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크게 알아야 될 건 두가지임


성경은 실존함. 근데 실존하는데 

원본 자체가 현대의 성경은 어떤 글이 담겨져있는지 로마교황청에서 지우고 개정된 상태로 세상에 나왔음



이게 세상에 뿌려 질 때 언어와 종교 문화적 차이로 인해서 오역도 일어났고 각 나라마다 번역에 대한 갭과

각종 종단과 목사마다 그 해석의 여지가 달라서 아주 여러가지로 같은 구절들이 다르게 전달되어 왔음.


그래서 본질적인 의미가 크게 상실 됬을 수 있다는게 여러사람들의 생각중 하나임.


근데 그렇다고 해도 숨겨진 의미는 숨길수있는게 아니기도 하고, 애초에 성경이든 지구평평론이든 받아먹을건 받아먹고 알아서 처신하면 되는거야 

그게 중요한거야.


지금 부터 내가 두개의 글을 첨부할게 

조내 길고 이 두개의 글은 같은 사람이 썼지만 서로 다른 관점에서의 글임

첫번째 글은 기독교와 성경에대하여 부정적인 시선이 담겨있음.

그리고 두번째 글은 총체적으로 성경이 의미하는 우리가 받아먹어야 할게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음.


각자 읽어보고 판단해보길 바래



1번글


세상에는교회에도 다니지 않고 성경도 제대로 정독해 보지 않았지만

신의 존재를 믿는 자들도 존재하고

기독교 혹은 타종교에서 강조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실천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반대로 크리스천인들이 타인들의 비난을 사는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본디 종교나 철학에 관하여 공부하기를 좋아하였다.

어느날 엔가 신기한 목사 둘을 유튜브에서 보았다.

한사람은 석가모니와 프란치스코 교황을 동일시 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욕을 이겨내고 진실되게 사랑을 실천했다 , 그러므로 불교의 석가모니에 버금가는 위대한 인물이다."

라는 논리를 폈다.

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사랑을 실천하는것은 기독교인의 당연한 삶인데 왜 우리가 보는 기독교인들에게서는 사랑의 감정을 느낄수 없는것인가

그저 예수천국 불신지옥 , 교회다녀라 , 안가면 지옥간다 , 헌금내라 , 예수는 ~~라고 말했다 너라는 사람은 예수를 모르니까 ~~인것이다.

라면서 사람들에게 그저 저주만 퍼붓는 존재들로 내눈에는 보였다.

또 어떤 목사는 ~~~어떠한 길이 기독교인을 승리의 목회로 이끄는 길이다 라면서 연설하였다.

나는 속으로 너무 한심해 보였다.

목사라는 자가 그저 실천하고 행할뿐인 사랑을 말하면서 '승리'를 말하다니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승리'한다는 말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어릴때 몇번 가본 이후로 교회에 다닌적 없고 성경도 정독하지 않았지만

신은 존재한다 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기독교든 불교든 타종교든 간에 핵심은 사랑이라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죽은 뒤에 세상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한때는 중요했으나 지금은 그리 중요치 않다.

그저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괜찮습니다" 하면서 스스로 용서해보며

길을 가다가 쓰레기 하나를 주우면서 이 행동으로 세상이 조금은 행복해질수 있기를 이라고 되뇌일 뿐이다.

근데 어느날 어느 기독교인이 올린 로마서였던가 글귀중에 기억에 남는 글이 있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아니 하고 모든 사람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누구에게나 축복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보면서 조금은 사랑의 감정을 더욱 깊이 느낄수 있었던것 같다.

그러나 지금 크리스천인들의 행동과는 완전 반대되는 말이였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인은 누군가를 핍박하고 저주하는 존재 같았고 교회에 안나간다고하면 이것저것 성경 구절을 가져와

아는체하며 당신은 무엇무엇이다 당신은 지옥에 갈것이다 교회를 다녀야한다 예수를 믿으라 하면서 그저 강요하는 존재로 보였고

악을 당하면 악을 몇천배이상 갚으려는 태도 또한 종종 느껴졌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사랑을 실천하는 크리스천인은 내 주위에 없었다.

젊은 날 돈이없어서 길에서 고생을 하던때

교회에 가서 잘곳이 있는지, 여비를 조금 얻을 수 있는지 물었던적이 있었다.

어느 교회 하나 없이 "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내가 들렀던 교회가 우연찮게 그랬던건지는 모르겠지만 기독교인에게 사랑은 없구나 라고 느낀 감정이

그 뒤에 깊히 뿌리 내렸던 것 같다.

인터넷 댓글을 보아도 스스로 기독교인을 자처하고 예수믿고 천국으로 믿음으로 소망하고 어려움을 이겨내자 라고 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말투가 괴팍하고 사랑을 찾아볼수없었다.

그저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내가보아도 로마서에 나와있듯 사랑이라는 감정은

자신 주위에 사람을 한번 더 보살펴주고 안아주고 길가에 쓰레기 하나 더줍는 실천일 뿐인데

왜 굳이 남에게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 라며 듣기 싫은 저주를 퍼 붇고 "목회가 승리하려면 더욱 많은 전도가 있어야한다" 라며

승리하는 교회에 집착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물론 나는 그들이 틀린 믿음을 실천하며 완전히 틀려버린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감정은 그 사람의 말투 눈빛 행동 하나만 보아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였던가?

만일 모든 크리스천인들이 진정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감정으로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자기 자신 자신의 가족이 잘되기만을 바라지 않고

그 옛날 예수가 지금까지도 말하고 있듯이 세상에 빛과 소금 , 사랑이라는 감정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구원의 길이라는것을 안다면

이렇게 까지 크리스천인들의 대한 반감이 뿌리 내렸을까?

목사나 교회에 대한 불신이나 '예수쟁'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을까 싶다.

교회에 가서 헌금을 하고 찬송하고 주위에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하면서 남에게 사랑을 강요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 스스로 진정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기독교인이 말하는 진정으로

기독교인이 승리하고 모든 세상 사람들을 사랑으로 교화시키는 길임을 왜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나도 알고있는데 기독교인들은 모르는 것일까?

참으로 재미있는 상황 인것 같다.

쳐다만 보아도 댓글이 올라온 글만 보아도 알수 있다

이 기독교인에게 사랑이 있는가? 누군가를 사랑하라고 예수와 성경에게 제대로 배워와서 실천하는가?

그런 사랑이 진정으로 보인다면 나는 존경을 마다 않는다.

다만 그저 죽은뒤에 천국가기위한 발버둥일 뿐이라면

나는 거리낌없이 이 사람은 거짓 위선자라고 판단내린다.

물론 내가 아직 예수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그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일 뿐이기에

나쁜감정을 가진 악인들을 사랑하기 보단 좋은 감정을 가진 선인들을 더 사랑하고 위해주자는 마음에서

그들을 멀리하고 그들을 때론 과하게 대하기도 한다.

아마 이것이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반기독교인들에게 예수쟁'이라고 놀림 받고 때론 험한꼴을 당하며 무시 받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2번글 

정이 없으면 반이 없고 , 반이 없으면 합이 존재 할 수 없다.

이말은 정에서 벗어나 반에 들어가려면 정에 있어봐야 하고

반에서 합에 이르려면 반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정 반 합 세가지의 꼭지점을 이루는 삼각모양은 서로가 서로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의 꼬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것을 동양 종교관과 철학을 빌어 설명하자

부처는 깨달음을 얻을때

'현상 그 자체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공 사상' 이나

'존재하되 존재하는것이 아니다'

'있기도 하나 없기도 한 것이다' 라고 말한 것 처럼

어떤 일에 있어서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고 그 현상으로 인해서

초래되는 문제점은 결국 당연한 순리라는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말과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러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임제 선사의 말과 더불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로 대변되는 선불교의 사상은

사실은 일맥상통하는 논리이다.

표현이 다소 과격하고 , 논지와는 빗나간 점이 분명 있으나

이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란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접적으로 보아라 라는 말은 무슨말인가?

석가가 내세웠듯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마라 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마라 라는 것은 어떠한 일에도 사랑을 잃지말라

즉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사랑하라라는 말일 것이다.

불교의 경전들과 언어들을 보면 가리키고 있는 점이 있다.

인간으로써의 도덕성 인륜적인 관념을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다.

즉 사랑을 잃지 말라는 말이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을 사랑하라 , 내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가르침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유교의 공자 역시 부모와 나라와 임금과 신하에 대해 설하였다.

도교의 노자 역시 사람이 가져야할 도덕과 인륜적인 감정을 중요시하였다.

즉 '인간이 되어라' 라고 말하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은

말 그대로 '인간이 가지어야 할 자세'등을 버리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이 되어라=사랑을 잃지말라 , 그럼에도 사랑하라)

우리는 살인을 저지르거나 반인륜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푸틴이나 김정은을 볼때

'인간 만도 못한놈, 인간도 아니구나' 라고 표현한다.

말그대로 인간이 지켜야할 도리와 도덕적 관념을 인간은 인간이기에 당연스레 알고 있는것이다. 살인이 나쁘다는것을 알고 , 도둑질이 정당화 될수 없다는것을 알고 , 나아가 더 인간 본성에 가까운자는 살인한사람이 왜 살인을 했고 도둑질이 왜 만행되는가를 생각할수 있게된다. 그에 따라 법이 제정되고 , 인간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이끄는 사람살이에 다가가게 된다.

그렇지만 소히 과학의 발전과 시대의 개발에 따라 다른 문제들은 끊임없이 또 야기된다.

그렇지만 야기 되는 문제들을 그대로 넘어가지 않아야 하는것이 인간인 것이다.

인간은 인간성을 버리지않고 문제를 해결하려 집단을 형성하고 법을 제정하고 각종 윤택하고 풍요로운 삶을 갈망하게 되고

그에 따라 내 가족 내 지인 내 국가가 잘 살기 위하여 어떠한 행위들을 일으킨다.

다만 그 행위들을 할때 사랑을 생각치 않으면, 때론 타인의 가족 , 타인의 지인 , 타국가를 피해주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또 다시 사랑으로 해결하려 노력하는것이 인간 그 자체의 본성이라는것이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은 자가 분명 있을것이다.

결국 어떠한 일들이 어떻게 어찌하여 일어나더라도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을 잃어버리지 말아라' 라는 것이다.

내 가족을 사랑하게 되면 , 내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내 이웃을 사랑하게 되면 , 국가와 국민을 사랑하게 되고,

국가와 국민을 사랑할 줄 알면 전세계를 아우를수있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면 , 동물과 식물 나아가 모든 만물을 사랑할수 있게 된다.

모든 종교와 모든 성인들이 가르키던 지표는 무엇인가?

인간 본성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 본성을 잃지 말라는것은 인간이 가진 사랑이라는 감정을 잃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부처는 분명히 알고 있었을것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어느순간 잃어버리게 되면 타인을 상처 줄수 있다는것을

그렇지만 오신과 칠정 , 또한 각종 법문들을 통하여 그 과정에서 오는 아픔들도

사랑을 잃지말고, 사랑으로써 대하라 라는것을 내포하였고,

예수 또한 본질은 사랑이라 하였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랑이나 사랑을 잃으면 환난이 닥치게 되고 인간은 어려움에 휩쓸리게된다 라는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기에 성경에 기록해둔것이다.

인간이 사랑을 잃었을때 오는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들 인간이 겪어야 하는 아픔들

그 모든 예언들은 사실이고 일어날 일들이다.

그런데도 예수는 사람을 사랑하라라고 말하는것이다.

대통령과 같은 정치인이 나라를 바르지 못하게 이끌어 간다고 해서 욕을 할필요가 없다.

푸틴과 김정은 같은 인물이 세계를 위협한다고 해도 욕을 할 필요는 없다.

어느 누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그에 손가락질 하지 않는것

그것이 깨달음에 길인것일지 모른다.

그저 인간은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은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것이다.

즉 고난을 만나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버리지 않아야 하는것이다.

모든 현상은 결국 사랑해야 함을 말하고 있고 , 모든 현상은 사랑의 감정에서 다시 비롯된다. 전쟁이 정당화 될수없고 살인은 잘못된것이 마땅하지만 이 역시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인것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남을 비난하거나 욕하거나 자만하지 않아야 하는것이다.

이것을 알게되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수 있다.

모든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인간은 사랑을 해야하고 , 아픔은 사랑을 잠시 잃어버렸을때 자연스레 따라오게 되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아픔 역시 사랑으로 접근 해야 한다.

이 단순한 진리를 모르고 사니까 , 세상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일지 모른다.





지금 두개의 글을 보면 같은 사람이 썼으나

기독교의 관점을 다르게 보고 있거든</p><p> </p><p>이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해줄게.




우선 1번에 관한 이야기야


성경에 따르면 창조주는 세상을 창조하고 예수를 인간세상에 자기모습을 본따 내려보냈지만

결국 이 세상 자체가 신이 창조한것이기 때문에 

악마 혹은 루시퍼 이 세상에서 정의 할 수 있는 모든 해악과 어려운 과제들 또한 신이 만들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됨.

즉 성경에도 잘 쓰여있듯이

신은 거지를 만들고 맞아 죽는 백성들을 만들고 창녀를 만들고 지나가는 개를 만들고 온갖가지 군상들을 만들었어.


즉 이세상은 모두 신이 창조했다.

신은 예수도 되고 창녀도 되며 백성도 되고 거지도 되고 악마도 된다.

다시 말해 신은 예수와 동일시하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 신은 다시 악마인 루시퍼가 된다.

즉 신=예수그리스도=새벽별=루시퍼는 같은 개념이다.


이건 성경을 본 사람들은 다들 알수있듯이

"나는 이세상 모든것의 근원이요 모든 것의 시작이니 내가 곧 새벽별이라 나는 이 세상 모든것이 된다."

라는 구절에서 알수있지.


즉 신은 예수도 만들었고 루시퍼도 만들었어 그리고 성경에 따르면 예수도 신이고 루시퍼도 신이야. 그래서 신은 the one기에 악마라는 소리지




근데 그러함에도 성경에서 우리가 받아 먹어야할건 2번 글의 시점이야

더쓰면 조내 길어지니까 핵심만 이야기하자면

"그럼에도 사랑을 잃지 않는 것"

"악을 악으로 갚지 아니하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는 것"

"슬퍼 하는자들 곁에서 함께 울어주며 즐거운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는 것"


다시 말해


'막을 수 없는 사랑과 넘치는 자비를 품는 자가 되는 것"


이거 알아 먹었으면 성경 그만 읽어도 된다 ㅇㅇ


그래서 알아먹은 사람들은 성경의 핵심은 '사랑'이라고 말하는거임 ㅇㅇ


여기서 더 파고들어봤자 교회가서 헌금 내고 이상한 해석내놓는 목사말이나 듣고 

종국에는 길가는 사람 붙잡고 "예수천국 불신지옥"하면서 미치광이 쓸모없는 인간 되버린다 ㅇㅇ


진짜 사랑을 알았다면 그럼 실천이겠지?

니네 가족 한번 더안아주고 여기 갤러들 힘내라고 말한번 더해주고 길가에 쓰레기 한번 더주우면 되는거야 


긴글 읽느라 고생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