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든 최고의 현자들은 삶에 대해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 삶이란 의미없는 것." -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은 태어나기 전에 존재한 사회체계가 규정한 삶의 의미를 스스로 규정한 것처럼 착각하고 맹종하며 살아간다.
제한시간 내에 취업하고 결혼하고 육아하고 유산을 물려주는 생활, 이전의 조상들이 이미 해왔던 삶을 되풀이한다.
물론 문명 이전의 조상들은 주말이라는 개념도 없이 평생을 일하며 살았을 것이다.
허나 멀리서 보면 결국 조상이나 후손이나 생애 동안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
또한 인간은 공통된 생의 의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한정된 자리를 놓고 끝없이 경쟁한다.
목표달성 이전까지는 자신보다 아래에 속한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의 현재 서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을 위로한다.
세상에는 다들 한번 꿈꾸다가 말았을 찬란한 로망을 굉장히 빨리 이뤄낸 사람도 있다.
젊은 나이에 왕관을 쓴 이 시대의 우상은 깊은 존경을 받지만 정작 본인은 황당하게도 갑자기 공허한 감정에 사로잡혀 길을 잃는다.
이윽고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방황한다. 그리고 한 가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렇게 사는 건 너무 쓸쓸하고 우울한데, 앞으로 어쩌지?"
꿈을 실현한 사람은 길어봐야 1개월가량의 가슴 뛰는 설렘을 머금고 뱉어내기 때문이다. 이내 떨림으로 뒤바뀌고 또다시 희망이라는 착각을 꿔야 한다.
남들은 쉬이 누릴 수 없는 이 낯선 현실에 감사해하며 이대로 평생 행복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현실이 그러하다.
결국 인간은 몇 없는 감동의 순간들을 위해 평생 작고 큰 목표들을 세워놓고 자기가 각오한 고통을 극복해야 할 운명을 짊어진 것이다.
사람은 목표에 집착하면 불안하고, 목표 없이 지내자니 삶의 의미를 상실해 남은 생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을 못 이겨 마음의 동굴로 숨는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내 심연에 터를 잡은 불안과 고독, 절망과 허무는 평생 이 굴레에 속박될 것이 참으로 슬프다며 깊은 회의에 빠지도록 한다.
이런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위험한 자극과 짐승 본연의 욕구에 기대어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자신과 마주친다.
반면 사후세계가 아닌 지상천국을 보장하는 기술적 특이점이라는 요술램프는 특이점주의자에게 조금은 다른 허무를 건네준다.
내가 어떤 경력을 쌓아도 특이점 이전에 죽는다면 개죽음이고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특이점이 오면 무가치한 행위가 된다.
따라서 기술적 특이점 앞에서는 성과를 위한 노력이 불필요하기에 '이번 생에는 도대체 뭘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나는 특이점주의로 인해 처음에 굉장한 허무함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미래라는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로 다가와 홀가분했다.
삶에는 큰 의미가 없다. 누가 이 레이스를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생존과 번식을 통해 조상들의 유전자를 후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정거장에 불과하다.
'결코 허무하지 않고 삶에는 분명 숨겨진 의미가 있다'는 미신을 증명하려는 건 갈증을 해소하고자 바닷물을 마시는 행위와도 같다.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건 허무한 삶을 잠시 외면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메마른 진실을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인생은 유쾌한 게임이 된다.
기술적 특이점이 왔을 때 이전의 모든 과업이 통째로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믿는다면 오히려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능동적 허무주의 덕분에 이전에 있었던 절대가치의 지배에서 빠져나오게 되므로 당당하게 나만의 가치를 증명하며 살아갈 개인정비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적 특이점 목도'가 인생의 주된 목표이기에 특이점 이전까지 정답이 없는 삶이 아닌 정답이 많아지는 삶을 소유하게 된다.
타인을 의식하며 눈치를 볼 필요도, 늦은 나이를 신경 쓸 필요도, 물질적 가치에 휘둘릴 필요도 없이,
전통적인 사회질서의 틀에서 벗어나 어떤 상황이든 낙관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나만의 가치를 발견하고 나만의 삶의 의미를 그것에 부여하면서 세상은 내게 전쟁터가 아닌 놀이터로 새롭게 다가온다.
기술적 특이점을 생각할 때마다 다시금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신념과 용기를 얻고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이 기술적 특이점이 도래하기까지 특이점주의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 아니겠는가?
태어날 때부터 예고된 삶의 허무와 특이점까지 예정된 삶의 허무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다면,
불안과 고독을 삶의 진정한 벗으로 인정하면서 역설적으로 집착에서의 해방감을 느끼고 내가 정한 코스에 흠뻑 빠져들 각오가 됐다면,
어쩌다 기술적 특이점주의를 알게 됐다는 건 결코 후회스러운 일이 아니라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할 절호의 기회다.
게다가 생명의 소멸은 삶의 근원적인 고통을 잊게 해줄 최후의 위로이기에 굳이 먼저 앞당길 필요도 없이 되려 주어진 삶을 즐길 수 있다.
이렇게 세상을 바라본다면 혹여나 당신이 불행하게 기술적 특이점을 보지 못하고 죽더라도 생전에 미련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다.
남은 건 오로지 우리를 향한 냉소와 낙인을 극복하는 일이다. 묵묵히 해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한 특이점주의자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스티브잡스 같은 사람은 주위에서 아무리 개지랄 염병 난리를 떨고 지가세운 회사에서 짤랐을때에도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에겐 자기가 믿는 것을 의심치 않았거든 세상 모든 인간사가 그렇다 세상을 바꾸려면 기존에 철저하게 자리잡은 고정관념과 맞서고 전쟁하며 그걸을 깨뜨려야 하는데 1%도 채 되지 않는 사람들이 기존 관념을 파괴하고 세상을 바꾼다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본질,근원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하는데 대부분은 이런 시각 자체가 없다 그렇기에 부러지는거다
용기보단 돈이 필요하고, 돈을 얻을 수단이 필요하다 용기는 생존 수단의 확보 다음에 오는 거지
띵글 개추함
기술적 특이점으로 인해 모든 행위가 무가치해진 환경 속에서 자신 스스로 무언가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난 특이점 이후 두 가지 시나리오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먼저 첫 번째는 정부가 인간에게 인공지능이 생산해내는 모든 상품을 아무런 대가 없이 무료로 증정하는 경우. 이 경우에 모든 인간이 벌이는 행위들은,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말한 권력 행위(진짜 사람의 생존에 영향을 끼치는, 현재 노동과 같은 행위)가 아닌 대리 행위(사람의 생존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행위)로 전락하고 말거라 생각해.
그건 특이점 이후의 이야기고 특이점 이전에는 특이점을 강하게 믿을수록 오히려 자유로워져서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의미가 아닌 자신에게 맞는 삶의 의미를 추구할 기회가 생겼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임.
두 번째로는 정부가 인간들을 계급화해서(정부에 대한 충성도가 대표적인 계급의 조건이 될 수 있겠지) 차등적으로 인공지능이 생산한 자원을 배분하는 경우. 이 경우 겉으로 권력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기존의 노동처럼 그 결과물이 자율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정부라는 타인에 의해 타율적으로 획득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이 정부의 노예로 전락해버릴거라 생각해.
그치 나도 요새 특이점을 알게 되면서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추구해볼 시간을 가지고 있어
근데 이게 생각해보면 해볼수록 특이점 이후의 삶이 너무나도 공허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비추어져버릴 것만 같단 말이야. 더 이상 아무것도 노력할 필요 없이 쉽게 얻어낼 수 있는 세상 속에서, 인간은 모든 노동을 포기하고 wall-e에 나오는 하루종일 게임기 위에 누워서 놀고 먹기만 하는 사람처럼 전락해버리지 않을지.
정부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잘 지켜야 함.
개인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힘은 개개인이 가지는 생산 능력을 통해 정부에게 세금을 제공함으로써 정부의 목줄을 직접적으로 쥐고 있음으로써 나온다고 생각해. 근데 특이점이 와서 인간이 더 이상 아무런 노동도 할 수 없다면 자유민주주의는 붕괴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난 개인적으로 시나리오 2로 전락해버릴 가능성이 너무 높다고 생각해. 정부의 역할은 인공지능이 담당하겠지. 그들은 단지 인간을 자신을 낳아준 자식보다는 아무런 생산적 가치 없이 부양의 대상으로만 전락해버린 애물단지로 볼테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개인적으로 너가 쓴 글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과 처해있는 사고적 딜레마와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너의 생각이 너무나도 듣고 싶어
일단 투표권이 모든 성인에게 부여되는 체제가 유지되는 한, 정권을 국민이 선택할 수 있기에 견제할 수 있다고 봄. 범죄자로 전락시키지 않고 시민들의 역량을 활용하여 소프트파워를 육성시키고 고급인력을 계속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면 국익 측면에서도 다양한 분배정책이 정착될 것이라고 봄. 다만 그 목적이 시민을 생산적인 분야 위주로 유도하는 것이어야 함.
활력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건 그 사회 구성원들의 역량에 달렸다고 생각함. 정말 다들 애완동물처럼 받아먹는 데에만 급급한 존재로 전락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제 물질적인 풍요는 충족되었으니 상위 차원에서의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구성원들이 많아진다면 뜻깊은 창조행위가 많아지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봄.
솔직히 특이점 이후의 삶에 대해 논하는건 너무 추상적이고 감조차 잡을 수 없을거 같아서 논하기 힘든거 같아. 확실한건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너와 나는 특이점 이후 도래할 물질적 가치에 대해서는 별로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지 않는거 같긴 해.
보다 현재 삶과 관련된 구체적인 질문을 하자면, 현재 너가 정한 삶의 의미가 있어? 아니면 모든 것에 대해 초연해진 상태야? 나는 현재 후자인 거 같아. 모든 물질적인 가치가 무가치해 보이는 상태. 이걸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삶의 목표를 잃고 방황한다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모든 욕망을 비움으로써 오히려 내 내면은 꽉 찬 느낌을 받는 거 같아. 아무튼 너는 현재 특이점 이전의 현재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곧 모든 물질적 가치가 붕괴해버릴 것을 알지만, 당장 현재는 그 가치가 실재하고 있는 현재의 사회에 대해.
특이점이 2045년에 올 수도 있고 그보다 늦게 올 수도 있지만 특이점이 온다고 믿는다면 허무함에 빠질 필요없이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고 자유롭게 정진할 수 있는 인생의 자투리 시간이 생긴 셈 치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싶어서 써봄.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건 아님.
삶의 의미라는 게 자기 적성에 맞아서 몰입할 수 있고 성취감에 젖어서 뛰어드는 거면 충분하다고 봄. 위인전에 나올 정도로 숭고한 가치에 뛰어들 필요는 없음.
특이점이 오면 필연적으로 우리의 뇌도 업그레이드하게 될텐데,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욕구를 미래의 업그레이드 된 뇌도 가지게 될까?
특이점 이후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음...
어차피 죽음 앞에서 모든 게 무가치한 지금보다는 의미 있지 않을까. 내가 역사에 이름을 남겨봤자 무슨 의미가 있어. 100년 뒤에 내 존재는 소멸하는게 확정인데. 근데 이 근본적인 의문이자 온갖 철학적 담론을 쏟아내던 인간의 한계가 특이점 이후에는 박살이 남.
글 잘쓰네
ㄳ
글 씨발 존나 잘쓰네 손바닥 아플정도로 박수 쳤다 ㄹㅇ글 쓸 생각없냐? 나는 이 정도면 먹히는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ㄳ
혹시 블로그나 뭐 따로 홈페이지 하는거있음? 구독좀 해놓자
당분간 글 자체를 안 쓸 거고 다시 쓰더라도 12월에 올 것 같아. 지금 따로 어디다가 글을 적고 있는 곳은 없음. 이건 그냥 내 평소 생각 써본 거고 뭐 이게 그렇게 특별한 내용은 아니잖아? 공감해준 거 같아서 감사할 따름임.
다른 갤러리에서 놀고 있었는데 호평해줘서 고맙다. 그럼 ㅂㅂ
또 보러 왔다. 너무 좋은 글이다...진짜 내 가슴 깊은곳에 오래도록 자리잡을 얼마 안되는 글 중 하나다.
또 보러왔다 여전히 잘썻다 시부레... - dc App
물개냐?
이 글을 내 일기장에다가 복사해놓고 생각날때마다 보면서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나는 사회가 정해놓은 틀, 절대적 가치의 노예야. 마음의 감옥에 갇혔어
나같은 나이먹은 무직 모쏠아다는 이글봐도 의미없겠지.. 슬프다 되돌리고싶다
쿠르츠게작트 낙관적 허무주의가 생각나
2030년에서 2070년 사이에 기술적 특이점으로 노동해방, 노화질병극복, 가상현실 등의 기술이 지위나 능력에 관계없이 제공되서 유토피아가 펼쳐질거라 믿는 특붕이들에게 아주 좋은 글인듯 스토아 철학이 생각나기도 한다
특이점주의자에게는 특이점 목도가 인생의 최고가치이기 때문에 특이점 이전까지 정답이 없는 삶이 아닌 정답이 많아지는 삶을 살게 된다. 남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늦은 나이를 신경 쓸 필요도, 물질적 잣대에 휘둘릴 필요도 없이,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으로, 기존 사회질서의 틀에서 벗어나 두 번째 삶을 사는 것처럼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정해놓고 무아지경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나만의 가치를 발견하고 나만의 의미를 그것에 부여하면서 세상은 내게 전쟁터가 아닌 놀이터로 새롭게 다가온다. 기술적 특이점을 생각할 때마다 다시금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신념과 용기를 얻고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
아주 인상적이고 공감하는 문단이었음. 좋은 글 개추
나도 특이점이 오면 내가 한 건 다 뭐가 되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냥 허무를 받아들이고 내가 진짜 원하는걸 해야겠다. 고맙다
똥글
븅신
븅신
게이야 글 좋다 이기 거리길래 심상치않다고 느꼇는데 역시는 역시군
몇살임?
그럼 이제 전재산 tqqq에 박아도 되겠지?
개추
인생 무의미를 논하다가 특이점주의가 왜 나오게 된건가요?
우선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도 제가 특이점을 처음 접했을 때가 마침 미래를 걱정하고 인생을 허무하게 여기고 있을 때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인생 자체의 본질적인 허무함, 그리고 사는 게 힘들어도 삶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고 버텨가는 우리들에게 느닷없이 특이점주의가 주는 허무함, 이 두 가지 허무함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허무함을 극복하면 비로소 우리의 정신이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해서요. 처음 특이점을 접하고 같은 고민을 하는 미래의 특붕이들을 위해서 글을 썼어요.
특이점주의라는 단어의 의미가 미래에는 인생 무의미, 허무주의가 막연히 해결될거라는 맹목적인 희망(과격한 표현해서 ㅈㅅ합니다)인것 같은데 맞나요? 제가 제대로 이해한건지 아닌건지 잘모르겠어서요
드라마를 보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근데 드라마를 보기 시작할 때부터 엔딩을 알고 본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요? 특이점주의는 인생에 대한 스포일러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살아있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특이점이 오고 마는데 그렇다면 특이점 오기 전까지의 행위들이 쓸모없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거죠.
허무주의에 굴복하면 정해진 질서와 편견들 속에서 수동적으로 살게 되지만 허무주의를 활용할 용기가 있다면 삶의 의미를 남이 아닌 내가 만들어가는 삶을 살아보는 겁니다. 특이점이 온다면 결국 누구나 이런 관문을 거쳐가야 할 것이고 그런 점에서 특이점주의자들은 먼저 돌파할 수 있는 기회를 접한 셈이죠. 특이점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허무함을 위로하고자 했어요.
인생은 고독하고 불안하고 생로병사 속에서 고통을 극복해가는 과정이지만 평상시 우리는 이 진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저 진실을 인정하기에는 강한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죠. 특이점주의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예고된 허무주의와 특이점 직전까지 예정된 허무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운명을 지닌 겁니다.
좋은글
어디 한대 맞은 느낌이다.. 너 같은 친구랑 같이 토론하고 얘기도하고 조언도 얻고싶네 정말 좋은 글이였다 잘보고 간다
이분이 찐 트라야구나
와 미쳣다
이런 기초적이고 편향적인 글이 비판없이 빨리는거 보면 특갤은 저지능거지갤이 맞다 ㅇㅇ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붕이가 저지능거지라는분 갤로그 차단사유가 어떻게 아동청소년음란물 ㅋㅋㅋㅋ
그럼 니가 이것보다 뛰어난 글을 생산하고 나서 까 병신아 타인에게 가치 선물은 못하면서 남까내리기먼저 하는거 보면 니 인격의 키가 얼마나 좃만한지 가늠이 된다
제 인생을 다시 돌아보고 갑니다. 좋은글 감사요
오오 도움이 됐다니 감사합니다
나도 ai 실감하고 극도로 허무해졌다가 충만해짐 - dc App
너의 글과 댓토론보고 아직 허무함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많기에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음 자유로움 뒤에 무슨 감정이 올지도 좀 궁금하고 - dc App
허무함조차 느끼지 않은 사람이라도 딱히 학술적 위계상의 낮은 단계라고도 생각 안하기로 했다 여기 있으면 너무 교만해져 - dc App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부처의 해탈이 이것인데 과학이 종교가하는 역할까지 해버리노
이게 특이점 갤러리 베스트글임.
한 줄 요약: 인간의 유기체적인 한계(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제도적, 철학적 등을)를 초월 할 수 있다.
이불킥글ㅋㅋ
다 동의함 나랑 비슷하게 생각 흐름이 흘러갔네
나도 개인적인 이유로 인간의 유기체적 한계에 환멸감을 깊게 가지고 잇는 상태인데 어서 극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음 그럼 더이상 위버멘쉬를 외우며 애쓰지 않아도 되겟지
야너도?
죽어도 오메가 포인트로 살아날거라 걱정 안함 다만 나는 22세기를 보고 죽는게 내 목표임 그냥 어케든 살아서 미래가 변하는걸 직접 목격하고 경험하고 싶음 - dc App
지금 뭘 하건 특이점 온 후엔 다 의미 없음 그냥 즐기면 됨 ㅋㅋ 안 오거나 망해서 디스토피아, 죽음이라고 해도 유한한 삶 속에서 뭘 이뤘건 다 부질없음 애초에 그냥 즐기면 됨
안타까운건 즐기는것도 조검충족이되야 할텐데 예를들어 불의에 사고로 장애입은 경우 연애못해보고 나이든사람 등등 인생을 즐기기 불다능하고 욕구불만으로 사는경우인듯 자기만 빼고 남들은 다 건강하고 사랑나누며 살테니
무신론자 혹은 불가지론자의 허무주의적 인생관 중 하나일 뿐, 기독교인이라면 공감하기 어려운 글
내가 쓰려던 댓글인데 유신론에 마음이 조금 있는 사람이면 다른 방향으로 사고해보는 것도 좋을듯
기독교가 특이점이랑 양립이 가능하냐? 신기하네
걍 태양풍 크게 불어서 다 꺼지면 멘탈 터질 럼들이 다 해탈한 척
언제봐도 명문이다
공지로 걸어두고 때때로, 혹은 가끔씩 보고 싶은 명문이다. 글 흐름이 매끄럽고 술술 읽히는 것에서 필력이 담보되는데 내용까지 좋았어. 일독에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음.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엮어내는 능력이 대단하다. 글을 읽는 시간이 행복하고 깨달음의 기회여서 감사했어. 고마운 마음 이 댓글에 남기고 간다. 중간에 점점이 묻은 질투심 가득한 병신 댓글들은 답하지 말고 가뿐히 무시해버려. 귀한 시간과 마음을 저딴 쓰레기들에 낭비하지 않는것도 인생의 지혜이지. 종종 글 써줘, 고마워.
하나도 공감 안 됨
끌올 굿
브금 찐따같노
특이점은 온다 - dc App
글에 나온 내용을 나 스스로 깨닫고 내면의 평화를 찾았다는거에 뿌듯함을 느낀다. 원래 염세주의적이고 걍 죽기 무서워서 살았는데 근래만큼 미래에대한 기대가 가득했던 적이 없다. - dc App
인간은 원래 섬기도록 만들어졌는데 그것에서 멀어지고 과학 이성을 추구하더니, 그것마저도 결국 자신만의 가짜 Ai 신을 만드는 단계로 귀결된 거보면 원죄라는 게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듯
뭔가했더니 끌올이였구나;;
떠날 용기가 없으니 어찌저찌 살아가고 행복해지고 그러기도 하는거죠
좀 더 이 글을 읽어보고 계속 되새겨야 하려나 아직 완전히 허무주의를 받아들이기엔 난 너무 겁쟁이인 것 같다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천재다
그렇게까지 치켜세우면 내가 댓글 조작한 거 같잖아 왜 이러냐
솔직히 난 특이점오기전에 죽어도 상관없을듯 ㅋㅋ 뭔가 삶에 초연해졌다 특이점을 알고나서
거기서 한발짝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행복해진다. 그 초연함이 진실의 순간임.
ㅇㅇ 특이점알고난후 걍 하루하루가행복함
그래도 특이점이 와야만 이룰수있는 꿈들이 있어서 왔으면 좋겠음 현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절대 못이루는것들이라...
공감함. 한가지 조건이 있다면 주변사람이 쿠사리 넣는것을 무시할수있는 최소한의 용기가 필요함.
ㄹㅇ
사회 압박이 심하지. 또 본능적으로 주변눈치 볼수밖에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