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하바!
얼마전에 화두로 던져놓긴 했지만 오늘 이야기는 동양식 - 이라고 쓰고 거의 중국이겠지만... 찻잔이랑 서양식 찻잔의 크기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에 대한 의문을 여러분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먼저 제가 가지고있는 동양식 찻잔들임입니다. 2짤 기준으로 왼쪽부터
1. 중국 경덕진 모자꼴의 청화백자 산수찻잔
2. 일본 센차용 청화백자 송죽매문 찻잔
3. 한국 고려청자 찻잔 (제가 한국 떠날때 선물로 받은 세트중에서)
4. 중국 도기찻잔 (무유인지 아닌지는 모르겠...)
5. 중국 영롱배
6. 중국 덕화요 연꽃모양 찻잔
7. 중국 납작한 청화백자 산수 찻잔
이렇게 7종입니다. 이중 제일 큰게 4, 5번인데 110ml 정도, 3이 90ml 정도 들어가고 나머지는 60ml 이하입니다.
반면에 서양식 찻잔들은 기본이 150ml 부터 시작해서 200ml 사이가 많고, 제일 큰 Breakfast cup이 300ml 가까이 들어갑니다.
제가 궁금한 점은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18세기 영국에서 쓰던 찻잔 유물들을 본 적이 있는데 중국에서 차를 수입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이라 중국도자기를 많이 쓰던 시절이었는데도 당시 서양식 찻잔들은 현대와 마찬가지로 중국식 찻잔들보다도 크기도 하고, 다른건 다 크고 아름다운거 좋아하는 중국에서 유독 다구만큼은 애들 장난감처럼 조막만하니 이것도 흥미롭습니다.
제가 생각해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애초에 중국식 차법은 조막만한 다관에 찻잎을 여러번 우려먹기 때문에 큰 찻잔이 필요없을것이다.
2. 작은 찻잔에 담긴 차가 금방 식고, 마시기 더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3. 작은 찻잔, 다관이 차의 맛과 향을 극대화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놓으면 서양식 찻잔, 다구가 큰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서양식 다구들은 예전에도 컸고, 중국에서 도자기 수입하던 시절의 물건들도 최소 400ml 이상은 하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중국식 다법은 차를 빠르게 우려내지만 서양식은 3분이상씩 기다렸다 찻물을 빼는 방식인데 이 방식의 차이도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P.S. 막짤은 제가 가지고있는 서양식 찻잔(+튀르키예식 동제 커피잔)과의 크기비교입니다.
얼마전에 화두로 던져놓긴 했지만 오늘 이야기는 동양식 - 이라고 쓰고 거의 중국이겠지만... 찻잔이랑 서양식 찻잔의 크기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에 대한 의문을 여러분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먼저 제가 가지고있는 동양식 찻잔들임입니다. 2짤 기준으로 왼쪽부터
1. 중국 경덕진 모자꼴의 청화백자 산수찻잔
2. 일본 센차용 청화백자 송죽매문 찻잔
3. 한국 고려청자 찻잔 (제가 한국 떠날때 선물로 받은 세트중에서)
4. 중국 도기찻잔 (무유인지 아닌지는 모르겠...)
5. 중국 영롱배
6. 중국 덕화요 연꽃모양 찻잔
7. 중국 납작한 청화백자 산수 찻잔
이렇게 7종입니다. 이중 제일 큰게 4, 5번인데 110ml 정도, 3이 90ml 정도 들어가고 나머지는 60ml 이하입니다.
반면에 서양식 찻잔들은 기본이 150ml 부터 시작해서 200ml 사이가 많고, 제일 큰 Breakfast cup이 300ml 가까이 들어갑니다.
제가 궁금한 점은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18세기 영국에서 쓰던 찻잔 유물들을 본 적이 있는데 중국에서 차를 수입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이라 중국도자기를 많이 쓰던 시절이었는데도 당시 서양식 찻잔들은 현대와 마찬가지로 중국식 찻잔들보다도 크기도 하고, 다른건 다 크고 아름다운거 좋아하는 중국에서 유독 다구만큼은 애들 장난감처럼 조막만하니 이것도 흥미롭습니다.
제가 생각해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애초에 중국식 차법은 조막만한 다관에 찻잎을 여러번 우려먹기 때문에 큰 찻잔이 필요없을것이다.
2. 작은 찻잔에 담긴 차가 금방 식고, 마시기 더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3. 작은 찻잔, 다관이 차의 맛과 향을 극대화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놓으면 서양식 찻잔, 다구가 큰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서양식 다구들은 예전에도 컸고, 중국에서 도자기 수입하던 시절의 물건들도 최소 400ml 이상은 하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중국식 다법은 차를 빠르게 우려내지만 서양식은 3분이상씩 기다렸다 찻물을 빼는 방식인데 이 방식의 차이도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P.S. 막짤은 제가 가지고있는 서양식 찻잔(+튀르키예식 동제 커피잔)과의 크기비교입니다.
애초에 18세기쯤의 수출자기들은 대부분이 고객인 유럽의 니즈에 맞춰서 나온것임. 역사의 흐름을 모르거나 보고싶은 거만 보면 쉽사리 뇌피셜로 단정하게 됨. 18세기 영국 다구면 대부분이 광저우의 전매상을 거쳐서 수출이 이루어진 거니까 찾아보고 생각해봐라.
애초에 유럽식 차생활은 중국의 차생활과 완~~~전 괴리가 있었다는 말임.
중국 도자기 주문생산이야 역사가 매우 길긴 함. 톱카프궁전에 가면 명나라때 주문해서 코란 구절을 넣은 청화백자 유물도 있을정도니... 근데 그러면 왜 차 우림방식이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안되는거 같은데, 그냥 유럽애들이 자기 꼴리는대로 우리기 시작한건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차대전에 서양차문화전에 나온 기물을 봤는데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해 쓰던 것들은 작았습니다. 마이센을 시작으로 델프트나 세브르에서 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사이즈가 커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당시 유럽으로 간 중국잔용량이 60은 훨씬 넘어 보였으니 오히려 당시 중국도 잔이 그렇게 잔이 작진 않았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ㅇㅇ 서양잔은 점점 커지는것도 같습니다. 여기서도 초창기 터키식 찻잔은 100ml 남짓이었고 지금도 이정도 크기에서 마셔야 제맛이 난다는 노인들이 있긴 하지만, 현재는 150ml 정도가 표준이고, 200ml 넘는 찻잔도 유행하고 있지요. Breakfast cup도 잔 여러번 따르기 귀찮으니까 두컵짜리 찻잔을 만든게 기원이라고 하고
제가 옛날 중국잔은 본 적이 없어서 이 부분에 대해선 아는게 전혀 없지만, 그렇다면 왜 중국잔은 점점 작아졌는지도 궁금해지네요.
시누아즈리라고 다 중국에서 수입을 해 간 건 아닌데다 입에서 입으로 어떻더라라는 식으로 전파되다 보니 중국옷이 그려진 그림중에도 보면 이게 중동옷이야 중국옷이야 싶은 게 있어요. 결국 차도 찻잎에 물을 부어 우린다는 것만이 남고 나머진 재창조되었을 거라고 봅니다.
그춐ㅋㅋㅋㅋㅋㅋ 당시 유럽궁전에서 쓰던 시누아즈리 장식들 보면 헛웃음이 나오는 것들도 있지요. 오스만 제국에서도 시누아즈리 양식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어서 관련 유물들이 많습니다. 말하자면 찻잎을 비싼돈주고 사오긴 했는데 우리는법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나보군요.
다구가 작으면 온도나 우림시간을 조절하기 쉬워서 차에 맞춰서 우림을 최적화하기 좋고, 향미가 증발하기 전에 빠르게 마시기도 좋은데, 이런 점에서 보면 서양에서 마시던 차들은 과거엔 보관기술도 나쁘고 차를 바다로 몇달 이상 운송해야 하기도 하니 향미가 뭉개져서 우림을 섬세하게 할 필요가 적지 않았나 싶은게 영향이 있지 않았나 싶네요. 그리고 중국은 녹차를 주로 마셨을거고, 서양은 거의 홍차였을텐데 아무래도 녹차는 한번에 많이 마시면 속에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에 비해 홍차는 그럴 일이 별로 없어서 그런것도 있는 듯 하고 서양 다구들은 티파티용으로 써서 더 커진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첫문단 일리가 있는거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밀폐포장이 있는것도 아니고, 기록에 따르면 초창기에는 수입하는 다구들을 컨테이너박스에 넣고 찻잎을 사이사이에 빼곡히 채워서 완충재로 썼다고도 하니 부서지고 가루된 차도 많았을 것이고 그거 우려먹으려고 하다보니 된거 같기도 하고...
초기에는 서양에서도 녹차수요가 있었습니다. 보스턴 차사건 당시에 바다에 던져진 차들 절대다수가 무이산차(Bohea tea)였지만 송라차(Singlo tea) 같은 녹차도 제법 수입했지요. 빅토리아시대에만 해도 홍차랑 녹차를 적당히 블랜드해서 먹는게 유행이라 티캐디에 두 칸이 있고 사이에 블랜드볼이 있었습니다. 제가 드는 또 다른 생각은
18세기때 생활의 지혜? 같은 책을 보면 찻잎에서 차 많이 우려먹는 비법같은게 있을만큼 - 4명이서 마신다면 5컵짜리 티팟에 차 5스푼을 넣고 우린다음, 컵에 따르고 남은 찻물위에 그대로 뜨거운 물을 부어 섞어 또 한 잔씩 마실 수 있다 - 찻잎이 비쌌던 것도 이유가 아닐까도 하고...
녹차 홍차 블렌딩은 옛날부터 있었나 보네요. 그런데 녹차를 바다로 몇달씩 운송하면 아무래도 향미가 많이 죽었을 것 같고.. 옛날 서양에서 차를 얼마나 오래 우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짧게 우리면 맛이 떨어지거나 쓰거나 했을 때 버릴 수가 있으니 차의 질이 떨어지면 좀 더 헤프게 되는데 서양식은 아마 찻잎을 한번 우리고 버리지는 않았을 듯 하니 경제성 이유도 클 듯 싶네요.
절대로 한번만 우리지 않았지요. 18세기 영국에서 차에 대한 관세가 최대 120%를 찍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땐 아무나 차 못가져가게 차통에다 열쇠를 채우고, 찻잎을 뺄때마다 저울로 쟤서 재고를 기록하던 시절도 있었죠. 그리고 주인이 우린 찻잎은 잘 말렸다가 재탕해서 하인들이 먹었다고 하고
말씀하신 이유대로 품질이 떨어지는 차(+배송중 가루된 차)는 쓰고 떫은맛이 강하게 나오니 설탕, 우유를 타먹은 이유도 설명이 되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대에 은제 티팟을 최고급으로 쳤는데 그 이유도 설명될거 같고요. 순은은 다공성 금속이라 은다관에다 차 우리면 맛 다 빠져서 밍밍해진다는 분들 글을 여럿 접했는데 쓰고 떫은 차라면 그 맛도 빠질터이니
보통 저렇게 작은건 중국이나 일본이나 고급차 마실때 쓰는 잔 이지 중국이나 일본이나 일상적으로 마시는 찻잔은 서양 찻잔하고 별로 용량차이 없음 일본 유노미나 원래 개완이 잔으로 쓰였던거 생각하면 될 듯 실제로도 중국쪽 유물들 보면 지금 개완으로 쓰이는 사이즈들이 기본 찻잔 사이즈임 - dc App
한국 조선중후기 찻잔으로 쓰인것으로 추정되는 것 들도 찾아보면 보통 100cc 이상 커다란게 기본이고 - dc App
저 작은 잔들이 고급차 용이었구나. 이건 전혀 몰랐네... 그렇다면 의문이 얼추 풀리는거 같네. 당시 유럽애들이 가져가던 찻잔들이 딱히 고급찻잔은 아니었고, 차도 고급은 아니었고, 우리는법은 제대로 못배웠고, 아껴먹어야하니 물은 왕창 들이붓고 그렇게 해서 서양식 차법이 만들어진건가
펄벅이 쓴 대지에서 왕룽의 아내가 왕룽의 아버지한테는 끓인 물을 드렸지만 왕룽에겐 차를 내 주었단 걸 보면 농부가 아침에 마시는 차를 60미리도 안 되는 잔에 몇 번이나 우려마실만큼 한가하진 않을테니 컵 크기는 대충 물컵만했을 수 있겠다 싶네요.
당시 차는 굉장한 사치품이었고, 동아시아는 조주 공부차라고 작은 다관과 찻잔에 우려마시는 방식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잔이 작은것 같아요. 민간에서야 뭐 도자기는 비싸기도 하니 개완이나 호에 입대고 마셨을 거고요. 서양에서는 다기가 커진게 커피의 영향도 있으리라 봅니다. 커피의 대체품으로 차가 수입된 것이니, 커피 마시던 방법으로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