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
예전의 내가 가졌던 생각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고
나는 시간에게 쫒기는 입장이었다.

내가 경험하고 이뤘던 모든 것이.
이 세상을 인지하는 내 정신이.

결국 소멸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특이점이라는 개념이
나의 가치관에 들어오게 되었고.

역노화라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나는 시간에게 쫒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쫒아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창작 계열에 뜻이 있었지만.
스스로 봤을 때 형편없는 창작물과
그것을 남들과 비교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열정이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창작 행위를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등장하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모든 인간을 뛰어넘을 순 없지만
결국 언젠가는 모든 인간을 뛰어넘게 될 것이다.

그 사실 자체가, 역설적이게도
나의 창작 욕구를 촉진시켰다.

더 이상 다른 인간들과 비교를 하며
우위를 가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내가 재능이 있건 없건
난 그저 내 창작물에만
몰두하면 되는 것 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이 짧은 시대가.
인간의 창작물이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시대라고 생각하니.

내 잠재력이 튀어나오는 순간과
AGI가 달성되는 순간.

어느쪽이 더 빠를지 경쟁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9개월 정도가 지났다.

나는 내 생각보다도 더
굉장한 잠재력이 있었고

주변의 평가도, 스스로의 판단으로도.
나는 엄청난 성장속도와 개성있는 그림체를 지니게 되었다.

그 때, 느낀 것이 있다.

결국 본인의 능력을 가둬놓는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라는 것을.



물론, 이론적으로는. 나 역시 근미래에는 대체될 것 이다.
물론 상업미술에 한정한다면, 대체된다는 표현이 맞을 것 이다.

시나리오가 뒤틀려서, AI 창작 규제가 걸리더라도
나는 내 예술실력을 바탕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어떤 미래가 다가오더라도
나에게 있어서 이득인 상황 밖에는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생계유지비와 이런저런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평소, 넓고 얇게 잡학다식하던 나에게 있어서
생산 AI의 발전은, 내 가치관과 세계관을 투영할 수 있는
영화나 게임 같은, 높은 노동력과 기술이 필요했던 것들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은 틀림 없었고.

나는 평소 취미로 하던 작곡, 게임 빌드, 소설 등을
AI의 도움을 받아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온전한 완성품으로 한 곳에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일이 잘 안풀리더라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분명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부족한 점이 많으나
전 세계 지표 상으로는 상위권에 속한 나라이므로

구걸을 하거나, 도둑질을 해서라도.
난 과도기를 살아남을 생각이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이유는

시간에 쫒기던 삶에서
시간을 쫒아가는 삶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한했던 기회가 무한하게 확장되는 순간.
우리는 삶에 대한 집착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더 도전적이고, 깊이있는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무조건 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런 미래가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존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