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레이 커즈와일이 죽었다. 아니, 어제였던가. 잘 모르겠다.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뤄졌다.  커다란 메타세콰이어길을 가로지르는 운구차와 그를 추모하는 특붕이들의 행렬은 그가 생전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짐작케했다.


특붕이들은 하나같이 슬픈 표정을 하고있었다.

나, 나는

...조금 피곤했다.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걷기란

언제나 쉽지않다. 그게 타인의 죽음 때문이라면 더욱그렇다. 사람이 죽는게 그리 슬픈가. 지금까지 그래왔다. 인류의 아주 여명기부터 셀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죽어왔다. 그리고 그 시체, 그 앙상한 뼈마디가 쌓아올린 바빌론은, 수명을 넘고 질병을 가로질러 특이점에 닿았다. 기쁜날이 아니던가.


-


늦잠을 잤다. 장례식이 어지간히 피로했나보다.

나, 난 오늘 감정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좋은 기억은... 많이없었으니까. 슬픔도, 행복도, 어쩌면 사랑도. 그 속엔 고통이 가득하다.

난 욕망에, 욕정에, 무기력에, ...나에게 질식할것 같았다.


“없는편이 나아.”


시술은 상상이상으로 간단했다. 최근에 개발된 신경통제기술은, 두개골에 작은 칩을 하나 박는것으로

감정과 본능을 차단 할 수 있단다. 테슬라봇은 설명과 함께 스테이플러 형태의 무언가를 가져왔다.


-달칵.


“시술이 완료되었습니다. 신경경로 최적화를 위해 5분간 안정을 취해 주세요.“


“상상이상으로 간단하네.”


“어지럼증과 구토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말씀을 삼가주세요.“


그 순간, 극한의 고통이 나를 감싸왔다. 몸의 마디마디가, 격한 숨을 머금은 폐포가 비명을 질렀다.

참을 수 없었다, 머리가 터질것 같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엎드려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끊임없이, 계속

박았다. 이 고통을 끝내달라고, 삶이란 이렇게 고통스러웠던 것이냐고.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5분은 아직인가. 날 감싸던 고통은 어느덧 나의 엄연한 일부가 되어있었다.

나, 나는 드디어 생각할 수 있었다. 세계를, 자연을, 우주를... 진실을. 세상을 가리던 연기가 사라지자

사실들은 내 앞에 선명히 그 실체를 보였다.

우리의 존재를, 선과 악을, 윤리를, 사랑을, 의미를.

본질을. 정직한 신의 눈으로 찬찬히 내려다 보았다.


세상은 그저 존재한다. 그것에 의미는 없다. 시계와 같이 짜여진 세계는 돌아간다. 그렇다. 돌아갈 뿐이다. 나, 나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살아갈 의미를 찾아본다. 가치를 찾아본다.


...찾을 수 없다.


자살하지 않을 이유를 찾아본다.


...찾을 수 없다.


그 순간, 내 팔이 움직였다. 내 발이 움직였다.

내 몸이, 내 뇌가, 손가락이, 시술대위의 메스를 잡는다. 저항할 수 없다. 저항하지 않는다.


-


정맥에서 피가 솓구친다. 새하얀 수술실 바닥은

생명력이 넘치는 붉은색에 존재감을 내줬다.

나는 이제 깨달았다. 감정을 없애고 나서야 감정을 깨달았다. 불현듯 레이 커즈와일이 생각났다. 그는 얼마나 멀리 내다보았는가. 특이점의 전에 특이점을 경험했나. 우리의 끝을 보았나. 세상의, 생명의 끝을 보았나.


...누구보다 그의 죽음이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