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속을 떠다니던 무언가가 변했다. 진동하는 베이스 음 사이, 엉겨 붙은 땀과 향수 냄새 너머, 시야를 태우는 네온의 홍수 속에서, 미묘하지만 분명한 파문이 일었다. 마치 고요한 수면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처럼, 아니, 어쩌면 심해에서 떠오르는 거대한 그림자처럼. 클럽의 혼돈스러운 에너지가 한순간 방향을 바꾸는 듯했다. 내 안의 나침반이, 녹슬고 망가졌다고 생각했던 그 나침반이, 미친 듯이 빙글거리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도 불구하고, 아주 희미하게,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혹은 그저 내 신경계가 만들어낸 환청일까? 아까 마신 술 때문일까, 아니면 이 장소 자체가 원래 이런 종류의 환각을 유발하는 걸까?
그때, 그녀가 나타났다.
마치 네온 안개 속에서 형체를 갖춘 것처럼, 아니, 어쩌면 네온 안개 그 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응축된 것처럼. 그녀는 군중 속을 유영하듯 걸어 나왔지만, 그녀 주변의 공간은 기묘하게 뒤틀리는 듯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피해 길을 터주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녀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중력장처럼 작용하여 주변의 시공간을 왜곡시키는 것 같기도 했다. 할리퀸. 광대. 예측 불가능한 색채와 패턴의 옷. 금속성 실로 짠 듯한 천 조각들이 몸 위에서 조각보처럼 이어져 있었고, 그 위로는 가느다란 LED 라인이 전류처럼 흘렀다. 단순한 옷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선언, 혹은 위장 같았다. 저 화려함 뒤에 무엇을 숨기고 있을까? 아니면 저 화려함 자체가 그녀의 본질일까?
더욱 기묘한 것은 그녀의 피부였다. 맨살이 드러난 팔과 목덜미 위로, 푸른색과 자줏빛의 AR 문양들이 홀로그램처럼 피어올랐다가 스러지기를 반복했다. 살아있는 문신처럼, 혹은 그녀의 기분에 따라 색과 형태를 바꾸는 카멜레온의 피부처럼. 어떤 때는 기하학적인 불꽃 같기도 했고, 어떤 때는 꿈틀거리는 담쟁이덩굴 같기도 했다. 사무실 내 자리의 스크린 세이버 속에서 끝없이 흘러내리던 디지털 폭포수와는 전혀 다른, 생명력이 느껴지는 움직임. 저것은 기술인가, 마법인가? 아니면 그저 내 취한 눈이 만들어내는 착각일 뿐인가?
그리고 그녀의 눈. 세상의 모든 네온 빛을 빨아들여 그 안에서 태워버리는 듯한 눈동자. 인공적인 디지털 불꽃처럼 타오르며,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반짝였다. 저 눈을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던, 죽은 듯 고요한 회색 빌딩들의 행렬과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 저 눈빛은 살아있다. 아니, 살아있는 것 이상이다. 생명을 부여하고, 또 앗아갈 수도 있을 것처럼 강렬하다. 그녀가 나를 보았다. 아니, 나를 꿰뚫어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클럽의 모든 소음이 한순간 멀어지는 듯했다. 사무실 형광등의 낮은 웅얼거림처럼, 배경으로 존재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그 모든 소리들이 갑자기 증발해버린 것처럼. 내 피부가 따끔거렸다. 정전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시선 자체가 가진 어떤 물리적인 힘 때문일까?
그녀가 다가왔다.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치 무중력 공간을 유영하듯, 혹은 꿈속을 걷듯. 그녀가 가까워질수록 공기 중에 떠돌던 인공적인 재스민 향이 짙어졌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향기. 사무실 방향제에서 나던 싸구려 라벤더 향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농밀하고, 매혹적이고, 어딘가 위험한 느낌을 주는 향기였다. 내 앞에 선 그녀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때로는 장난기 가득한 10대 소녀처럼 천진난만해 보였고, 때로는 세상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고대의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의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붉은색, 인공적인 체리 맛 사탕 같은 색깔. 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도전적이고, 유혹적이며, 장난기 넘치는 그 눈빛. 나와 함께 이 밤의 더 깊은 곳으로 가보지 않겠냐는 무언의 초대. 거부할 수 없는 끌림. 달콤한 독약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그 눈빛.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혹은 심장이 있던 자리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이 떨림은 흥분일까, 공포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그녀의 미소가 깊어졌다. 매혹적이면서도 어딘가 섬뜩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 저 미소는 진짜일까? 아니면 그녀의 얼굴 근육을 제어하는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가짜 표정일까? 내 책상 서랍 속에 처박아 둔, 오래된 가족사진 속 어머니의 희미한 미소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우리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가 먼저 움직였고, 나는 자석에 끌리듯 따라 움직였다. 그녀의 몸짓은 예측 불가능했다. 부드럽게 물결치다가도 갑자기 각진 로봇처럼 움직였고, 때로는 공기 중에서 잠시 멈춘 듯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의 몸을 감싼 옷의 LED 라인이 춤사위에 맞춰 색과 패턴을 바꾸었다. 빨강, 파랑, 초록, 보라… 현란한 빛의 향연 속에서 그녀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발광 생명체처럼 보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허리를 스쳤다.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 예상과는 다른 느낌. 하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마치 전선 피복이 벗겨진 곳에 손을 댄 것처럼. 아니, 사무실에서 정전기가 튀었을 때 느꼈던 그 불쾌한 따끔거림과는 달랐다. 이것은… 달콤한 고통, 혹은 위험한 쾌락에 가까웠다.
음악 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내 감각이 증폭된 것일지도 모른다. 베이스 음은 이제 내 몸 안에서 직접 울리는 듯했고, 레이저 광선은 더욱 날카롭게 시야를 갈랐다. 천장의 홀로그램 댄서들이 다시 깨지기 시작했다. 픽셀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사무실의 낡은 프린터가 종이를 씹으며 에러 메시지를 뱉어낼 때의 그 짜증스러운 소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직 그녀만이 존재했다. 그녀의 움직임, 그녀의 빛, 그녀의 향기, 그녀의 존재감.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클럽 바닥의 끈적거리는 감촉과 그녀의 매끄러운 피부 감촉이 뒤섞였다. 그녀의 인공적인 재스민 향과 사무실 탕비실의 퀴퀴한 커피 찌꺼기 냄새가 교차했다. 클럽의 맥동하는 네온 불빛과 사무실 책상 위 디지털시계의 냉정한 숫자들이 겹쳐 보였다.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 나와 그녀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었다. 약 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 자체가 이런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일까?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타오르는 디지털 불꽃을 바라보며, 나는 그 혼란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그 회색빛 세계로부터의 완전한 탈출.
그녀가 춤을 멈췄다. 그리고 내 손목을 잡았다. 그녀의 손아귀는 놀랍도록 강했다. 하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강함이 기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그녀가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지는 묻지 않았다. 물어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이끄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우리는 춤추는 군중 사이를 헤치고 나아갔다. 사람들은 모세 앞의 홍해처럼 우리 앞에서 갈라졌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위압감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일까?
저 앞에, 클럽 안쪽 깊숙한 곳에,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듯한 입구가 보였다. 입구 양옆으로는 맥박치듯 깜빡이는 푸른색 네온 튜브가 세워져 있었다. VIP 룸. 그곳은 이 혼돈 속의 또 다른 고치, 혹은 심연으로 이어지는 통로처럼 보였다. 그녀가 그곳을 향해 나를 이끌었다. 그녀의 입가에 다시 한번 그 미소가 떠올랐다. 장난스러우면서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치명적인 미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보는 강렬한 눈빛과, 내 손을 잡은 그녀의 단단한 손아귀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 나는 그 침묵의 약속에 응하며, 그녀의 손에 이끌려, 네온 빛이 맥동하는 그 미지의 공간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내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이 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기묘한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그래, 이 밤 속으로 더 깊이.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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