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상 교수는 뼛가루가 날리는 발굴현장에서 태양을 등지고 서 있었다. 이슬 같은 땀방울이 이마에 맺혔다. 오늘의 발견은 그가 학계에서 15년간 주장해온 이론의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진실은 종종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갈색 나무 상자 안에 빛바랜 점토 서판들이 놓여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찾던 것이오. 아모리족의 '나흐랏-지크림'이라 불리는 성서의 일부분입니다."
조수 유지민은 의아한 눈빛으로 교수를 바라보았다. "교수님... 정말 그게 싱족의 모나스 경전 이전에 존재했다는 증거인가요?"
"이 서판들에는 모나스가 주장하는 '근원의 빛' 개념의 원형이 담겨 있어. 여기에는 '누룸-아슈라팀'이라 불리는 개념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싱족이 자신들의 독창적인 사상이라 주장하는 모나스의 근간이라네."
해가 지고 있었다. 발굴지 뒤편의 산맥은 보라색으로 물들었고, 다키아 속주의 황혼은 유난히 길었다. 서판을 들어 올리며 은상은 중얼거렸다.
"카잔 공화국은 이런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거야."
카잔 공화국 수도 이스카리의 대학가는 항상 생기가 넘쳤다. 마도공학 학생들이 새로운 아크테스 장치를 테스트하고, 역사학도들이 고대 문헌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곳. 주르반 엘룩스베르 대학교 내 고대사학과 세미나실에서는 특별한 발표회가 열리고 있었다.
"...따라서 이 서판들은 모나스 교리가 아모리인들로부터 차용되었다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박은상 교수의 발표가 끝나자, 청중석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박 교수님, 그 '증거'라는 것이 진짜라는 검증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탄소연대측정법으로는 점토 서판의 연대를 정확히 알아낼 수 없다는 것쯤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습니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깔끔한 정장 차림의 김태현. 모나스 교단 산하 '진리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초리 뒤에는 교단의 공식 입장이 숨어 있었다.
은상은 예상했던 질문이라는 듯 미소 지었다.
"좋은 지적입니다. 우리는 서판에 사용된 점토의 광물학적 구성과 함께 발견된 유물들, 그리고 문자학적 분석을 통해 B.D. 600년에서 50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싱족이 주장하는 모나스 경전 성립 시기보다 앞섭니다."
"문자학적 분석이요? 아모리 문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는 전 세계에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런 분석이 과연 신뢰할 만한가요?"
교수는 슬라이드를 넘겼다. 스크린에는 고대 문자와 현대 칼렌디르어의 비교표가 나타났다.
"사실, 제 발표의 핵심은 단순한 연대가 아닙니다. 내용의 유사성입니다. 이 서판에는 심탓-카드슛이라 불리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는 모나스 교리의 핵심인 '에테르'와 '이데아' 개념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
청중 뒤쪽에서 누군가 손을 들었다. 특이하게도 검은 장갑을 낀 여성이었다.
"박 교수님, 타란켈에서 온 아델라 벨라스입니다.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이 서판들이 발견된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요?"
은상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타란켈은 카잔 공화국의 첩보 기관이었다. 아델라 벨라스라... 기록에도 없는 가명일 것이다.
"다키아 속주 투어다불그 숲 북쪽 폐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정확한 좌표는 발굴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델라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는 그녀가 왜 이 세미나에 참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연구가 위험한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직감했다.
세미나가 끝난 후, 조용한 카페에서 은상과 지민은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 오늘 그 타란켈 요원... 분명 우리를 감시하러 온 거죠?"
은상은 커피잔을 조금 기울이며 대답했다. "아마도. 카잔 공화국에서는 모나스 교단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를 달가워하지 않아. 특히 지금처럼 증거가 있을 때는."
지민은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더 낮췄다. "교수님, 사실 어제 저희 숙소에 누군가 들어온 흔적이 있었어요. 서판 사본이 담긴 노트북은 안전한가요?"
"걱정 마. 원본 스캔 파일은 여러 곳에 분산 저장해뒀어. 그들이 이 연구를 막으려 해도 이미 늦었어."
창밖으로 마도공학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은상의 시선에 카페 맞은편에 서 있는 검은 코트 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신문을 들고 있었지만, 분명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민아, 나 내일 새벽 열차로 할라타 성국으로 가려고 해. 그곳 대학에서 아모리어 전문가 하나르 교수를 만나기로 했어."
지민의 눈이 커졌다. "벤자민 하나르요? 그분이 은퇴하지 않으셨나요?"
"그래, 공식적으로는 은퇴했지. 하지만 그는 아모리어에 관해서는 살아있는 사전이야. 이 서판의 정확한 번역을 위해서는 그의 도움이 필요해."
지민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제가 동행해도 될까요?"
은상은 고개를 저었다. "너는 여기 남아서 다른 서판들을 정리해줘. 그리고 우리가 발굴한 다른 유물들도 살펴봐. 특히 은제 매달린 물건에 주목하고."
"알겠습니다. 조심하세요, 교수님."
할라타 성국 국경 열차는 새벽안개를 가르며 달렸다. 은상은 창가에 앉아 서판 번역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특히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구절이 있었다.
"비록 우리 민족이 흩어지고 우리 도시가 폐허가 되더라도, 우리의 지혜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때가 되면, 탐구자들이 우리의 서판을 발굴하고 우리의 말을 새롭게 해독할 것이다."
수천 년 전 아모리 예언자가 남긴 이 말이 지금 현실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은상은 등골이 오싹했다. 누군가 그의 칸막이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좌석 확인 차 왔습니다."
그러나 문을 연 것은 검표원이 아닌, 세미나에서 보았던 그 여자, 아델라 벨라스였다.
"박 교수님, 잠시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검은 장갑을 낀 손이 은상의 어깨를 눌렀다. 거부할 선택지는 없었다.
"물론이죠, 벨라스 씨. 아니, 타란켈 요원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고 은상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교수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연구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은상은 코웃음을 쳤다. "고대 서판 연구가 어떻게 국가 안보 위협이 된다는 겁니까? 제가 발굴한 것은 학문적 진실입니다."
"진실이요?" 아델라가 냉소적으로 웃었다. "모나스 교단은 카잔 공화국의 정신적 기둥입니다. 그 기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공화국 전체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에요."
"그래서요? 학문적 진실을 감추자는 겁니까?"
아델라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사는 종종 필요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교수님. 진실이 항상 국가와 국민에게 이로운 것은 아니죠."
"그러니까 위험한 진실은 감춰야 한다? 그게 타란켈의 역할인가요?"
그녀는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은상에게 내밀었다. "이것은 당신의 연구비 지원서가 승인된 서류입니다. 카잔 공화국 과학원에서 향후 5년간 풍족한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했어요. 단, 현재 연구 방향을 약간... 조정하신다면요."
은상은 서류를 받아들지 않았다. "이게 뇌물입니까, 협박입니까?"
"둘 다 아닙니다. 현실적인 제안이죠. 교수님의 학문적 재능을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쓰자는 겁니다."
그 순간, 열차가 터널로 들어가며 칸 안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 다시 빛이 들어왔을 때, 은상은 아델라의 검은 장갑 아래로 푸른빛이 깜박이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정체불명의 마도공학 장치가 숨겨져 있었다.
"생각해 보세요, 교수님. 우리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
하나르 교수의 집은 할라타 성국의 오래된 대학가에 위치해 있었다. 80대 중반인 그는 앙상한 골격에 흰 수염을 기르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오, 이것 좀 보세요! 진짜 아모리 서판이군요! 믿을 수 없습니다. 이런 원본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은상은 노학자의 열정에 미소를 지었다. "번역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하나르 교수님?"
"물론이죠! 이건... 아, 이 부분은 '아나시(Anasi)'라는 단어군이군요. 초기 아모리인들이 숭배했던 유일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두 사람은 밤새도록 서판을 번역했다. 은상의 가설은 점점 확실해져 갔다. 모나스 교단에서 '근원의 빛'이라 부르는 개념은 분명 아모리인들의 '누룸-아슈라팀'에서 온 것이었고, 싱족이 핵심 교리로 삼는 테미스 체계는 아모리 문화의 '심탓-카드슛'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박 교수, 당신이 뭔가를 발견했군요." 하나르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발견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아시겠죠?"
은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이미 타란켈이 저를 감시하고 있어요."
하나르는 한숨을 쉬었다. "역사는 승자가 쓰는 법이죠. 싱족은 자신들의 역사를 정립하기 위해 아모리인들의 유산을 지워왔어요. 모나스 교단은 많은 것을 '차용'했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죠."
"그래서 진실을 감춰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진실은 알려져야 합니다. 그러나 현명하게요." 그는 책장에서 낡은 가죽 표지의 책을 꺼냈다. "이것은 40년 전 내가 비밀리에 번역한 또 다른 아모리 문서입니다. '푸라나 그란타'의 모태가 된 원문이죠."
은상의 눈이 커졌다. "이런 자료가 있었다니!"
"타란켈은 이미 당신의 서판을 없애려 할 것입니다. 그들은 항상 그래왔어요." 하나르는 떨리는 손으로 책을 은상에게 건넸다. "이것을 가져가세요. 그리고 세상에 알리세요."
다음 날 아침, 은상은 할라타 성국 중앙도서관에서 하나르가 건넨 책의 내용을 디지털화하고 있었다. 한 폴더에 스캔본을, 다른 폴더에는 번역 작업을 저장했다. 그런 다음 암호화된 메시지를 지민에게 보냈다.
「자할엔디르 우체국 411번 사서함. 보낸 자료 확인하고 안전하게 보관.」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돌아보니 도서관 사서로 보이는 남자였다.
"박 교수님? 전화 왔습니다. 로비로 와주시겠어요?"
은상은 의아했지만 따라갔다. 로비에는 전화기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검은 코트를 입은 세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의 코트 안쪽에서 푸른 빛이 새어 나왔다.
"박은상 씨, 체포되셨습니다. 할라타 성국 보안법 위반 혐의입니다."
은상은 등 뒤로 손을 돌렸다. 노트북이 들어있는 가방이 그대로였다. 아직 희망이 있었다.
"무슨 혐의죠?"
"국가 기밀 침해, 역사적 유물 밀반출, 종교 모독 등입니다."
"이건 학문적 연구입니다! 무슨 권리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남자가 다가와 은상의 양팔을 잡았다. 노트북 가방도 빼앗겼다.
"하나르 교수는 어떻게 됐죠?" 은상이 물었다.
세 남자 중 리더로 보이는 이가 냉랭하게 대답했다. "벤자민 하나르는 오늘 아침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은상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들은 하나르를 죽였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차례였다.
카잔 공화국 이스카리, 주르반 엘룩스베르 대학교 고고학과 연구실.
유지민은 교수의 암호화된 메시지를 받고 즉시 자할엔디르 우체국으로 갔다. 411번 사서함에는 작은 USB 드라이브가 있었다. 그녀는 연구실로 돌아와 내용을 확인했다.
"이게 뭐지..."
화면에는 아모리 서판의 전체 번역본과 함께, 하나르 교수가 건넨 책의 스캔본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파일 하나가 더 있었다. '만약에.txt'라는 제목의 텍스트 파일이었다.
「지민아,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 자료를 주르반 제국 역사학회와 아이실리아 왕국 고고학 협회에 보내라. 그리고 코랄 연합 '진실의 십자가'라는 언론사의 미카엘 로젠바움이라는 기자를 찾아가라.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 그리고 우리가 발굴한 은제 매달린 물건을 잘 살펴봐. 그것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마법적 유물이다. 아모리인들은 그것을 '아스트랄 하모니아'라고 불렀다...」
지민의 등 뒤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유지민 씨?"
그녀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모나스 교단의 김태현이 서 있었다. 그의 눈빛은 차갑고 계산적이었다.
"박 교수님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 들으셨나요?"
지민의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무... 무슨 사고요?"
"할라타 성국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셨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그의 목소리에는 슬픔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혹시 교수님이 남긴 연구 자료가 있다면, 그것은 고인의 학문적 유산으로 모나스 연구소에 보관되어야 합니다."
지민은 서둘러 컴퓨터 화면을 닫았다. "아직 확인된 것은 없어요."
"그래요?" 김태현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지민을 바라보았다. "그렇군요. 하지만 발견되는 대로 알려주세요. 그것이 고인을 기리는 일이 될 테니까요."
그가 방을 나가자, 지민은 즉시 USB를 뽑고 가방에 넣었다. 그녀는 은상 교수가 발굴한 은제 유물을 찾아 연구실 보관함을 뒤지기 시작했다. 작은 상자 안에 '아스트랄 하모니아'로 추정되는 유물이 보였다.
푸른빛이 은은하게 빛나는 이 물체는 어두운 곳에서도 차가운 빛을 발했다. 지민은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마치 오래된 기억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
아모리인들의 이야기가 내 안에서 울려 퍼지는 것 같아.
지민은 결심했다. 은상 교수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감춰진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싸울 것이다. 그녀는 가방에 USB와 '아스트랄 하모니아'를 넣고 연구실을 나섰다.
복도 끝에서 김태현이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지민은 그들의 시선을 피해 반대편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진실은 언젠가 모래 속에서 다시 솟아오를 것이다.
"때가 되면, 탐구자들이 우리의 서판을 발굴하고 우리의 말을 새롭게 해독할 것이다..."
아모리 예언자의 말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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