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잘 꾸려나가던 사업이 원청사의 부도 여파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이 마흔 여섯..올해 나이 마흔 아홉..
젊은 나이도 훨-씬 지난 이 노회한 중년의 아저씨가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2년여 방황을 하다,이리 살수 없다 생각하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라는 각오로
작년 7월 1일부터 공공근로를 시작하였습니다. 일당 31,000원. 처음하는 일이라 매우 힘들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둔치\'와 \'어린이 놀이터\'에서 휴지를 줍는 일입니다. 배운 만큼 배운 사람이 무슨 할 일이 없어, 이런 일까지 하나, 돈이 없어도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노동일을 하면 이것보다는 더 많이 벌 수 있을 것인데, 여러 생각이 났습니다.
첫날 둔치에 갔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담배꽁초, 신문지. 온통 쓰레기, 휴지 천국이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포대자루에 담을 때,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명의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참아야 된다, 몇 개월 꾹참으면서 견디자는 생각을 했지만 마음 깊숙이 아려오는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담배꽁초를 첫날에는 300개 정도는 주웠습니다.
밥을 해먹고, 음식물을 그냥 둔치에 버리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담배꽁초를 버릴 때 자기 혼자는 한 개피이지만, 300명이면, 줍는 사람은 300개피입니다.
작년 여름은 유독 무더웠죠. 35도, 36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둔치를 다니면서, 어리인 놀이터를 다니면서 줍는 휴지 하나 하나는 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휴가지가 어디가 좋은지, 어떤 기업체는 성과급을 몇 백만원을 받았다는 뉴스를 아내와 세명의 아이와 접하면서 도저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못난 남편, 못난 아빠를 만나, 시원한 계곡에도 가지 못하고 이 더운 날씨에 집에서 지내야 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언제는 아내와 두명의 아이들이 아빠가 일하는 곳에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쓰레기 줍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끝까지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어린이 놀이터를 6군데, 둔치를 한 군데 해야 하기 때문에 빨리 다녀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즐겁게 놀았습니다. 아내와 함께 휴지와 쓰레기를 주웠지만 아내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무시하거나, 아빠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날은 모두가 함께 아빠의 일터에서 휴지 줍고, 아이들은 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십니다. 비록 세속 사람들이 보기에 천하고 하찮은 쓰레기 줍고, 휴지 줍는 남편, 아빠이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고맙고,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둔치에 있던 자판기에 가서, 가장 비싸고, 가장 맛있어 보였던 푸른색 마운틴-듀를 두개 뽑아서, 아내와 아이들과 나눠 마셨습니다. 그때 그 맛이..그 시원함이 가슴 절절히 느껴졌던건, 갈증과 더위..그때문만은 아니였을겁니다. 저를 이해해주는 가족들과 함께 땀흘리고 같이 나누어 마신 마운틴듀의 상쾌함~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것 같네요..
경기를 마친 大스포츠스타나..혹은 멋지고 이쁜 연예인들에게서뿐만 아니라..
낮은 곳에서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저희같은 사람에게도 마운틴 듀는 정말 활력을 주는 좋은 음료였습니다..
생명을 허락하시는 그 날까지 가족과 서로 사랑하고, 나누고, 궁팝한 가운데 부요한 삶을 살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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