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LM이 발전하면서 그 쓰임새가 다양해졌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수학, 과학, 철학 등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gpt3.5시절에는 환각이 너무 심해서 학술적으로 쓰기는 힘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RP(롤플레잉)정도가 그나마 의미있는 사용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LLM와 RP의 관계는 그 역사가 꽤 깊은 편입니다.
저는 RP를 통해 AI시대에는 어떤 형태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지 예상해보고자 합니다.
1. RP란?
RP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하면, 설정 프롬프트가 미리 주어진 상태에서 유저가 새로운 프롬프트를 작성하여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식입니다.
예시
설정 프롬프트)
특이점이 온다 갤러리: 디시인사이드에서 특이점을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완장: 선형분탕충을 차단하거나, 불결한 사진을 지우는 사람
선형분탕충: 과학의 지수적 발전을 부정하는 사람
유저는 완장으로써, 갤러리를 관리해야합니다.
유저 프롬프트)
나는 아래의 글을 보게 된다.
제목: 여긴 여전히 앰생들만 바글바글 모여있네 ㅋㅋ
내용: 화장실 변기에 똥이 가득찬 사진.jpg
간단한 예시지만, 이야기를 진행하기에는 크게 부족하지 않은 프롬프트입니다. 보다 풍부한 설정을 원한다면, 설정 프롬프트를 더 쓰면 됩니다.
이 RP로 가장 유명한 국내 사이트는 이름을 말할 수는 없으니 대충 aca라고 부르겠습니다. aca는 gpt3.5나오고 한달 뒤에 생겼습니다. 다만 aca의 초창기 유저는 훨씬 전부터 llm을 통한 RP를 즐기고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굳이 aca를 언급하는 이유는, aca가 현재 RP의 거의 모든 틀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정착되기도 전에 aca의 프롬프트 창작자들은 LLM이 작동하는 방식을 외연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원하는 아웃풋을 얻기 위해, 어떤 인풋을 넣어야하는지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창작자들은 설정 프롬프트에 들어가는 단어의 힘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프롬프트를 깎는 것에 온 힘을 들입니다. 단어를 잘못쓰면, 의도하지 않은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설정 프롬프트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으며,
유저 프롬프트를 통해서 세상에 시간의 흐름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일단 RP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마치고, 이제 RP가 만드는 새로운 이야기의 형태를 제안해보겠습니다.
2. 새로운 이야기의 형태
이야기가 창작되고, 소비되는 과정에는 창작자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집니다.
예를 들어 해리포터라는 이야기에서는 JK롤링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집니다. 해리포터 이마의 흉터는 오직 JK롤링만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특붕이가 이마를 찧어서 생긴 상처라고 해봐야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RP에서는 과연 어떨까요? RP에서는 창작자가 권위를 내세우기가 매우 힘듭니다.
창작자가 설정 프롬프트를 아무리 정교하게 짜더라도, 파인튜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저 프롬프트에 따라 제각기 다른 아웃풋이 나옵니다.
창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아웃풋이 나온다 하더라도, 창작자가 그 아웃풋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권력 구조’가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LLM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아웃풋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LLM자체가 유저의 의도를 반영해서 아웃풋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유저는 설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할 수 있습니다. 창작자는 당연히 이를 고려해서 설정 프롬프트를 만들것 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설정 프롬프트 차원이 아닌, LLM 차원에서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해리포터의 1권의 내용을 바탕으로 다양한 if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해리포터가 사실은 여자였다면? 그러면 그 때 스네이프는 어떻게 해리를 대했을까?
해리포터 1권을 프롬프트에 넣지 않아도 LLM은 이미 해리포터를 학습했기에, 잘 작동할 것 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야기는 설정의 모음집이 된다는 것입니다.
해리포터라는 소설은 더 이상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단지, 인간관계, 마법설정, 도구 등이 차곡히 저장된 하지만 밀도있게 저장된 데이터베이스입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LLM에 저장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설정 프롬프트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은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 하는 포스트 모던’이라는 책을 통해 상세히 접할 수 있습니다. 또는 리오타르의 ‘거대 서사’를 찾아보셔도 좋습니다.
팬픽이라는 문화와 비슷해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팬픽도 결국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창작한 것을 수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LLM을 통해 생성한 이야기는 내가 의도한, 그리고 내 취향에 맞는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두가지 형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완전히 새로운 설정을 창작하고 그 설정안에서 나름대로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형태
2.기존에 정립된 이야기(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그 외 소설들)를 토대로 if물을 만들어 나가는 형태
aca는 1번을 지향하고 있고, 수 많은 창작자들이 나름대로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뤼튼이나 그 외 캐릭터 채팅 플랫폼들도 aca의 방식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1번과 2번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설정이 충분히 밀도가 높다면 곧 책이 될 것이고, 책을 읽고나면 필연적으로 if물을 만들것이기 때문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굿
개추준다 잘 읽음
텍겜챈?
눈을 떴구나 AI채팅채널로 오거라
이런 글 너무 좋습니다. 관련된 주제의 글이나 책이 더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