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V - 폼
양들. 하얗고 폭신한 그들은 작은 도시 국가인 목초지 출신이다. 그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 메에에에, 매력적인 마을 메에에에, 역사적 가치가 있는 수도 메에에에 같은 정착지에 거주한다. 양들은 그곳에 그들만의 독특한, 헛간처럼 생긴 작은 집을 짓고 산다. 화창하고 푸른 하늘, 도톰한 구름, 너른 초록 풀밭이 있는, 정말이지 살기 좋은 곳이다. 양들이 수 세대 동안 머물며 이주하지 않아도 됐을 정도로. 그들에게는 아주 잘된 일이다. 이주를 해야 했다면 아마도 정처 없이 떠돌다가 모두 굶어 죽었을 테니. 그게, 목초지는 민주주의 사회이다. 양들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른다. 문제는 누가 의견만 냈다 하면, 그게 뭐든지 간에 모든 양들이 거기에 찬성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반추 동물들은 누구든 앞장을 서는 이가 있다면 그를 따라간다. 아니면 그냥 아무나 따라가든가. 그런 경우도 적지 않다.
양들에 대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양치기 개들과 함께 지낸다는 것이다. 혹자는 포넘에 포식자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아예 먹잇감과 함께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장 대중적인 설은 다른 포식자들이 사라졌던 때, 해를 끼치지 않고 양들 사이에 숨어 살던 순한 늑대들만은 남았고, 그들이 바로 개들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양들이 자기들 중에 늑대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지는 미지수다. 양들이 알든 모르든 늑대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진화했고, 그들의 사냥 본능은 보호 본능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이제 양들의 수호자 역할을 하며, 양들을 위험으로부터... 그리고 양들 자신의 우둔함으로부터 보호한다.
그러나 이도 결국 추측일 뿐이다. 양들은 이 가설을 증명할 수 없었다.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었고.
"정숙! 법정 안의 모두는 정숙하시오!" 총리가 소리쳤다.
법정이라고? 이거 재판인가? 폼은 의아했다. 난 여기가 의사당인 줄 알았는데. 표결이 이뤄지는 곳 말이야.
폼은 정보가 될 만한 것을 찾아 건물 안을 두리번거렸다. 방은 크고 둥글었다. 이 건물은 바로 몇 세대 전 양들이 목초지에 처음 자리를 잡았을 때 지어진 것으로, 목재들은 거의 새것처럼 멀쩡했다. 벽은 흰색, 회색의 벽돌이었고, 천장은 초가지붕이었다. 이것들은 물론 딱히 도움이 되는 정보들은 아니었으나, 폼이 의사당에 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적어도 신기하긴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녀 외의 다른 양들 또한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저 총리가 있는 방향으로 울어대기만 할 뿐이었고, 그것으로는 그녀가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전혀 모르겠어. 그냥 오지 말걸. 난 여기랑 안 어울려. 그녀는 작은 몸, 가느다란 다리와 새로 난 짧은 아기 양털을 가졌으며, 방 안에서 가장 어린 양이었다. 두터운 구름을 닮은, 둥그렇고 건장한 암수 양들 사이의 작고 어린 양. 총리는 덩치가 특히 더 커다랬다. 폼이 보기에 그의 펑퍼짐함은 그의 나선형 뿔보다도 더 인상적이었다. 털을 깎은 지가 좀 된 게 분명했다. 폼은 총리가 저 털 속에 일상적으로 잃어버리는 물건에는 무엇이 있을까 상상하며 웃음을 참았다.
"그럼," 총리가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첫 번째 의제입니다." 그가 자만심으로 가득한,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울음소리가 마침내 잠잠해졌다. 총리가 그의 긴 코 위의 안경을 바로잡으며 연단 위에 놓인 문서를 읽었다. "'양치기 개들의 먹이에 대하여'. 투표할까요?"
아하, 그럼 내가 맞았네. 이거 표결이잖아. 허나 폼은 아직도 궁금했다. 여긴 의사당인데 왜 법정 안의 모두는 정숙하라고 한 걸까? 내가 뭘 모르는 거겠지. 아, 폼. 넌 왜 이리 바보 같은 거니.
폼은 이 의제 때문에 의사당에 왔다. 모든 양들이 그렇듯, 폼은 그녀의 보호를 위해 주어진 네 마리의 소규모 양치기 개 강아지 무리를 갖고 있었다. 개들과 함께 지낸 짧은 기간 동안, 폼은 개들이 그들에게 제공된 풀을 먹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폼은 개들에게 건초나 나뭇잎, 심지어는 꽃 같은 다른 종류의 음식들을 먹여보려고 했지만, 개들은 땅에서 자라는 것에는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데도 어찌 된 영문인지 개들은 잘만 자랐다. 폼은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했고, 결국 개들이 작물을 망쳐놓는 유해 조수인 생쥐와 토끼들을 사냥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개들이 먹지 않고 남긴 식물들은 바싹 마르거나 썩어버렸다. 궁핍한 양들에게 돌아갈 수도 있었던 음식들이. 그것이 그녀가 여기에 온 이유였다.
총리가 말을 이었다. "예, 아시다시피, 우리는 개들에게 알팔파를 먹이로 줘왔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알팔파 대신 클로버를 줘야하는 게 아니냐 하는 이견이 제기되었습니다."
"그건 벌써 줘-" 폼이 말했다.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폼이 입을 다물었다.
그건 벌써 줘봤어요. 폼은 외치고 싶었다. 그건 소용없어요! 하지만 큰 소리로 말할 힘이 나지 않았다.
"그럼 투표를 하겠습니다. 모두 찬성하십니까?"
양들이 일제히 울어댔다. "메에에에에에에에!!!!"
총리에게 망치는 없었지만 그는 양이었다. 그는 연단에 머리를 박으며 투표를 종결했다. 쾅! "그럼 결정됐습니다!" 그가 선언했다.
뭐가 결정됐다는 거야? 전혀 모르겠어!
높고 가는 목소리를 가진 암양 서기가 물었다. "그럼, 클로바로 하는 겅가요, 총리님?"
"네." 총리가 멈칫했다. "어.... 아니요. 우리가 방금 한 게 무슨 투표였죠?"
"알팔팡가 클로방가?" 서기가 대답했다.
"개들 먹이! 아, 그랬죠. 고맙습니다. 투표를 하도록 합시다. 모두 찬성하십니까?"
"메에에에에에에에!!!!" 무리가 긍정했다.
"그럼 결정됐습니다!" 쾅!
"알겠슴니다. 알팔파." 서기가 확인했다.
"네." 총리가 또 멈칫했다. "어.... 아니, 잠시만요. 한 번 더 투표해봅시다. 혹시라는 게 있으니까요..."
총리가 투표를 제대로 진행하는 데까지는 총 네 시간이 걸렸고, 결과적으로는 클로버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폼은 마지막까지도 말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폼은 큰 혼란에 빠진 채 의사당을 나섰다. 그녀는 순한 가축처럼 양떼와 함께 메에에에의 광장에서 시골로, 풀로 덮인 들판 위에 구불구불 난, 나무 펜스가 쳐진 흙길을 따라 이동했다. 그들은 가끔씩 꽃 덩굴이 자란 초가지붕 집들이 모여있는 곳을 지나갔다. 저 멀리에는 언제나 완만한 초록색 언덕이 펼쳐져 있었다.
그들이 멀리 가면 갈수록, 양들이 각자의 마을에 도착함에 따라 양떼가 흩어져갔다. 그리고 폼은 그녀 가족의 초원에 이르러 자신의 강아지인 우프, 러프, 터프트, 퍼프와 반가운 재회를 했다.
왜 그런 의미 없는 투표를 하는 데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걸까? 그녀는 좌절하며 한숨을 쉬었다. 개들은 절대 클로버를 먹지 않을 것이고, 이제 그 작물들은 버려지게 될 것이었다.
뭐라고 말을 했어야지, 이 바보야! 스스로에게 실망한 폼은, 다음에 또 양들이 나쁜 결정을 내리려고 하는 때가 오면 그땐 주저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분명하게 말하겠다고!
갑자기 강아지 하나가 으르렁거렸다. 폼은 가슴이 철렁했다. 네 마리의 강아지 모두 빈터 가장자리의 덤불을 노려봤고, 등의 털을 곤두세우며 이를 드러냈다. 겁에 질린 폼은 어딘가로 숨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떨었다.
강아지들이 달려들었다! 돌진하며 으르렁거리고 멍멍 짖었다. 폼은 깜짝 놀란 비명 소리를 들었다!
폼도 비명을 지르는 순간, 덤불 속에서 그녀의 오빠 우검스가 뛰쳐나왔다! 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남매는 포옹했다.
"폼!" 다리에 쏟아지는 강아지들의 다정한 혀 공격을 버텨가며 우검스가 말했다. 우검스는 그의 양털 속에서 두루마리 한 장을 꺼내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이마나와 산맥의 웜블러드 말 친구들이 보낸 중요한 전언이야.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일이래!"
"죽느냐 사느냐?" 폼은 또 다시 가슴이 철렁했다. 생각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그래서?" 폼은 애가 탔다. "거기 뭐라고 써져있는데?"
"어, 글쎄. 안 읽어봤는데."
"안 읽어봤다고? 왜?"
그가 머뭇거렸다. 답이야 뻔하지 않은가? "못 읽어. 아-아직 투표를 안 했잖아."
폼이 한숨을 쉬었다. 또 의사당으로 가야겠구만.
"정숙! 법정 안의 모두는 정숙하시오!" 연단에 머리를 연거푸 박아가며, 총리가 소리쳤다. "이제 다음 의제를 투표에 부치겠습니다." 총리가 표결의 시작을 알렸다.
"말들이 보낸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긴급한 전언을 읽을까요? 모두 찬성하십니까?"
"메에에에에에에에!!!!" 양떼가 긍정했다.
"좋습니다!" 총리가 결과를 확인했다.
총리가 두루마리를 풀고 큰 소리로 읽는 동안 폼은 숨을 죽였다. 전언은 포식자들의 귀환이 임박했고, 온 세상이 위험에 처했으며, 잡아먹히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막기 위해선 챔피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렸다. 이를 들은 양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충격 받은 양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갑자기 모두 패닉에 빠졌다! 양들이 혼란스럽게 울부짖고 서로를 뛰어넘으며 방 안을 이리저리 달리는 동안, 폼은 도망치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아낼 수 있었다.
"다들 정숙하라니까!" 총리가 연단에 머리를 찧으며 소리질렀다. 쾅 쾅 쾅! 양떼는 총리가 투표를 시작하는 걸 들을 수 있을 만큼은 차분해졌다.
"그럼, 우리가 포넘과 세상의 모든 동물들을 도와야 할까요? 우리가 목초지의 챔피언을 정해야 할까요? 모두 찬성하십니까?"
폼은 시끄러운 메에에에에 소리가 날 것에 대비했으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어떤 소리도. 방 안에는 불편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양들은 모두 땅을 쳐다봤으며, 어디선가 작고 알아 듣기 힘든 웅얼거림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이 겁쟁이들! 원랜 항상 찬성에만 투표했으면서, 정작 세상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땐 외면하다니.
그때 폼은 자기 자신과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마음속 깊은 곳, 그곳의 모든 용기를 끌어모아 크게 외쳤다. "당연히 그래야죠!!!"
"모두폼이챔피언이되는데찬성합니까?" 총리가 불쑥 말했다.
"메에에에에에에에!!!!"
아니, 뭐라고?! 무리는 폼에게로 몰려들어 그녀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목초지의 챔피언 만세! 메에에에! 메에에!"
"잠시만, 기다려 봐요." 폼이 말을 더듬었다. "자-잘못 말했어요! 그러니까, 에이, 도와주지 말죠! 완전 구린 아이디어라고 말하려 했어요!"
양떼는 들은 체도 안 했다. "정말 용감해!" 그들이 소리쳤다. "정말 강해!" 고함을 질러댔다. "우리 중에 제일 강력한 자만이 자기 의견을 주장할 수 있어!" 평소였다면 폼은 이 말이 이상하게 노골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만, 지금 그녀는 자기 속마음을 말한 것을 후회하느라, 그리고 자신이 떠안게 된 과업에 대한 엄청난 공포 때문에 그럴 경황이 없었다.
폼과 강아지들은 목초지의 경계에 서있었다. 아주 무섭고 거대한,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그녀가 들었던 설명들이 폼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폼이 찾아야 한다는 그 열쇠는 대체 뭘까? 폼이 맞서게 될 거란 그 괴물은 대체 뭐고? 내가 어쩌다 여기 휘말린 거지? 폼, 정말 멍청한 짓이었어! 대체 왜 그랬던 거야?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그녀를 공포로 얼어붙게 했다.
강아지들이 그녀를 앞으로 떠밀었다. 개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이 개들은 폼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멍청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들이 폼을 계속 일으켜 세워준다면, 그녀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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