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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안동 지역을 휩쓴 대형 산불의 잿빛 연기가 아직 도시 외곽을 희미하게 감싸고 있었다. 며칠 밤낮을 집어삼킨 불길은 간신히 잡혔지만, 남은 것은 검게 타버린 산의 민낯과 사람들의 망연한 얼굴뿐이었다. 텔레비전 화면은 연일 처참한 피해 현장과 복구를 위한 움직임을 번갈아 비췄다. 자원봉사자들의 땀방울, 답지하는 구호 물품, 그리고 이어지는 유명인들의 기부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막 1년이 되어가는 ‘윤’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무심코 넘기다 한 연예인의 ‘통 큰 기부’ 소식을 접했다. 댓글 창에는 찬사와 응원이 가득했다. ‘역시 다르다’, ‘선한 영향력’, ‘쉽지 않은 결정인데 대단하다’… 윤은 스크롤을 멈췄다. 가슴 한구석에서 무언가 작고 단단한 것이 불편하게 꿈틀거렸다.

왜일까. 분명 좋은 일이었다. 산불 피해민들에게는 한 푼이라도 더 절실할 터였다. 저렇게 이름난 사람이 나서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기부 액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도, 선한 의도보다는 결국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선한 결과’가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윤은 동의했다. 그런데 왜 이 알 수 없는 껄끄러움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 마치 덜 삼켜진 알약처럼 목구멍에 걸려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너무 꼬인 건가?’ 윤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온갖 가짜 기부 논란, 기부금을 횡령하는 단체들에 대한 뉴스를 너무 많이 접해서 순수한 선의마저 의심하게 된 걸까? 아니면 그저 평범한 직장인인 자신의 초라한 기부액과 비교하며 느끼는 자격지심일까? 혼란스러웠다.

주말, 윤은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 지수에게 슬쩍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지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 들어. 뭐랄까… 너무 ‘보여주기’식 같다는 느낌? 물론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지만, 그 과정이 너무 떠들썩하면 좀… 그렇긴 해.”
지수의 말은 윤의 감정에 작은 실마리를 제공했지만, 여전히 명쾌한 답은 아니었다.

며칠 뒤, 윤은 회사 선배인 민주와 점심을 먹다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다. 민주는 깍두기를 오독 씹으며 말했다.
“윤 씨,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야. 자본주의 사회잖아. 이미지도 자산이고, 그걸 좋은 일에 쓰는 건데 뭐. 그리고 솔직히, 그렇게 뉴스라도 나야 ‘아, 저런 일이 있었지. 나도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 홍보 효과 무시 못 해.”
민주의 현실적인 조언은 타당했다. 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가슴속 불편함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이성적인 이해와 감정적인 반응 사이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 주 주말, 윤은 본가에 내려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할머니와 마루에 앉아 과일을 깎아 먹던 중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또다시 안동 산불 피해 복구 관련 뉴스가 흘러나왔고, 한 기업의 거액 기부 소식이 이어졌다. 윤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왜 그러냐, 윤아. 좋은 소식인데.”
할머니가 윤의 표정을 읽고 물었다. 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동안 품어왔던 의문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유명인들의 기부 소식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 그것이 자신의 삐뚤어진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할머니는 말없이 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창밖, 저 멀리 보이는 뒷산 능선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옛날에 말이다. 동네에 큰 홍수가 난 적이 있었어. 그때 옆집 순이네 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자기네 곳간을 털어서 쌀이며 옷가지를 내놨지. 누가 알아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묵묵히. 또 어떤 사람은 밤새 물에 잠긴 집들을 돌며 사람들을 구해냈고. 그걸 누가 떠벌리고 다닌 것도 아니었어. 그냥… 그게 당연한 일처럼 보였지.”
할머니는 잠시 숨을 골랐다.
“물론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지. 좋은 일도 널리 알려야 더 큰 힘이 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윤아, 네 마음이 불편한 게 꼭 네가 꼬여서 그런 건 아닐 게다.”
“그럼 뭔데요, 할머니?”
윤은 할머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음… 뭐랄까. 자연스러운 게 아닌 것에 대한 거부감이랄까.”
“자연스러운 거요?”
“그래.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손을 내미는 거.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마음의 움직임 아니냐. 그런데 거기에 너무 많은 이름표가 붙고, 액수가 매겨지고, 박수갈채가 쏟아지면… 그 본래의 자연스러움이 조금은 가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 마치 곱게 핀 들꽃 옆에 ‘이 꽃은 매우 아름답습니다!’라고 팻말을 박아놓은 것처럼 말이다.”

할머니의 말은 윤의 머릿속을 울렸다. 그래, 그거였다. 자신의 감정은 꼬인 심성이나 학습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인간이 가진 본연의 연민과 도움의 행위가 ‘이벤트’처럼 포장되고, ‘영향력’이라는 이름으로 평가받고, 때로는 ‘이미지 관리’의 수단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이질감. 조용히, 당연하게 흘러가야 할 무언가가 세간의 이목 속에서 부자연스럽게 전시되는 듯한 느낌. 그것이 윤이 느꼈던 불편함의 정체였다.

윤은 깨달았다. 공개 기부의 사회적 효용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방식에 대해 미묘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행의 본질, 그 가장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형태에 대한 무의식적인 갈망일지도 몰랐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저녁 어스름 속에서, 윤은 비로소 자신의 복잡했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아직 세상의 모든 것에 익숙해지지 않은, 그래서 더 본질적인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는 자신의 일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검게 타버린 산에도 언젠가 다시 푸른 싹이 돋아나듯,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말이다. 윤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마음속 불편함의 근원을 찾은 것에 대한 작은 안도감이 잔잔히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