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보성을 가봤는데 홍보 부스에서 세작 이상 라인업이 무료로 제공되고 판매자들이랑 노가리도 깔 수 있다는 것에 감동했음.

당시 보성에 있던 부스 하나는 하동 영농조합에서 온 팀이었는데, 무려 하동 4대 명인 대표작들을 각 사람 앞에 잔 4개씩 놓고 비교하면서 맛보는 개꿀 체험이었음.

녹차 부스 한 5개 돌고 추가로 말차까지 마셔 대니까 카페인 과다로 어지러워져서 시음 그만두고 산책 하다가 집에 옴.

그때 받은 감동을 가지고 있다가, 올해는 하동 축제를 가 봤음.




하동 축제는 보성 축제에 비해서 장소는 좀 안 좋았음.


보성은 일단 장소부터 거의 테마파크화 된 곳이고, 시설물도 많고, 스템프 투어 완수하면 경품도 주고 그랬는데 하동은 걍 박물관 앞 공터에 무대랑, 시장통처럼 체험부스가 죄다 일자로 서 있어서 풍경이나 산책 코스로서는 좀 못했음.

주차도 더 빡세고.


그래도 나는 목적이 무조건 부스만 쑤시고 다니면서 차 마시는 거라 오히려 편한 면도 있었음.




그래서 체험부스를 쭉 둘러보는데 일단 안에 생활한복 입거나 도사 같은 수염 기른 딱 봐도 전통문화 장인처럼 생긴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어떤 다원은 20대 청년들이 물려받거나 창업해서 아직 대학생 티를 못 벗은 사람들이 서 있고,

사업 규모가 크고 TV에 자주 나오던 유명 다원들은 금속이나 한지로 거의 공예품처럼 포장해서 책꽂이 같은 선반에 깔끔하게 진열해 놓은 상품들 앞에 사장님하고 직원들이 나와 있음.



수십 종류가 넘어서 다 못 들어가 보고, 몇 군데만 들렸는데, 그 중 기억에 남아서 한 세트씩 구매한 곳은,




첫 번째, '만수가만든차'

명절에 시골 내려가면 한번씩 인사하는 동네 아저씨랑 동명이인이 자기 이름 걸고 만든 다원이 있어서 좀 웃겼고, 세작 맛을 보니까 난초 향기도 코끝에 살짝 나면서 3탕까지 해도 탄닌감 없이 부드럽게 좋은 데다가, 검색해보니까 여기 사장님이 22년도에 '하동차생산자협의회' 회장에 올랐다는 기사도 나와서 품질도 믿을만하겠다 싶어 한 지관 샀음.

근데 보성에서 경험했던 국산 녹차들은 난초 향미가 나면 코보다는 입에 굴리고 내쉴 때 더 많이 느껴졌던것 같은데, 여기 차는 어째 코에 대면 강렬하고 입 안에서는 꽃향기가 없어지는 대신 굉장히 고소하고 혀에 입자감이 전혀 없이 깔끔했음.





두 번째, '여여병차'

여기는 보이차 처럼 종이로 싼 병차를 전시해놨길래 흑차 만드는 곳인가 했는데 들어가보니 좀 색다르게 한국식 떡차를 중국 병차 형태로 만들어 파는 곳이었음.

주인 아줌마가 차 대접해주는거 마시면서 이야기 좀 들었는데 대략적인 스토리가,


1. 주인아저씨가 떡차에 꽂혀서 청태전을 상품화 하려고 했는데, 청태전은 제조 기계 없이 죄다 가내 수공업으로 만들어서 기계를 쓰려면 처음부터 직접 설계하고 수억원 들여서 커스텀 주문해야 한다는 결과에 절망.


2. 근데 중고시장에 좋은 중국 병차 제조기가 싸게 나옴.


3. 청태전 레시피에서 수분을 조절해서 병차 제조기로 찍어내도 썩지 않고 정상 발효되는 떡차 레시피를 만들겠다고 결심.


4. 300그램이 넘는 초대형 청태전(?) 탄생.


5. PROFIT!


. . .


떡차는 처음 시음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기가 막힘.

한국 떡차랑 중국 보이차는 발효차라는 장르는 공유해도 발효를 주도하는 미생물은 전혀 다르다더니 진짜 캐릭처가 꽤 차이났음.


녹차 특유의 향기는 거의 없는데, 홍차 비슷한 농익은 느낌이 은은하게 나면서 동시에 홍차의 낙엽 냄새는 적고, 흑차같은 한약같은 맛도 없음. 캐릭터가 녹차였을 땐 난초와 단밤에서 발효를 거치면서 국화, 민들레, 클로버 같은 달착지근하고 차분한 냄새로 바뀐 느낌.

그러면서 원료가 하동 차라는걸 다시 상기시켜 주듯이 미세한 고소함도 약간 남아 있고.

꽤 감동적이어서 다음번에는 장흥 다원에 가서 오리지널 청태전도 마셔보고 말겠다고 다짐하게 만듬.


주인 아줌마랑 노가리 까는데, 남편 가리키면서 세상에 상품 개발은 목숨걸고 하면서 팔 생각은 안한다고 꼽주니까 아저씨 슬금슬금 도망가는게 코미디.


지금 근데 한창 세작 만들 시기인데, 축제 참여해야 한다고 다원 놔두고 온 사장님들 보면 몇몇이 심란해 하고 있고, 사모님이나 회계 맡은 사람이 제조 말고 홍보도 중요하다고 열심히 꼽주고 있더랔ㅋㅋㅋㅋㅋㅋㅋㅋ


편 하나 사 와서 집에서 먹어보려고 해괴하는데, 역시 절구에 으깨는 과정이 있어서 그런가 보이차랑은 좀 쪼개지는 느낌이 다름.

송곳으로 풀면 잘 풀리기는 하는데 말 그대로 반죽해 떡 만들어 놔서 그런지 가루가 돼서 날리는 부분이 좀 더 많아서 아까웠음.


떡차는 열에 강해서 아예 물에 푹 끓여먹어도 잡맛이 없다고 해서 실험정신으로 ㄹㅇ로다가 냄비에 한 10분 무식하게 달였는데도 떫거나 비린 맛이 나거나 향미가 죽어버리지 않아서 놀람.


같이 마셔본 아버지가 녹차는 많이 먹으면 위염 증상이 좀 올라왔는데 떡차는 그런게 없다고 좋아하심.


근데 여기 다원은 사장님들이 인터넷 판매를 할 줄 모른다더니 진짜로 네이버든 구글이든 검색해도 결과가 하나도 안 나옴.....

전화로 주문하면 택배는 보내준다던데 명함 받을까 하다가 까먹고 그냥 왔는데 이것 때문에 내년에도 하동을 다시 가야하나 고민 중.



그 밖에는 젊은 청년층들만 있는 부스 한 곳은 녹차 자체보다 블랜딩 티를 미는 곳이었는데, 허브와 꽃의 균형감이 완벽해서 맛은 좋았지만 이미 차에다 십수만원을 태웠고, 좀 편협할 수도 있지만, 좋은 녹차에 뭐 섞는게 약간 뚊까스 생각나고 그래서... 구매는 안함.


또 어느 다원은 녹, 백, 황, 청, 홍, 흑 모든 차를 죄다 먹어볼 수 있길래 백차가 좋으면 살까 해서 마셔봤는데, 풀비린내가 약간 심해서 거름.


그리고 나머지 다원은 무난무난 해서 잘 생각 안남.



암튼 재밌었음.

보성 축제보다 구성이나 장소는 좀 못한데, 오히려 로컬 다원 부스 밀도는 높아서 비교시음하기 좋았다는 느낌?


국산차 관심있고 남부지방 살면 보성이든 하동이든 꼭 축제를 가보는걸 추천함.


세계 차 문화 체험도 있어서 초보자 공부하기에는 이만한 필드가 없는 듯.


근데 주차가 매우 빡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