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연구는 단기간에 투자비를 회수하기가 힘들고 긴 연구 시간과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과학자나 연구자의 열정만으로 수행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기업계나 정부의 헌신적인 자금 지원 없이는 연구 자체뿐만 아니라 연구 인력을 모으고 육성하기도 쉽지 않다. 


인공지능(AI) 연구도 초기에는 사업적 또는 산업적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힘든 상황이었으므로 기업이나 정부의 자금 지원이 절실했는데, 1960년대까지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상황이었다. 민간 부분의 지원으로는 AI 연구의 장을 열었던 다트머스 회의가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이뤄질 수 있었고, AI 개발 언어인 LISP, 사무엘, 번스타인 그리고 글런터의 AI 프로그램들도 IBM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으로는 사이먼과 뉴웰의 논리연산 이론가와 일반문제 해결기 개발의 장이 됐던 랜드코퍼레이션을 지원했던 미 공군, 로젠블래트의 퍼셉트론을 지원했던 해군연구소 등이 있었다.


1962년에 미국 국방부 산하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에 IPTO(Information /Processing Techniques Office)가 설립되며 AI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고, DARPA의 초기 지원은 AI 연구의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게 만들어 줬다. 이는 냉전 시대의 맥락에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기술 개발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AI 연구가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DARPA는 비교적 적은 제약으로 큰 금액을 AI 연구에 투자했으며, 선도 연구자들이 유망한 연구 분야를 자유롭게 탐색하도록 지원했다. 이런 관대한 자금 지원 환경은 초기 AI 연구의 성장에 중요한 토대가 됐다. 그렇게 MIT, 카네기 멜론대학교, 스탠포드대학교와 같은 대학의 AI 연구소가 DARPA의 직접적인 지원으로 설립될 수 있었으며, SRI와 랜드코퍼레이션 같은 많은 연구 기관이 DARPA의 지원을 받았다. 한편, AI를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던 IBM이 영업적인 상황 문제로 AI 연구에 대해 소극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자, 1960년대 중반을 지나며 AI 연구 자금은 상당 부분 정부, 특히 DARPA의 자금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퍼셉트론에 대한 연결주의 학파와 기호주의 학파 사이의 논쟁이 격렬해지고 있던 1960년대 후반 AI 연구계에는 더 큰 변화의 먹구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AI를 학문으로 정착시킨 초기 과학자들은 여전히 인간과 기계 지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기초 연구를 계속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특별한 결과물이 없는 데다, 학문적 발전도 더디게 진행돼 AI 연구에 대한 회의가 점점 커지는 상황이었다. 


초기 과학자의 제자들이나 2세대 AI 연구자들은 실제 환경에 적용 가능한 접근 방식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AI 연구에 대한 자금 지원의 구조에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또 AI 연구 자금의 큰 몫을 담당하던 DARPA도 AI 연구의 더딘 진보에 실망한 국방부와 의회 등으로부터 AI 연구 지원에 대한 정당성과 철저한 검토를 지속적으로 요구받게 되며 곤란한 입장에 처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AI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 첫번째 사건은 1965년에 발표된 ALPAC 보고서였다. 이는 상당한 투자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기계 번역에서 뚜렷한 진전이 없으며, 자동 번역에 대한 더 이상의 지원을 중단할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였다. 이로 인해 기계 번역에 대한 모든 지원이 중단됐고, 연구에 참여했던 많은 연구자의 경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관련 연구 프로젝트들이 종료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ALPAC 보고서는 AI의 응용 분야 중 하나인 기계 번역에 초점을 맞췄지만, 그 부정적인 결론은 전반적인 AI 연구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확산하고, 다른 분야 자금 지원에 대한 재검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1969년에는 외교관 출신의 상원의원 마이클 맨스필드가 발의한 맨스필드 수정안(Mansfield Amendments)이 통과되며, DARPA의 자금 지원 우선순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수정안은 DARPA의 자금을 군사 기능과 작전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곳에만 지원할 수 있도록 의무화했다. 이는 미 국방부가 단기적 실용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연구에만 지원하도록 정책을 변경하게 했는데, DARPA의 전체 자금에는 큰 영향이 없었지만, 현실 문제에 적용이 쉽지 않았던 AI 연구 자금 지원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973년에 다시 개정된 맨스필드 수정안은 그나마 지원이 유지되었던 일부 AI 연구에도 심각하고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됐다. 당시까지 군사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독립적이고 장기적 과제를 포함한 수많은 과학 연구 과제에 지원을 해오던 DARPA의 예산마저도 직접 군사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만 제한할 것을 명시적으로 규정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DARPA의 자금 지원 제한 조치가 AI 연구 분야에 더 심하게 작용했던 것은 미국 외부에서 발표된 보고서 하나 때문이기도 하다. 영국의 과학 연구를 위한 주요 자금 지원 기관이었던 영국 과학연구위원회는 1972년 영국왕립협회 회원이자 캠브리지 대학 응용수학과의 루커스좌 석좌 교수였던 제임스 라이트힐 경(Sir James Lighthill)에게 AI의 현황과 전망에 관한 평가를 요청했다. 


그런데, 1973년 제출된 라이트힐의 보고서는 AI 연구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사실 라이트힐은 AI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던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보고서에서 일부 AI의 성공은 AI 자체가 아니라 다른 전통적 학문의 모델링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했으며, 조합폭발이 가장 큰 문제이며 AI는 이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많은 AI 알고리즘이 장난감 수준의 문제에서는 작동하지만, 실제 세계의 복잡한 문제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또 그는 미국의 AI 연구 자금 지원에 의문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의 보고서는 즉각적으로 영국 전역에서 영향을 미쳤는데, AI 연구에 대한 심각한 자금 삭감으로 이어졌고 장기적으로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상황은 영국 내를 넘어 미국까지 확산, DARPA를 비롯한 여러 기관들이 단기적이고 실질적 응용 가능성이 없는 AI 연구에 대한 투자를 더욱 신중하게 고려하도록 만들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기호주의 학파와 연결주의 학파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고,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이고 근거 없는 예측과 달리 성과는 크게 보이지 않았으며, 실제 세계의 문제에는 적용하지 못하는 한계성이 드러나는 상황이었다. 이 가운데, 비판론자들의 AI에 대한 비판을 주의 깊게 지켜봐 오던 국방부와 DARPA의 일부 임원들은 라이트힐의 보고서가 알려진 후, 미 국방부에서도 DARPA의 AI 연구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위원회를 꾸리게 했다. 이 위원회에서도 연구 자금 지원에 대해 라이트힐의 보고서와 같은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게 되자, DARPA의 자금 지원은 이제 기초연구가 아닌 임무지향적 직접 연구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는 즉각적인 AI 연구에 대한 자금 지원 삭감을 의미했고. 직접적으로 AI 연구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의 이 기간이 훗날 ‘AI의 겨울(AI Winter)’ 또는 ‘AI 암흑기’로 알려진 혹독한 첫번째 시련기였다. 


다트머스 회의 이후 꽃망울을 영글어 가던 AI 연구는 탐색과 평가, 추론, 휴리스틱, 초기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게임의 문제 풀이, 논리 분석, 자연어 처리, 기계 번역 심지어 신경망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가 이뤄졌다. 이때 수행된 연구는 미래 발전을 위한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으며, 이 시기의 도전과 실패는 AI 구현에 대한 더 현실적인 이해로 이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근거 없는 지나친 낙관론, 보장되지 않은 과도한 예측으로 결국 결실을 맺지 못하고 추운 겨울을 맞이하게 됐다. 당시의 낙관론과 예측, 그리고 이행하지 못한 약속으로 말미암아 대중의 관심은 식어갔다. ‘AI’라는 용어조차 부정적인 의미를 띠게 돼, 꽤 오랜 시간 동안 AI에 대한 연구는 사회적으로 곱지 못한 시선을 받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세줄요약

기초 연구다보니 정부투자 위주로 진행됐는데 ibm이 발빼면서 이런 현상이 심화됨

그러던 와중에 미국의 투자방침이 보다 실용주의적인 측면으로 변화됨

여기에 지나칠정도의 ai낙관론에 대한 반대의견이 대두되면서 ai투자가 줄고 겨울이 찾아옴


출처

https://www.a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9778

[AI의 역사] 38 혹독한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마지막 치명타 – 연구와 자금기초과학 연구는 단기간에 투자비를 회수하기가 힘들고 긴 연구 시간과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과학자나 연구자의 열정만으로 수행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기업계나 정부의 헌신적인 자금 지원 없이는 연구 자체뿐만 아니라 연구 인력을 모으고 육성하기도 쉽지 않다. 인공지능(AI) 연구도 초기에는 사업적 또는 산업적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힘든 상황이었으므로 기업이나 정부의 자금 지원이 절실했는데, 1960년대까지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상황이었다. 민간 부분의 지원으로는 AI 연구의 장을 열었던 다트머스 회의가 록펠러 재단의www.aitimes.com