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잊는 방식으로도 살아간다.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흐리게 만든다.
마치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바깥 풍경을 보이지 않게 하듯이.
그러나 어떤 장면들은, 끝내 흐려지지 않는다.

정우에게는 겨울의 한 장면이 그랬다.

서랍장 앞이었다.
방 안은 어수선했고, 누군가의 숨이 무너지는 소리가 있었다.
정우는 두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동시에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분노가 몸을 빌린 순간이었다고, 나중에는 그렇게 변명해보려 했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변명보다 단순했다.

그는 그날, 한 사람의 목을 눌렀다.

그 사실은 그의 손바닥에 남지 않았다. 피부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손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그러나 어떤 흔적은 살갗이 아니라 영혼의 안쪽에 남는 법이었다. 정우는 그날 이후로 자기 손을 오래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씻어도 씻기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걸, 그는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들은 사건 이후 각자의 문장으로 살았다.
누군가는 화를 냈고, 누군가는 침묵했고, 누군가는 법과 사실의 언어를 배웠다.
정우는 오랫동안 회피의 언어를 배웠다.

“나도 흥분했었다.”
“그럴 생각까지는 아니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든 거다.”

그 문장들은 처음에는 방패 같았으나, 시간이 지나자 젖은 종이처럼 손 안에서 찢어졌다. 어느 날 그는 문득 깨달았다.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모두 ‘왜 그랬는가’에 대한 설명일 뿐, 단 한 번도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고백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간은 가끔 자기가 악인이 아니라고 믿기 위해, 악한 행동을 사소하게 줄여 부른다.
정우도 그랬다.
폭력을 “실랑이”라 불렀고, 공포를 “과한 반응”이라 불렀고, 자신의 잔혹함을 “우발적 감정”이라 부르며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언어를 바꾼다고 해서 사건의 무게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돌은 돌이고, 겨울은 겨울이고, 목을 조른 손은 목을 조른 손이었다.

그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뜻밖에도 법정도, 경찰서도, 타인의 비난도 아니었다.
늦은 밤, 컵라면 물을 기다리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였다.



심상치 않은데 ㄷㄷ....


소설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