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젊고 야심찬 의대생 니콜라이 투르게네프는 혁신적인 논문을 발표한다. 논문의 주제는 다름 아닌 탄수화물의 위험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탄수화물 과다 섭취가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중독성도 있어, 결국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할 것이라 주장했다.

처음에 니콜라이의 주장은 의료계의 조롱거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의 논문이 알렉산드르 2세 황제의 눈에 띄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크림 전쟁 패배 후 위기감을 느낀 황제는, 국력 강화를 위해 국민 건강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니콜라이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고, 즉각 탄수화물에 관한 새로운 정책을 입안하라 명했다.

며칠 후, 제국 전역에 황제의 칙령이 떨어졌다. 탄수화물의 유해성이 널리 알려지고, 그것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ㅊ 감자 등 주요 탄수화물 식품은 마약으로 지정되어 엄격히 통제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농장과 공장, 빵집들이 문을 닫았고,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탄수화물 금단 현상에 시달리는 민중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정부는 니콜라이를 내세워 계몽 운동을 벌였지만, 되려 그에 대한 반감만 커져갔다. 한편 니콜라이는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나날이 승승장구했다. 그는 마약 중독자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대규모 클리닉을 차리고, 자신의 탄수화물 이론을 전파하기 위해 분주히 활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니콜라이 앞에 한 젊은 여인이 찾아왔다. 탄수화물에 중독된 아버지를 살려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소피아라는 이름의 그 여인을 보고 니콜라이는 한눈에 반해버리고 만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소피아의 아버지를 치료하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꽃을 피웠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하는 비극이 일어난다. 새로 즉위한 알렉산드르 3세는 탄수화물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민심을 무마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금지령을 해제해야 한다는 측근들의 주장에 설득당한 것이다. 급기야 황제는 니콜라이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그가 이끄는 탄수화물 금지 운동을 전면 폐기한다.

하루아침에 곤궁에 빠진 니콜라이는 좌절과 배신감에 술로 세월을 보내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소피아의 아버지는 금지령이 풀리자마자 탄수화물 과다 섭취로 사망하고, 소피아마저 니콜라이 곁을 떠나고 만다. 절망에 빠진 니콜라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날 결심을 한다.

니콜라이는 인적 없는 시베리아 동토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홀로 살며 탄수화물 없는 삶을 실험하기로 했다.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나물과 고기로 연명하는 고된 나날이 이어졌다. 니콜라이는 밤마다 탄수화물 중독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환영에 시달렸지만,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게 된다. 진정한 해결책은 금지와 처벌이 아니라, 교육과 계몽에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10년 후, 니콜라이는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옛날의 니콜라이가 아니었다. 그는 탄수화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한편, 건강한 삶의 방식을 알리는 계몽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니콜라이의 도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탄수화물 중독에서 벗어나 새 삶을 얻었고, 그의 이름은 민중의 스승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말년의 니콜라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탄수화물은 악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이느냐가 문제일 뿐. 나는 이제 깨달았다. 중독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에겐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관용과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그의 깊은 성찰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의 삶에 울림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