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유전체 지도, 인류의 모든 유전적 변이를 담다
‘판게놈(pangenome)’이라 부르는 범유전체 지도를 통해 우리는 개개인이 가진 고유성의 원천이 되는 DNA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Antonio Regalado
2023년 6월 28일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종결됐다는 소식은 벌써 몇 차례나 전해졌지만, 재미있게도 이 프로젝트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처음은 2000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인류가 만든 가장 중요하고 경이로운 지도’라며 ‘인간 유전체 지도의 첫 완성’ 사실을 발표했을 때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1년 후 ‘인간의 유전적 청사진’의 ‘초안’이 공식 출판되었고 인류는 또 한 번 승리를 선언했다. 2003년에는 과학자들이 정확성을 더욱 높였다며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완수’를 내세워 다시 결승선을 밟았다. 그리고 19년이 흘러 2022년, 이번에는 한 유전체의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단 한 자리의 공백 없이 ‘완전한’ 염기 서열을 해독했다는 설명에 덧붙여 과학자들은 재차 승리를 외쳤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마침표를 찍듯이 말이다.
그러나 2023년 5월 10일 과학자들은 47명에 달하는 여러 개인의 DNA를 결합한 새로운 버전의 인간 게놈 지도를 다시 발표했다. 이들은 이 하나의 거대한 유전자 지도책에 아프리카, 아메리카 원주민, 아시아인 등 여러 집단에 걸친 다양한 개인의 DNA가 고루 수록되어 있어 인간의 놀라운 유전적 다양성이 전보다 더 잘 담겨 있다고 말한다.
‘판게놈(pangenome, 범유전체)’이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지도는 10년에 걸쳐 제작되었다. 연구진은 앞으로 전 세계 300명의 DNA 정보를 여기에 추가하면 유전체에 대한 시각이 더욱 확장되어 그에 따라 판게놈 역시 점점 더 방대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캐런 미가(Karen Miga)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크루즈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z, 이하 UCSC) 교수는 “이제 우리는 하나의 인간 유전체 지도만으로는 모든 인류를 적절히 대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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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적인 다양성
사람의 유전체는 서로 비슷하지만, 우리가 저마다 다른 이유는 유전체 내 수십만 곳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많은 경우가 고작 DNA 염기 한 글자 차이에 불과하다. 연구진은 새로운 판게놈을 통해 유전체 다양성을 전보다 더 상세히 관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존 연구에서 관찰할 수 없었던 유전자의 제거, 역위, 중복과 같이 획기적으로 큰 차이뿐만 아니라 주요 변이가 발생한 소위 진화적 핫스폿(hot spot)을 주목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판게놈은 ‘그래프’라는 수학적 개념에 의존한다. 점 잇기를 엄청난 규모로 확장한 모습을 떠올려 보자. 각각의 점은 DNA의 부분부분을 의미한다. 한 사람의 유전체를 그릴 때는 숫자를 지정한 점들을 서로 연결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렇게 연결하다 보면 사람마다 일부 숫자를 건너뛰거나, 다른 숫자를 더하는 등 조금씩 다른 경로로 유전체를 구성하게 된다.
새로운 판게놈의 실용화 방안을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는 더욱 발전된 희소 질환 진단법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보다 과학자들은 판게놈을 통해 이전에 보기 어려웠던 유전체의 ‘암흑 물질’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예를 들어 염색체에는 유전자를 공유하고 교환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위들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부위에 대한 연구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부분의 생물학자 및 의사들은 당분간 2001년에 초안으로 발표된 이후 점차 개선되었던 ‘표준유전체(reference genome)’를 주로 다룰 것이다. 연구자들이 궁금해하는 대부분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유전체에서 찾을 수 있는 데다가 이들의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모두 이 유전체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표준유전체는 다른 사람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해독할 때, 새로운 데이터를 구성하고 읽어 들이기 위한 준거가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표준유전체는 그저 한 가지 예시이므로 일부 사람들의 유전체에 있는 부분이 누락되어 특정 정보가 분석되지 못한 채 무시되는 경우가 있다.
연구자들은 이를 두고 ‘참조 편향’ 혹은 더 간단하게 ‘가로등 효과’라고 부른다. 보지 않는 곳은 안 보이게 된다는 의미다.
이 논문의 책임 저자인 UCSC 계산생물학자 베네딕트 파텐(Benedict Paten)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표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좌표계나 지도처럼 사용하고 유전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끊임없이 참조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하지만 이는 불완전하고 다양성이 부족하다. 우리 인간들을 서로 다르게 만드는 요소, 즉 흥미로운 부분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에는 부족하다”라고 덧붙였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관계자는 새롭게 추가된 유전체 지도를 통해 유전자 연구가 더 ‘공정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전체가 현재의 표준과 다를수록 더 많은 정보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표준유전체는 여러 사람의 DNA 조각이 섞여 있지만, 대부분이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의 DNA로 구성되어 있다.
비즈니스 인큐베이터 제너럴 인셉션(General Inception)의 디애나 처치(Deanna Church) 컨설턴트는 “분석하려는 유전체에 표준유전체에 없는 염기서열이 있으면 분석에서 누락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NIH에서 표준유전체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던 바 있다. 처치는 “사실 ‘인간 유전체’라는 개념 자체가 문제다. 현재 버전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모델이다.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는 타당했지만, 이제는 더 많은 이들을 대표할 수 있는 개선된 모델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퍼즐 맞추기
아직 초안 단계에 있는 판게놈은 두 가지 최신 기술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다. 하나는 매우 긴 DNA를 한 번에 판독하는 일종의 염기서열 분석 기기다. 기존의 염기서열 분석은 대부분 DNA를 200 염기 길이 미만의 작은 조각으로 잘게 쪼갠 다음 읽어낸다. 하지만 퍼시픽 바이오사이언스(Pacific Bioscience)라는 회사에서 만든 새로운 기기는 한 번에 1만 염기를 연달아 판독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처럼 ‘기다란 판독’을 초대형 퍼즐 조각에 빗대어 말하는데, 큰 조각들을 활용하면 염기를 인간 유전체에 실제 존재하는 순서대로 정확하게 배열하기 훨씬 쉬워 진다.
두 번째로 연구자들은 유전체 조립)이라고 부르는 흡사 퍼즐 맞추기 같은 과정에서 계산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각각 60억 쌍의 DNA 염기로 구성된 47개의 유전체를 한 번에 정리하고 비교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10년 넘게 판게놈을 연구해 온 파텐은 “비교적 유명하지 않은 학술지에 게재되었지만, 매우 흥미로운 컴퓨터 과학 기술이 상당히 많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파텐은 비전문가들이 굳이 ‘스파게티 다이어그램’, 즉 DNA 배열을 복잡한 고리와 매듭으로 표시한 데이터 시각화 도구를 직접 보려고 하지 않을 것임을 인정한다. 그보다는 언젠가 연구자들이 판게놈을 인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그 기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를 성공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미래가 실현될지 판단하기에 지금은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다. 처치는 “그렇게 되길 바라지만 힘든 여정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대부분의 기술과 인프라가 그래프보다는 선형 표현(linear representation)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계산생물학자이자 이 프로젝트의 리더 중 한 명인 테네시 대학교(University of Tennessee)의 에릭 개리슨(Erik Garrison) 교수는 한 가지는 확실하다고 말한다. 인간 유전체 해독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이다.
개리슨은 “판게놈은 언제까지나 불완전할 것이며 절대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개개인이 각자 다른 유전체를 보유하기 때문에 이 과정은 무한하다”라고 말한다. 그는 “전 인류와 모든 세대가 각자 고유한 판게놈을 가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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