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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물리학과 노태원 교수에 대한 기사를 나는 한번도 쓴 적이 없다. 물론 내가 기사에서 다루지 않은 과학자가 우리나라에 한두 명이겠는가만, 노 교수가 과거 네이처에 중요 논문을 발표했을 때조차 나는 인터뷰만 하고 기사를 쓰지 못했다. 기사는 내가 아닌 서울대 출입기자의 이름으로 보도됐다. 나중에는 그로부터 “기사 안 써주셔서 고맙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이 기이한 사연에는 과학기사의 엠바고 관행이 관련돼 있다.


1999년 10월 노 교수는 F램 반도체로 활용이 가능한 획기적인 신소재를 개발,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했다. 나는 1998년부터 과학을 담당했는데 당시만 해도 요즘 ‘3대 저널’로 불리는 네이처, 사이언스, 셀에 국내 연구성과가 게재됐다는 신문기사는 1년 내내 3번쯤 될까말까 했다. 이런 저널에 논문을 발표했다고 하면 심심치 않게 1면 기사로 보도됐다. 엘리트 저널에 발표되는 기회가 드물었던 만큼 비중있는 기사로 다루어졌던 것이다.

워낙 빈도가 낮았을 뿐만 아니라, 저널측에서 논문 정보를 미리 제공해주는 서비스도 지금처럼 활발히 이용되지 않아 정작 기사를 쓰기는 어려웠다. 물론 저널에 등록하면 발행시점보다 며칠 일찍 논문 제목과 저자의 이름을 메일로 받아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오직 그뿐이었다. 주어진 제목과 저자이름은 ‘정보’가 아닌 ‘암호’였다. 생각해 보라. 이 저자가 한국인인지 알 수 있는 길은 그저 Kim, Lee, Park 등을 눈 부릅뜨고 찾는 길뿐이었고, 그가 교신저자가 아니면(물론 대부분 아니었다) 소속과 연락처를 알아내기도 어려웠다. 연구자로부터 설명을 듣지 않는다면 논문 제목만 갖고 무슨 기사를 쓸 수 있으랴. 자연히 이런 기사는 과학자 자신이나 주변에서 평소 친분 있는 몇몇 기자에게 논문 게재 사실을 알려 보도되도록 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노 교수의 논문이 나오기 전 나는 주변에서 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른바 특종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F램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고 노 교수의 연구 내용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주변을 통해 파악한 뒤 마지막으로 본인 확인에 들어갔다. 하지만 웬걸, 노 교수는 엠바고 파기를 우려해 극도로 경계를 보였다. 이름부터 낯설기 짝이 없는 ‘비스무스란타늄타이타늄 산화물(BLT)’이라는 신소재에 대해선 끝내 설명을 피했을 뿐 아니라 “엠바고 전 기사가 나가면 곤란하다”며 기사를 쓰지 못하도록 압박했다.

결국 나는 특종을 포기하고 입을 다물기로 약속했고, 노 교수는 며칠 뒤 서울대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노 교수는 엠바고가 파기될까 극도로 예민해져서 원칙대로 새벽 3시 엠바고 해제시점을 절대 지킬 것을 신신당부했다. 사회부 기자들은 듣도 보도 못한 ‘새벽 3시 엠바고’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어기면 큰일난다”는 노 교수의 말에 기사를 초판에는 넣지 않고 밤중에 갈아 넣는 수고를 감수했다. 이후 노 교수는 내가 약속을 지켜 입을 다문 데 대해 고맙다며 밥까지 샀다. 물론 기자 입장에서는 절대 자랑할 일이 아니다.

사실 엠바고란 저널과 기자 사이의 약속이다. 저널이 등록한 기자들에게 미리 논문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저널의 발간 시점까지 보도유예를 요구하는 것이다. 과학기사는 정확해야 하고 취재와 작성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명분 아래 정착한 제도로서, 저널 입장에서는 권위를 유지하는 마케팅 수단이기도 하다.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저널들은 기자들이 엠바고를 위반할 경우 보도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논문 저자가 언론플레이로 엠바고 파기를 유도할 경우 논문 게재에 불이익을 주는 식으로 엠바고를 엄격히 운영한다.

하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 자체가 드물었고 등록기자도 거의 없었던 만큼 엠바고 자체가 큰 의미는 없었다. 저널들이 한국 언론의 엠바고 준수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내에서 과학저널의 엠바고가 정착된 것은 2004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의 중앙일보 엠바고 파기가 결정적인 계기였다. 사실 이 때문에 엠바고가 금과옥조처럼 너무나 강조된 면도 없지 않다.

어쨌든 2000년대 들어 사이언스, 네이처, 셀 등에 한국 저자의 논문 발표가 급증했고, 많은 과학기자들이 저널에 등록하면서 엠바고는 일상적인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간혹 논문 저자들이 취지를 이해 못하고 엠바고 시점 전까지는 절대 취재에 응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경우가 있어 답답하기는 하지만. 심지어 엠바고 시점에 맞춰 새벽 2시나 3시에 보도자료를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지들이 신청한 내용에 대해 심사 받을때 다른곳 가서 썰풀지 마라는거네.
논문심사 해준다는게 자기들이 최초로 그 이론의 증명과 검증을 실어준다는건데 이거
신청해놓고 딴데서 그 신청한 내용에 대해 썰풀면 그 학술단체가 기분이 나쁘니까 리젝 시킬수 있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