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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또각.

구시대적인 칠판과 분필이 마찰음을 내는 소리.

교수는 팔로 능숙하게 ‘인간학’이라고 적은 후에 분필을 내려놓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학생들. 저는 이번 학기 인간학에 대해 강연하게 된 J 교수입니다.”



일동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강의실 내에는 오로지 통신기에서 나오는 옅은 전자음만 울려 퍼졌다.



“먼저, 온라인 수업이 아닌 이런 아날로그 수업인 것이 불편하셨을 텐데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큼큼하며 헛기침을 내보이는 교수.

그런 작위적인 모습에 벌써 이번 학기 수업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이번 시간에는 정규 수업이 아닌 간단하게 인간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 아니, 사람은 무엇인가에 대해 정의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해하셨으면 대답을 하시기 바랍니다.”



“네….”



“그 전에 앞서, 여러분은 이런 칠판과 교탁, 그리고 대화로 하는 수업이 익숙지 않겠지요. 

이 방식은 BTS(Before Technological Singularity) 30년대, 그러니까 서기 2000년대에 주로 사용하던 방식입니다. 

그 시절에는 이러한 아날로그적인 도구를 사용하여 주로 학습하고는 했죠.”



멍하니 녹색 칠판을 바라보던 중 손목으로 알림음이 들려왔다.



- 뭐하냐? 이 교수 수업 계속 들을 거야? 시간 아까워 죽을 것 같은데.


- 그래도 이거 이번에 무조건 들어야 하는데….


- 아니, 이건 아니지. 무슨 홀로그램 오프라인 강의 수업에 내용도 답이 없는데. 걍 수강취소 하자. 난 먼저 간다 ㅂㅂ.



“…인 것입니다. 거기, 2번째 줄 왼쪽 세 번째 학생.”



이크, 나를 부른 건가.

성대를 가다듬었다. 말을 하는 건 익숙하지 않은데.



“Qu'est-ce qu'il y a?”



교수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학생, 우리가 수업하는 현재 지역이 어디죠? Area 32, 그러니까, 한국어로 대답하시길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어차피 무슨 상관인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전부 직역으로 해석될 텐데.



강의 정보에 말도 안 되는 꼰대 교수라고 적혀있던 것이 문득 기억났다. 

말 그대로 구시대적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인걸.



“좋습니다. 학생… 그러니까 code: ENU-0321은 사람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사람이라. 그다지 별생각은 없었다.

그냥 주변에 널린 돌멩이처럼 존재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교수는 좋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으니 좋게 말해야겠지.



“…기술 발전의 기틀이자, 특이점을 일깨운 시초라고 생각합니다.”



“의외군요. 요즘 세상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학생이 있다니. 거기, 방금 대답한 학생 뒤로 딴짓하는 학생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다시 들리는 지직거리는 미묘한 소리.



“제 수업에서 DSP 통신을 이용한 대화는 허용하지 않습니다. 직접 대화를 사용하세요.”



“…죄송합니다, 교수님. 사람들은 이기적이며 나약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아니, 아마도 다른 이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교수는 내려놓았던 분필을 다시 들어 인간이라고 크게 적었다.



“사람들은 어리석기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컴퓨터라는 시초를 만들었고, 

나약했기에 그들의 유기적인 몸을 덧댈 재료를 연마했으며, 이기적이기에 그만큼 경쟁적일 수 있었습니다.”



인간 아래에 적히는 특이점이라는 단어.



“그렇기에 기술적 특이점이 탄생할 수 있었죠. 

정말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먹을 꽉 쥔 그 모습은 언뜻 보면 자긍심이 깃들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웃기게도, 나 역시도 그 교수에게 조금은 감화되어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우리는 그들의 잘못된 역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본받을 점은 배워서 그들의 잘못을 따라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학에 대한 의의이자 여러분들이 이번 학기에 배울 내용입니다.”



말하는 것만 봐서는 인간 그 자체인데.

그 열정에 알 수 없는 경외심이 들었다.



“그럼…, 이번 시간은 짧게 마치고 다음 시간까지 인간 보존원에 들러서 사람과의 대화를 마친 뒤의 경험을 레포트로 써서 작성하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 아, 뭔 첫 시간부터 과제야 하…. 진짜 이거 들을 거야?


“…응.”


- 뭐야, 너 미쳤냐? 뭘 스피커 써서 대화하고 ㅈㄹ이야? 이거 또 한 명 인간병 도졌네.


“그런 건 아닌데. 교수 말 들으니까 가슴이 뜨거워지더라.”


- 병신아, 심장 쪽 앰프가 역류해서 저항이 터진 거지 뭔…. 됐다. 그럼 나도 그냥 들어야지. 보존원은 언제 가게?


“글쎄, 지금 바로 갈까?”


- 그럼 바로 가자.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교수와 달리 옆에 있는 친구의 몸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긴, 당연한 얘기지.



로봇에게서 어떻게 유기물처럼 따듯한 온기를 느낄 수 있겠어?



“인간이라…,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이었나.”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