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묵묵히 플레이하는 게 페더러라는 말도 안되는 글이 올라왔기에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고자 이 글을 올림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는 카펫코트의 전성시절이었음. 1980년에는 테니스 투어대회의 30%가량이 카펫코트에서 열렸음


나브라틸로바는 커리어 동안 카펫 코트에서만 무려 우승 88번과 준우승 38번을 달성했고, 매켄로도 커리어 77우승 중에서 절반이 훨씬 넘는 43번의 우승을 카펫코트에서 이뤄냈음. 베커의 커리어 49번 우승 중에서 26번이 카펫코트이고, 이바니세비치의 커리어 22우승 중에서 14번이 카펫코트 우승임.


카펫 코트는 흔히 인도어 잔디코트에 비유되었고 공이 빠르면서 바운스가 낮게 깔리는 특성 때문에 잔디코트에서 잘하는 서브앤 발리 선수들이 대부분 카펫 코트에서도 잘했음. 하지만 패트릭 라프터처럼 잔디코트는 선호하면서도 카펫코트를 극혐하는 선수도 아주 가끔씩 있었음.


1980년대의 투어파이널은 모두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가든의 즉석 카펫코트에서 열렸음.  일정이 꽉찬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도 열릴 수 있다는 게  바로 카펫코트의 최대 장점임. 카펫을 둘둘말아 운반한 다음에 플로어에 펼치고 평면을 다지는 작업만으로 최단시간동안 인도어 스태디엄에 설치가 가능함. 카펫 철거도 마찬가지로 용이함. 당시 매디슨 스퀘어가든은 투파 기간중에도 NBA와 NHL 경기를 함께 열었을 정도임.


1980년대가 지나 1990년대 후반까지도 인도어 코트라고 하면 대부분 카펫 코트를 말하는 거였음. 1990년대에는 슈투트가르트와 파리, 두개의 마스터스 대회와 투어파이널 및 그랜드슬램컵 등 돈잔치 연말대회들이 모두 카펫 코트에서 열렸음.


1990년대 말부터 투어파이널과 그랜드슬램컵이 모두 인도어 하드코트로 전환됨. 슈투트가르트 마스터스는 마드리드 마스터스로 넘어간 직후 인도어 하드코트로 진행됨. 이렇듯 1990년대 말부터 인도어 카펫코트는 인도어 하드코트에 차츰 밀리며 대회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음.



바로 이 시점에 등장한 선수가 위대한 로저 페더러임. 페더러는 잔디코트에서 가장 잘 치는 선수였음에도 패트릭 라프터를 뺨칠 정도로 카펫 코트에서 처참하게 약했음. 다행히도 그가 결승에 오른 첫번째와 두번째 투어 파이널 대회는 휴스턴의 야외 경기장에서 열렸고 페더러는 두번 모두 우승함


이듬해부터 ATP는 투어파이널 장소로 상하이의 치종 스태디엄과 4년 계약을 맺음. 2005년 치종 스태디엄은 카펫 코트를 깔고 투어파이널을 개최함. 페더러는 결승에 올랐지만 날반디안에게 2-3으로 역스윕 패배를 당함. 마지막 세트는 6:5 서빙포더챔피언쉽 30-0 으로 앞선 상황에서 뒤집힘.


ATP는 상하이 관계자에게 앞으로도 카펫코트에서 투파를 개최하는 경우 계약을 파기할 수도 있다고 경고함. 이듬해부터 치종 스태디엄은 하드코트에서 3년동안 투파를 개최함


최전성기 페더러에게 가장 신경쓰이는 대회는 자국의 바젤에서 열리는 스위스 인도어스와 파리 마스터스였음. 두 대회 모두 설치와 철거의 편리함 때문에 카펫 코트를 고집하고 있었음. 페더러는 세계최강임에도 스위스 인도어스와 파리 마스터스에서 매년 처참한 성적을 기록함


카펫에서 극도로 부진하자 세계 1위 페더러는 페널티를 감수하면서까지 04, 05, 06 이렇게 3년 연속 파리마스터스 대회에 불참함. 슈퍼스타의 연속되는 불참으로 파리마스터스의 권위와 인기가 추락함. 결국 파리 마스터스는 백기를 들고 이듬해 07년부터 하드코트로 전환함


바젤에서 열리는 스위스 인도어스도 마찬가지임. 자국의 슈퍼스타 페더러의 부진이 매년 이어지자 카펫을 버리고 하드코트로 전환하라는 여론이 강하게 형성됨. 스위스 인도어스도 파리와 마찬가지로 07년부터 하드코트로 전환함. 


ATP는 2009년부터 모든 투어 대회에서 카펫코트를 영구 추방함. 별다른 이유 없이 내려진 결정이라서 선수들은 어리둥절했고 일부 선수는 크게 반발함. 배후에 페더러가 있다는 소문만 무성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