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양희 작가의 수필 **<방망이 깎는 노인>**이 보여주는 핵심은 '효율성'과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오직 '완벽함'과 '본질'만을 추구하는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입니다.

이를 **'AI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사고의 힘으로만 증명을 완성하려는 수학자'**의 버전으로 각색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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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색] 증명을 깎는 수학자

그 교수님을 처음 뵈었을 때, 나는 그가 이 시대의 유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연구실에는 최신형 워크스테이션이나 고성능 서버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벽면을 가득 채운 칠판과, 닳아 없어진 분필 가루, 그리고 누렇게 바랜 연습장 뭉치들뿐이었다.

나는 그분에게 오래된 난제 하나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으러 갔다. 이미 학계에서는 AI 기반의 정리 증명기(Theorem Prover)나 거대 언어 모델을 이용해 정답에 가까운 경로를 찾아내는 것이 상식이었다. AI에 수식을 입력하면 몇 초 만에 최적의 논리 전개 방식과 보조 정리들을 제안해 준다. 그것이 현대 수학의 '효율'이었다.

하지만 교수님은 달랐다. 그는 내 질문을 듣고는 며칠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찾아간 날, 그는 칠판의 한 구석에서 아주 작은 보조 정리 하나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다.

"교수님, 이 부분은 이미 AI 모델이 최적의 경로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굳이 이렇게 하나하나 손으로 검증하며 시간을 보내실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그 논리 구조를 가져와서 확장하시면 금방 끝날 텐데요."

내 말에 교수님은 칠판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무심하게 대답하셨다.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다른 법이라네."

그는 분필을 들어 수식을 썼다가, 다시 지우개로 지웠다. 그리고는 다시 썼다. 그것은 마치 조각가가 나무의 결을 살피며 아주 조금씩 나무를 깎아내는 모습과 같았다. 그는 단순히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의 '결'을 다듬고 있었다.

나는 답답했다. 밖에서는 이미 수많은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속도가 곧 경쟁력인 시대였다. 나는 몇 번이고 재촉했다. "교수님,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대략적인 흐름이 맞으니 이제 결론으로 넘어가시죠."

그럴 때마다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 집요하게 어느 한 지점을 파고들었다. 그는 논리 전개 과정에서 단 0.1%의 모호함도 허용하지 않았다. AI가 제시하는 '확률적 정답'이나 '패턴에 의한 추론'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에게 수학이란 결과값이 아니라, 빈틈없이 짜여진 사고의 건축물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마침내 교수님이 분필을 내려놓으셨다.

그가 완성한 증명은 내가 AI를 통해 보았던 그 어떤 전개보다 간결했고, 동시에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AI가 제시했던 경로는 복잡한 계산과 방대한 데이터의 나열이었지만, 교수님의 증명은 마치 잘 깎인 단 하나의 조각품처럼 명료했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는 모두 깎여 나가고, 오직 진리라는 핵심만이 남은 상태였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가 깎고 있었던 것은 수식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였다. 도구의 편리함에 기대어 '답'을 빠르게 얻어내는 법을 배운 나는, 정작 '왜 그렇게 되는가'라는 근원적인 희열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는 효율이라는 이름의 칼로 정답을 빠르게 잘라내지 않았다. 대신 무딘 분필 하나로 밤을 지새우며, 느리지만 정직하게 진리를 깎아내고 있었다. 칠판 위에 남겨진 그 정갈한 수식들은, 속도의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사유의 존엄함'에 대한 고집스러운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