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대체'라는 말은 정식으로 있는 말은 아니고 그냥 내가 재미로 만든 말이다.
노동대체라는 말의 유래는 그냥 같은 말 반복하기 싫어서 급조한 말임.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여 기술적 실업으로 소비가 줄어들고 공황이 오고
어쩌고 저쩌고를 글마다 한문단씩 써서 담론을 이어가기에는 너무 귀찮기도 하거니와
그렇다고 처음 이 얘기를 할 때마다 이걸 길게 말하던지 다큐를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다른 사람이 이거에 대해서 쉽게 말할 때 그냥 노동대체라고 하면 편해지기 때문에
특게 시절에 특게이들한테 후보군 만들어놓고 노동대체가 가장 좋다는 평을 받아서 이걸로 정했음.
그러니까 사전에 노동대체라고 칠 필요는 없고 노동대체의 정의는 간단히 말해서
'기술진보로 인해 노동력이 대체되고 한동안 고용 시장에서의 대규모 감원이 이어지는 현상'이라고 보면 됨.
나는 이 과도기적 현상에 대해서 사람들과 말하고 싶었음.

맨처음 내가 의도한 노동대체의 정의는
"자궁이 아닌 자동화된 공장에서 자동으로 생산되는,
신체적으로나 지능적으로나 인간보다 진보하고 능률이 좋은 인공지능 로봇들이
고도산업사회에서 발생하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해주기 이전의 과도기"이었음.


-1-

노동대체 속도가 인간의 재교육 속도보다 빨라서
새로운 일자리마저도 인간이 적응할 즈음에 대체된다면
노동의욕을 연거푸 가질 인간이 몇이나 되겠나??
4차 산업혁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예전에도 러다이트 운동이 있었지만
사라진 일자리보다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이 생겼다"
라며 예전에도 그러했으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논리를 사용한다.
이건 특이점 이론의 논리와도 똑같지만 이럴 경우 문제점이
과거와 다른 변수가 존재하는데도 외면하기 쉽다는 것이다.
2005년의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 발전 논리대로면
2015년에 수익성이 부족해서 무어의 법칙이 깨지리라고는 생각치 못했을 것이다.
과거의 산업혁명과 지금의 다른 점은 인공지능의 학습속도다.
과거에는 인간이 기계를 조종했고 기계는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공지능이 인간 전체의 판단력보다도 우월할 수 있겠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의문이 든다.



-2-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말이 있다.
가령, 내가 노동대체로 일자리를 잃었다고 치자.
정부가 재교육 훈련 지원해주길래 열심히 노력해서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는데
하필 일한지 3개월 만에 또다시 노동대체가 되면
새로이 다른 일자리 교육을 받아야 한다.
아니면 내가 대학 4학년을 마치고 취업을 했는데
하필 그 직업이 기술진보로 인해 사양직업이 됐다.
그러면 잃어버린 4년이 되는 것인데 이건 순전히 개인이 불운을 부담해야 한다.



-3-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기 전까지는 노동대체는 과도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과도기는 짧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과도기가 길어도 문제점이 있는 게
인간이 늙으면 재교육할 의지나 두뇌가 부족해진다.
문제는 과도기가 짧으려면 기술혁신 속도도 빨라야 하지만
원활한 노동대체 시스템 탓에 일자리도 금방금방 잃게 된다.
정말 어떠한 '프로토타입 도시'를 만들어서 거기서만 하이테크를 적용하다가 강인공지능이 나올 때
전세계 상용화를 하면 일자리 대란도 없고 좋겠지만
박리다매 식으로 돈을 버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그저 정부 재원으로 어떤 '기술진보 전용도시'로
한정된 도시 전체를 실험장처럼 운영하는 건 너무 돈이 들 것 같다.
결국 노동대체는 누구나 겪어야 할 미래의 과도기다.



-4-
최근에도 은행원과 톨게이트 노동자 분들이 파업을 시도했으나
디지털화에 길들여진 서비스 이용객들은 저 사람들도 대체하라고 하면서
파업이 흐지부지되던지 파업으로 인한 불편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제자리에서 일하는 업무의 미래는 저런 상황과 다 비슷하게 전개될 것이다.
오히려 이동하면서 직접 일해야 하는 노가다나 택배기사는 안전하다.



-5-
그건 그렇고
어쨌든 일자리를 잃더라도 다시 일을 구하려는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
노동해방이 아니기에 누군가는 계속 시스템의 톱니바퀴 역할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톱니바퀴가 되기 위해 노력했는데도 인공지능에 의해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자기가 하는 노동이 그저 소꿉장난 취급을 받으며 또다시 대체되면
누가 공들여서 톱니바퀴 역할을 자임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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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경우에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여유를 보장해줘야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도전할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정도로 대체 속도가 빠르다면 생산성도 높아서
같은 기본소득으로도 저렴한 물가로 많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유연한 노동대체와 기술진보 속도에 따라 기본소득의 시의적절성이 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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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양극화 해소 목적으로 실시하면서 노동대체는 외면한다면
기본소득이 가진 본연적 비효율을 커버할 길이 없다.
<조건없는 기본소득>은 정말 불처럼 다루기 힘들어서
신중에 신중을 기울이며 적용해야 할 제도다.
당장 국민이 원한다면 해야겠지만 잘못된 선택은 되돌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