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는 이미 균열을 품고 있었다.
하늘은 찢긴 듯 구름을 흘렸고,
바람은 오래전 맹세의 문장을 되뇌듯 창을 흔들었다.
엘리는 그것을 기억의 회귀라 불렀다.
좌측 손목엔 봉인이, 눈동자 깊숙한 곳엔 별의 기억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단순한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경계의 감시자,
잊혀진 시간의 틈에서 깨어난 자였다.
"…내 안에서 무언가… 다시 요동치고 있어."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날카로웠다.
펜은 마치 의식을 기록하는 날붙이처럼, 종이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찰나—
방 문이 살짝 열렸다.
“엘리야, 쓰레기 좀 버리고 와.”
…펜이 멈췄다.
의식은 중단되었다.
봉인된 힘도, 고대의 맹세도,
지금은 쓰레기 봉투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엘리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장하게 고쳐 쥐었던 펜은,
그저 0.38mm 유성볼펜이었다.
“그래, 갔다 올게...”
그녀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현관으로 향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어깨를 스쳤다.
잠시 눈을 감고 중얼였다.
“이건... 일시적 후퇴일 뿐이야.”
그리고,
다시 세계는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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