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2 - 벨벳
툰드라의 추운 나라 출신인 렌느의 사슴들은 다소 특별한, 보기 드문 사회에 살았다. 이 강건하고도 우아한 동물들은, 아이스 스프라이트라고 불리는, 신비한 마법을 지닌 요정과도 같은 생물들에게 섬김과 보살핌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 아이스 스프라이트들은 포에넘상에서 굉장히 특이한 생물이었다. 그들은 두 다리로 걷는 유일한 지성체였고, 누구도 그들이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순록들에게 집착에 가까운 이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슴들은, 그들의 그런 관심을 그저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요정들은 그들의 마법으로 사슴들에게 음식과 거처, 그 이상의 것을 제공했다. 그들은 포에넘의 건축물 중에서도 아주 세련된, 단순히 툰드라의 혹독한 자연환경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이 다가 아닌, 따스한 전통적 그림들로 예쁘게 꾸며진 건물들이 있는 독특하고 장엄한 도시를 건설해주었다. 실제로 툰드라에 있는 렌느의 수도 도시는, 포에넘의 세계 여행자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장소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보다도 더 중요한 건, 요정들이 제공하는 음식, 황금 귀리는 사슴들에게 그들 고유의 마법을 불어넣어서,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높고 멀리 도약할 수 있게 해주거나, 그들 나라의 추운 날씨의 형세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요정들은 사슴들을 애완동물처럼 대했으나 그들을 정말로 소유하려 하진 않았고, 사슴들은 요정들을 하인처럼 대했으나, 다만 절대 그들을 정말로 부리려고 하진 않았다. 그것은 무척이나 이상한 공생 관계였지만,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일이었다. 요정들은 즐겁고 행복했으며, 사슴들은 특별하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
<툰드라 토너먼트>
툰드라의 수도, 렌느의 도시의 물결 모양 지붕들 위로 눈이 가볍게 내려앉았다. 굵고 어두운 나무로 지어진 건물들과, 문과 창문 여기저기에 그려진 화려한 전통 미술 그림들. 그 주위에 쌓인 희고 깨끗한 눈이 그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앙증맞은 발굽 자국이 난 자갈돌 길이 마치 동화 속 나라 같은 느낌을 더하고 있었다.
그것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뭐, 동화 속 요정들과 아이스 스프라이트는 좀 다르긴 했지만. 포에넘에 세상을 구할 영웅이 필요하다는 소식이 툰드라에 전해졌고, 이 커다란 눈과 뾰족한 귀를 가진 조그맣고, 신비로운 생물들은 그들 각자가 선택한 이들을 온갖 선전과 함께 앞으로 내세웠다. 선택받은 이들도 그걸 마음에 들어하는 듯했다.
온 툰드라에서 가장 건장하고 힘센 순록들이 시합에 참가하기 위해 이곳에 모여들었다. 커다란 뿔, 두꺼운 목 털, 예리한 발굽, 그리고 높은 자존심을 가진 자들, 그들 모두 자신이 토너먼트에서 승리하고 세상을 구할 영웅이 되리라는 확신에 차있었다.
아이스 스프라이트들은, 경기장을 향해 발길을 옮기며 그들만이 알아듣는 부드럽고 가냘픈 언어로 말하면서 도시 곳곳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순수혈통'에 대해 과시하고 다녔다. 사슴들은 각기 구슬과 장신구, 섬세하게 엮인 양털 망토로 꾸몄거나, 금은으로 치장된 뿔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사슴이 하나 있었다. 많은 수의 충성스런 요정들을 대동하고, 은빛 마차를 탄 그녀가 도착했다. 그녀의 매우 기다랗고 광택이 나는, 얼음 같은 보석으로 덮인 푸른색 옷자락이, 그녀의 등을 넘어 마차의 뒤까지 드리워져 그녀가 지나는 길의 눈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벨벳이 여긴 뭐하러 온 거지?" 다른 많은 사슴들이, 다소 언짢아하는 투로 궁금해 했다. 그녀의 과시적인 등장에도 불구하고, 벨벳은 다른 경쟁자들만큼 강인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여리고 연약했으며, 전사다운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경쟁자들보다 명백히 더 뛰어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감이었다(굳이 말하자면, 그들도 자신감이라면 충분했지만).
시합이 시작되었고, 그 첫 종목은 힘을 겨루는 것이었다.
사슴들은 제일 먼저, 누가 가장 많은 통나무가 올라간 썰매를 끌 수 있는지 가려냈다. 가장 힘이 센 사슴은 거의 60개나 되는 통나무를 60피트* 가까이 끌었다!
(*약 18미터_역주)
벨벳의 차례가 됐을 때, 그녀는 마구를 향해 우아하게 껑충거리며 다가갔다. 벨벳이 마구를 한번 끌어보았다. "엑." 벨벳이 점잔을 빼며 힘을 썼다. 너무 무거워. 벨벳이 통나무를 줄여야겠다고 했다. "엑." 맘에 안 들어. 단 하나만 남을 때까지, 통나무가 하나씩 치워졌다. 이거면 되겠네!
무릎을 높이 들면서, 벨벳이 거의 텅 빈 수레를 끌고 경기장 위를 자랑스레 활보했다. 그녀의 요정들이 뛰어오르며 환호했다! 벨벳의 경쟁자들이 분개하며 어이없어 했다.
모든 힘 시합은 비슷하게 진행됐다. 얼어붙은 연못 위로 얼음덩이를 밀어야 할 때, 벨벳은 얼음을 코끝으로 겨우 조금 밀어놓고 큰 인사를 올렸다. 모두가 뒤에 거대한 비석을 매고 가능한한 빠르게 달려야 했을 때, 벨벳은 걸음마 같은 종종걸음으로 심판들이 그녀가 결승선을 지날 때까지 삼십 분을 기다리도록 만들었다.
그런데도, 벨벳은 성난 경쟁자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마무리했다. 그들은 저렇게 형편없이 낙오되면서도 어떻게 저리 당당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시합의 다음 종목이 시작됐다. 격투. 근육 덩어리 수사슴들이 육중한 뿔로 서로를 앞뒤로 내던졌다. 덩치들이 갈라진 발굽으로 서로를 할퀴었다. 몇몇 사슴들은 남다른 강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마법 돌보미로부터 한두 가지의 기교를 배웠고, 얼음과 눈의 원소 마법을 부려 적에게 작은 고드름을 날리거나, 바닥을 얼려 적이 미끄러지게 할 수 있었다. 경기가 치열한 만큼, 오직 제일 강력한 사슴만이 열쇠 수호자의 칭호를 거머쥘 수 있을 것임이 분명했고, 대부분의 사슴들은 키가 크고 위협적인 밤색 수사슴 한 마리가 승자가 되리라 예상했다. 그는 요정들에게 선택받아 겨울이 가장 깊어지는 단 하루, 밤하늘 위로 붉은 썰매를 끄는 비밀스러운 연례 행사를 치르는 8마리의 정예 팀에 속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것은 조금 이상하지만,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 팀에서 가장 힘이 센 사슴은, '블리츠'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블리첸이었다.
그리고 지금, 블리츠는 이제 막 그의 결승 상대를 마주하려는 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따금씩 귀나 꼬리를 까딱이는 것을 빼면 전혀 움직이지 않는 채로, 벨벳은 그녀의 풍만한 목 솜털을 부풀리고, 뿔에 빛을 내고, 털가죽을 매끄럽게 손질하는 요정 몇 마리와 함께 서있었다.
"적당히 해! 이건 싸움이지, 미인 대회가 아니야!" 무대 건너편에서 조바심을 내며, 블리츠가 그의 뒷발굽을 다듬던 요정에게 외쳤다. "넌 이걸 광이라고 낸 거냐?" 그가 요정에게 낮은 소리로 으르렁댔다.
블리츠가 머리와 다리를 높이 올리고, 팬들과 그를 시기하는 상대편들에게 미소지으며 무대 중앙으로 나아갈 때까지도, 벨벳은 계속 꾸물거렸다. 요정들이 큰 양동이 안에 가득찬 귀리를 꺼내어 그녀에게 먹였다. 그러나 평범한 귀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순금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리고 아주 잠깐, 그녀의 뿔 또한 그처럼 빛나는 듯했다.
링의 중앙에 선 그의 앞에서 벨벳이 숨죽이고 있는 관중들에게 키스를 날리고 뽐내며 춤을 추자, 블리츠가 눈을 한 바퀴 굴렸다. 블리츠가 날씬한 암사슴을 무시하며 비웃다가, 날선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벨벳이 하품했다.
벨이 울렸다! 블리츠가 튼튼한 목으로 뿔을 쳐들고,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벨벳은 우아하게, 그리고 수월하게, 각각의 공격을 회피했다.
블리츠가 앞발, 뒷발로 걷어차며 계속해서 진격했지만, 벨벳은 그의 공격을 완벽히 피하면서 관객들을 위한 공연을 벌였다.
"그거밖엔 할 줄 모르나, 공주님? 도망치는 거?" 블리츠가 도발했다.
"질렸니? 그럼 이건 어떠려나..."
벨벳의 뿔이 갑자기 얼음 결정처럼 번쩍거렸다.
그녀는 앞발을 머리 위로 올리고 회전했고, 인상적인 속도로 끊임없이 돌고 돌았다.
"그만해, 이 암컷아! 그만 춤추고 싸우-" 블리츠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회전하는 얼음과 눈의 마법 기둥이 땅에서 솟아나 그를 집어삼켰다!
기둥이 다시 그를 벨벳의 앞으로 끌어왔고, 벨벳은 회전을 멈추고 극적인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정말 터무니없게도, 그 포즈가 얼음 기둥을 깨부수고, 꽁꽁 얼어붙은 블리츠를 드러냈다.
벨벳이 그를 때렸다. 원투! 그를 앞으로 걷어차고, 요정 마법으로 뿔을 빛내며, 얼음 발사체들로 그를 공격하고, 공격하고, 공격하다가 마침내...
그가 쓰러졌다!
"아이! 발굽이 긁혔잖아." 그녀가 슬퍼했다.
관중석이 시끄러워졌다. 그것이 열광인지 질투에 찬 분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라도 벨벳을 기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벨벳의 동료 요정들이 그녀에게 피트 크루*처럼 달려가, 별로 닳지도 않은 털과 모피, 발굽을 두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들은 복싱 챔피언처럼 그녀의 실크 로브를 어깨 위에 덮어주며, 벨벳을 은빛 마차로 호위했다.
(*자동차 경주에서 급유와 타이어 교체 등을 담당하는 작업원들_역주)
그들이 렌느의 열쇠 수호자로서의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그녀를 경기장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동안, 벨벳은 군중들에게 키스를 날렸다.
"잘 있어, 내 친구들! 너흴 위해 세상을 구하러 갈게! 너무 질투하지는 말아! 내가 다녀올 때까지 여기 좀 꾸며놓고. 너한테 말하는 거야, 빅센. 안녀어어어엉"
블리츠가 드디어 의식을 되찾았다. 블리츠의 눈이 초점을 되찾았을 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그녀를 따르는 행렬뿐이었다. 그의 시선이 벨벳의 긴 옷자락을 따라 바닥에서부터 그녀의 머리까지 올라갔다. 벨벳이 뒤돌아서서, 그를 돌아보며 윙크했다.
블리츠가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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