많을때 쓰는 법랑+도자기 재질의 대형 차이단륵, 그 옆은 동으로 만들고 수공 조각으로 장식된 가지안텝(Gaziantep) 지방의 차이단륵과 주전자입니다.
하지만 튀르키예식 차 우리기의 특징은 이 차이단륵을 두개 세트로 쓴다는 점이죠. 여기서는 다양한 재질로 차이단륵을 만들지만, 스테인레스나 알루미늄은 쇠맛때문에 제가 선호하지 않는 재질이고, 오늘은 제가 가지고있는 차이단륵중 법랑+도자기와 구리 재질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실 튀르키예에서 차의 역사는 굉장히 짧습니다. 1917년에야 지금의 튀르키예 땅에서 차가 재배되기 시작했고, 공화국 수립이후 정부가 차농가를 집중적으로 밀어주고 국가정책으로 삼으면서 1938년에 국영 차공장을 리제(Rize)에 연것이 최초의 튀르키예산 홍차의 시작이었습니다. 바로 옆에붙은 조지아나 아제르바이잔이 러시아의 지원으로 19세기부터 차를 재배하기 시작한것에 비하면 그보다도 늦은 출발이었지요. 하지만 공화국 초기, 커피 생산지인 예멘을 상실하고 커피 수입에 어려움을 겪게되자 정부는 커피의 대체재로 차를 밀어주었고 1950년대에는 리제산 홍차가 튀르크 커피를 밀어내고 완벽하게 정착하는데 성공합니다.
차이단륵도 이 시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지요. 기록에 따르면 1930년대 외즈티리야킬레르(Öztiryakiler)라는 주방용품 생산회사에서 처음 발명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한건 처음에는 공장에서 찍어내던 물건이었지만, 산업화가 아직 되지 않은 튀르키예 사정상 기존의 동기 수공업자들이 망치로 탕탕 두들겨서 차이단륵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 혼수품으로 차이단륵을 해가는 것이 유행이 되면서 고급화의 일환으로 손으로 조각한 화려한 무늬가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단륵은 튀르키예 전통 도자기인 치니(Çini)의 화사한 무늬들을 모방해서 장식되었습니다. 튀르키예의 국화인 튤립과 카네이션꽃이 주요소재입니다. 아랫 주전자는 법랑재질이고, 윗주전자는 도자기로 되어있는데 아랫주전자만 3리터가량 물이 들어가는 초대형입니다. 이거 하나만 있어도 여섯명 이상이 차 마시기에 충분합니다.
제가 주로 쓰는 차이단륵은 이쪽입니다. 동으로 되어있고, 가지안텝의 동장인이 직접 망치와 정으로 새겨넣은 무늬로 장식되어있습니다. 모양도 우아하고,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선호합니다. 오스만 제국스러운 느낌도 들고요.
좋은 차이단륵은 이렇게 바닥이 넓은것이 좋습니다. 센 불에 빠르게 물을 끓일 수 있고, 이후에 뜸을 들일때도 약불에서 열기가 균일하게 퍼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동은 전열성이 좋기 때문에 더 선호됩니다. 비싸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입니다.
차이단륵은 제가 자주 쓰는 사모바르를 대체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즉 오랜시간 뜨거운 차를 마시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저희집에는 없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석탄, 나무를 때는 난로를 많이 쓰는데, 난로 위에다가 차이단륵을 올려놓으면 하루종일 뜨거운 차를 마실 수 있지요. 별도로 불을 붙이고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실내에서는 차이단륵을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차이단륵의 사용법은 간단합니다. 일단 아랫주전자(suluk, 물이 들어가는 통)에다 물을 채우고 가스불이든 난로 위든 열원 위에다 올려놓고 끓입니다. 보통 튀르키예인들은 아랫주전자 뚜껑을 쓰지 않고 윗주전자를 비스듬하게 쌓아서 사진처럼 올려놓는데, 이렇게하면 물을 너무 많이 채우더라도 두 주전자 사이의 공간때문에 넘치지 않습니다.
아랫주전자의 물이 끓으면 이제 차를 우릴 시간입니다. 오늘은 튀르키예 국산 차를 이용했습니다. 차를 넣는 양은 딱히 정해져있지 않습니다. 어차피 물에다가 타서 희석해서 마시니까요. 제 경우를 소개하자면 저는 밥숫가락으로 네 스푼 푹 떠서 넣고 윗 주전자의 물을 가득 채웁니다. (1리터정도)
이렇게 아랫주전자의 끓는 물을 윗주전자에다 붓고 차를 우립니다. 그러고나서 아랫주전자의 물이 절반정도밖에 남지 않을탠데, 물을 보충합니다. 적당히 물을 보충하고, 끓이시기 바랍니다. 윗주전자는 아랫주전자 위에다가 비스듬하게 쌓아놓고요.
윗주전자의 찻잎이 가라앉으면 이제 마실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보통 10-15분정도 우립니다. 찻잔에다가 윗 주전자의 찐한 홍차엑기스를 붓고, 아랫주전자의 끓는 물을 넣고 입맛에 맞게 희석해서 마십니다.
튀르크인들은 이 차의 농도를 가지고 유머러스한 용어로 부르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이상적인 색깔 - 토끼 피 (tavşan kanı, 타브샨 카느)
너무 연함 - 이맘의 목욕물 (imamın abdest suyu, 이마믄 압데스트 수유)
너무 진함 - 타르 (zift, 지프트)
이맘은 이슬람 성직자를 말하는데, 연한 차를 혐오하는 튀르키예인들의 유머러스함을 느낄 수 있는 표현입니다. (훌륭한 이맘의 목욕물 예시)
이렇게 우려진 차는 몇 시간이고 계속 마십니다. 뜨거운 불만 있으면 아랫주전자의 물을 수시로 보충해주면서 하루 종일 마시기도 하지요.
튀르키예인들은 차에다가 설탕을 넣기도 하는데, 동네마다 설탕 넣는 양이 달라서 설명하기 힘듭니다. 흑해지방 사람들은 설탕을 거의 안 넣고, 남동부 지방의 쿠르드인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각설탕 세개를 넣어서 줍니다. 아랍인들은 더 달게 먹고, 대체로 서부로 갈수록 차에 설탕을 안 넣는 사람들이 많고, 동남부로 갈 수록 사람들이 차를 달게 마십니다. 그리고 동부 캅카스 근처에서는 러시아의 영향때문인지 레몬을 띄워 마시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다만 우유를 넣는 문화는 없습니다.
오늘은 차이단륵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궁금하거나, 추가하고싶은 내용이 있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아는만큼 답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20000
즐거운 차믕되세요~~
서울에서 혼자 살며 차 마시는 입장에서는(그리고 거의 집에 방문객이 없는 입장에서는) 2-3인용 티팟에 우려 혼자 여러 잔 마시는 게 일상이네요. 다른 가정에서도 손님이 그렇게 많이 오거나 한 번에 차를 많이 마시지 않아 서양식의 경우 3-4잔 나오는 티팟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빈도를 포함해서 문화가 다른 것이 찻주전자 용량을 통해서도 드러나는 것 같아 흥미롭습니다. 여튼 구리는 탐나네요…위장이 아파 차는 그렇게 많이 못 마시고 차이단륵으로 보리차나 대추차 오래 오래 우려내서 물 대신 마셔도 좋을 것 같아요. - dc App
요즘은 여기도 경제난+일인가구 증가라 조그만 차이단륵의 수요가 있기는 합니다. 제 차이단륵을 만든 동기장인이 만드는 것중 제일 작은 차이단륵이 아랫단이 1리터, 윗단이 600ml 였나 아마 그랬을거에요.
그 정도면 1-3인 가구원에게 적절하겠어요 - dc App
사실 이것도 작진 않아요. 두 주전자 합쳐서 1.6리터인데, 여기서 흔히 쓰는 서양배 모양 찻잔이 제일 작은게 80cc부터 나오거든요. 제일 큰건 170cc인가 그렇고
호오 - dc App
주전자 쌓아논거 웃겨용 오늘도 잘보고갑니다 ㅠㅠ 근데 저 찻잔은 손잡이도 없는데 안뜨겁나요 예쁘게생기긴 했는데 뜨거울것같아오 하나사고싶다.... - dc App
찻잔 위를 잡아야죠. 외국인들은 저 가는부분 잡다가 손 데곤 합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찻잔 위를 잡고, 그대로 입술로 가져갑니다. 그래서 저 잔에 차를 채울때는 항상 어느정도 공간을 남겨놔야하고요.
찻잎을 윗주전자에다 넣는다는 말씀이시죠? 그럼 잔에다 부을때 찻잎 같이 안들어오나요? 그리고 구조상 윗주전자 찻잎은 몇시간째.. 계속 쓰는건가요? 옅어지면 찻잎도 보충?
여기 차 만드는 사람들은 차이단륵으로 우린 차는 45분 이내에 다 마시라고 하는데, 보통 사람들 쓰는거 보면 하루종일 놓고 씁니다. 윗주전자 찻물 바닥나면 찻잎 버리고 새 찻잎이랑 끓는 물 넣고 다시 우리죠.
스트레이너는 쓰는 사람있고 안쓰는 사람 있는데, 쓰는 사람을 거의 못봤습니다. 조심해서 따르면 구조상 찻잎이 많이 안 들어오고, 들어오더라도 마지막 한 모금 안마시는걸로 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이맘의 목욕물ㅋㅋㅋㅋㅋ 그러니까 홍차가 살짝 발 담그고 간 물의 터키식 표현이군요.
그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처음 들었을때 엄청 웃어서 마시던 차가 코로나왔던 경험이 있습니닼ㅋㅋㅋㅋㅋㅋ
설명 들어도 무슨 원리로 저기서 효율성을 발견한거고 아직 쓰는건지 모르겠는데, 혹시 저게 중국이라거나 왜식 다기 및 거기 차음료문화에서 물보충하는 방식보다 월등한 상대적 장점이 있음??? 일단 외관상 방식이 조악하고 질박해서 격식없어보이고 시각적으로 뜨거운걸 중첩해서 쌓아놓으니(중탕하려는것도 아니고) 높이때문에 불안해보임.
혹시 걍 전래된 방식을 관습따라 관성으로 쓰는겨?
사모바르 아시죠? 차이단륵은 사모바르의 현대식 버전입니다. 사모바르는 불을 피워서 뜨거운 물을 끓이고, 타고난 숯의 열기로 유지하는 방식이지만 차이단륵은 난로나 가스불 위에 올려놓고 물의 온기를 유지하면서 오랫동안 뜨거운 차를 마시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냥 티팟은 워머를 쓰든 뭘 쓰든 1시간 이상 앉아서 뜨겁게 차를 마시기 힘들지요.
하지만 사모바르나 차이단륵은 가능합니다. 오랫동안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대화도 나눌수 있고, 추운날 온기도 느낄수 있고, 다과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낼수 있지요. 차이단륵의 목적은 이거 하나입니다. 차는 윗층과 아랫층을 섞어서 원하는 농도로 희석해서 마시면 되니 과다추출은 문제가 되지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