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공기가 뺨에 닿았다. 눈꺼풀 아래로 희미한 빛이 스며드는 느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가 흐릿하다. 초점이 맞지 않는다. 천장인가? 아니면 벽? 검은 거울 표면 위로 네온 불빛의 잔영이 물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푸른빛, 붉은빛, 보랏빛. 하지만 그 빛들은 힘이 없었다. 마치 먼 기억 속의 색깔처럼 희미하고 탁했다. 아까의 그 생생하고 강렬했던 빛의 폭풍은 어디로 갔을까?
몸을 일으키려 했다. 욱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특히 등과 어깨가 딱딱한 바닥에 눌려 아팠다. 여기가 어디지? 아… VIP 룸. 소파가 아니었다. 차갑고 단단한 바닥 위였다. 언제부터 여기에 누워 있었던 걸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 기억은… 빛과 소리의 소용돌이. 그녀의 눈동자. 그리고…
그녀는 없다.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아까까지 공간을 가득 채우던 그 농밀한 존재감, 인공 재스민과 오존의 향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차갑고 메마른 공기와 희미한 먼지 냄새,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비릿한 금속성 냄새만이 감돌았다. 고요했다. 클럽의 둔탁한 베이스 음조차 이제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리가 갑자기 증발해 버린 것처럼. 이 침묵은 어색하고, 불안했다.
귀 뒤쪽. 뉴럴 포트 근처. 여전히 무언가가 고동치고 있었다. 욱신, 욱신. 아주 미세하지만 끊임없는 진동. 신경을 거슬리는 불쾌한 감각. 마치 살갗 아래 작은 기계가 심어져 박동하는 것 같았다. 손을 가져가 만져보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저 그 이질적인 감각을 느끼며 누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고동과 함께, 눈앞에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의지와 상관없이. 빗물이 고인 어두운 골목길. 바닥에 번들거리는 검붉은 얼룩.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 그리고… 로고. 차갑고 날카로운 선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문양.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로고는 잠시 머릿속을 맴돌다가, 하얀 모니터 불빛과 깜빡이는 커서의 이미지로 대체되었다. 다시 골목길. 빗소리. 로고. 이 단절된 이미지들은 무엇일까? 왜 내 머릿속에 나타나는 걸까? 그녀가 남긴 흔적? 아니면…
테이블 위.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길고 날렵한 형태. 칼. 반투명한 세라믹 재질인 듯, 주변의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것은…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아까 그녀가… 내려놓았던가? 기억이 불분명하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차갑고 매끄러운 칼자루에 닿았다. 그 감촉.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놀랍도록 손에 꼭 맞았다. 마치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물건처럼. 무게감이 느껴졌다. 가볍지만, 단단한. 손가락 마디마디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다. 칼날 끝의 푸른빛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것은… 무엇이지? 왜 내 손에 이렇게 익숙하게 잡히는 걸까?
콰앙-!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 온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방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문이… 문이 안쪽으로 터져 들어왔다! 나무 파편과 먼지가 공중으로 솟구쳐 시야를 가렸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
기침을 하며 먼지를 털어내려 애썼다. 눈을 깜빡였다. 부서진 문틀 너머, 어둠 속에서 검은 형체들이 보였다.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하지만 위압적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유선형의 슈트. 얼굴은 없었다. 매끈한 검은 패널. 그리고 그 위에… 붉은 빛 두 개. 좌우로 천천히 움직이며 방 안을 훑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눈동자처럼. 아니, 살아있는 것과는 다른, 더 차갑고 기계적인 움직임.
그 붉은 빛이 나에게서 멈췄다. 나를… 보고 있다.
숨 막히는 정적.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직 내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소리만이 들리는 듯했다. 쿵, 쿵, 쿵. 귓가에서 울리는 소리.
금속과 플라스틱이 마찰하는 소리. 낮고 섬뜩하게.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세 개의 검은 형체가 다가왔다.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마치 유령처럼 미끄러지듯. 그들의 붉은 눈은 오직 나만을 향하고 있었다. 왜? 내가 뭘 어쨌다고?
가장 앞선 형체가 팔을 뻗었다. 검은 장갑을 낀 손. 그 손가락들이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시간이 느려지는 듯했다. 주변의 모든 것이 흐릿해지고, 오직 그 검은 손만이 선명하게 보였다. 저 손에 잡히면… 안 된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절대로 잡혀서는 안 된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몸이 반응했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어떻게 이런 움직임이 가능하지? 손에 쥔 칼. 차가운 감촉. 팔이 저절로 휘둘러졌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
치직-!
무언가를 베는 감촉. 단단하면서도 무른. 푸른 불꽃이 터져 나왔다! 눈앞이 하얗게 번쩍였다! 검은 팔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잘린 단면에서 푸른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전선! 금속! 저건… 사람이 아니었나?
형체가 뒤로 물러섰다. 붉은 빛이 빠르게 깜빡였다. 다른 두 형체도 잠시 멈칫했다. 그들의 붉은 시선이 내 손에 들린 칼로 향했다. 이 칼… 도대체 뭐지?
내 손. 칼을 쥐고 있다. 푸른 액체가 묻어 있다. 비릿한 오존 냄새. 그녀의 향기와 닮은 듯도 하다. 혼란스럽다. 내가… 어떻게? 나는… 싸울 줄 모르는데. 하지만 몸은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한 열기가 느껴졌다. 손가락은 칼자루를 더욱 단단히 쥐고 있었다.
틈. 아주 짧은 순간. 그들이 주춤하는 순간.
도망쳐! 머릿속이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였다. 발이 바닥을 박찼다. 부서진 문을 향해. 남은 두 형체가 다시 움직였다. 길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몸이 그들의 움직임을 미리 읽은 듯, 그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어깨가 벽에 부딪혔다. 아프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밖으로! VIP 룸 밖으로 뛰쳐나왔다! 등 뒤에서 금속성의 발소리가 들린다! 클럽 플로어! 소음! 빛! 사람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덮쳐온다! 눈이 부시고 귀가 아프다! 나는 군중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람들과 부딪히며 출구를 향해 달렸다. 손에는 여전히 푸른빛을 내는 칼이 들려 있다. 이것이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네온 불빛이 터졌다 사라진다. 그녀의 눈빛. 그 로고. 골목길. 빗소리. 머릿속은 여전히 뒤죽박죽이다.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 왜 도망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달린다. 발이 움직이는 대로.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 숨이 차오른다. 등 뒤의 발소리. 앞의 혼돈. 달린다. 이 악몽 같은 현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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